탈구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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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이론 형성의 배경

Ⅱ.계보에 따른 방법론적 특성

Ⅲ. 실제 분석의 예

본문내용

부호와 조사, 서체 등을 통해 결과적으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두려움의 대상에 대한 경고적 의미를 함축한다.
다시 요약한다면, 공포와 두려움을 발견한다 → 그럼에도 말하고 싶어한다 → 감추고 싶어하는 마음은 오히려 경고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 파격적 모습이 발생한다는 순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회로에 얽매인 시인은, 그 회로를 통해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과는 달리 얽매여 있음을 때때로 고백한다. 그 고백 속에서 우리는 두려움에서부터 파격 사이를 오가는 시인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다. 풍자는 일종의 폭력이다. 풍자는 훈련된 문법을 깨부순다. 풍자는 또한 그 문법의 언어들이 표방하고 있는 조화로운 질서를 통해 유지되는 적극적, 낙관적 세계관을 깨부순다. 풍자는 그리하여 깨부숨 속에서 파편화된 조각들을 보고 만족해하며, 그 앞에서 어떤 모습도 온전할 수 없을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해체주의의 비결정적이고 비종결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자는 마침내 풍자하는 자 스스로를 파괴한다. 이것은 바르트가 생각하는 저자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바르트는 저자가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된 주체라는 것을 논증한다. 그에 의하면 글쓰기는 글 쓰는 사람의 육체의 정체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모든 정체성이 사라지는 공간이다. 하나의 사실이 기술되는 순간 목소리는 그 기원을 잃고, 저자는 스스로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며, 이때 글쓰기가 시작된다. 오로지 텍스트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텍스트의 기원은 저자가 아니다. 텍스트에는 기원이 없다. 아니 모든 기원을 끊임없이 문제 삼는 언어 이외의 다른 기원이 없다. 역사를 만드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것이 역사라는 마르크스적 도식을 빌어 바르트는 저자가 언어의 밖에, 혹은 언어에 앞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박정자, 「저자란 무엇인가-디지털 시대의 저자의 죽음」, 연세대학원 신문, 2003. 10. 6
따라서 작가는 언제나 선행적인, 그러나 결코 최초의 것은 아닌 것을 흉내 낼 뿐이다. 결국 작가의 유일한 권한은 결코 어느 하나에 머물지 않는 채 여러 글쓰기들을 혼합하는 것이다. 황지우의 풍자도 이러한 풍자에 가깝다. 황지우의 해체시는 자신의 파괴를 포함하는 해체와 시대에 대한 통곡의 묶음인 것이다.
Ⅳ. 결론 및 한계점
해체시는 80년대가 보인 한국 근대성의 끔찍한 얼굴에 직면하면서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몸짓에서 시작되었다. 전면적인 부정이라는 점에서 해체시는 전위적이다. 사계의 덧없음을 극단적인 반미학을 통해 보인다. 구모룡, 「억압된 타자들의 목소리」, 현대시사상 가을호, 1995, p. 181
해체시 운동은 시를 단순히 자율적이고 통일적인 미학적 테두리 내에서 한계 짓지 않고 끊임없는 삶과 사회와 정치적 관계 속에서 역사와 함께 위치하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초기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해체시 운동은 이후 시적 정신에 대한 치열한 자의식을 상실한 채 기법 자체를 추구하는 해체시가 됨으로써 시적 매너리즘에 빠지고 마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어디까지 해체할 수 있는 것인가. 기존 문법을 송두리째 무시한 해체는 독자들로서는 따라가기 너무 어렵다. 시인들이 기존의 목소리를 전혀 무시하고 끝없이 앞으로만 줄달음질칠 때 그들의 해체적 양상은 해체를 위한 해체로 머물거나 삶의 기반을 무시한 초월이기가 쉽다. 이렇게 볼 때, 해체의 시가 빛날 수 있는 것은 기존 질서나 삶의 실상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자신과 다른 방향의 시와 만나기도 하면서 긴장의 끈을 드리울 때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탈구조주의는 결코 한두 마디로 정의 내려질 수 없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사조이다. 이는 어떤 것이 무엇을 ‘의미’하도록 강요되거나 부과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의미를 찾거나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 또한 거부한다. 탈구조주의의 이와 같은 속성은 그것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심문하면서 비평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탈구조주의는 그 자아 반영적 태도로 인해, 어쩌면 서구 문명에 대한 서구인들의 진지한 <반성>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탈구조주의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현대 서구 문학비평의 지평을 확대시켜 준 방대한 지적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그동안 경직되고 고정된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에 종말을 고함으로써 문학비평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의 장을 열었으며, 문학의 발전에 공헌했다. 탈구조주의는 모든 절대적 의미의 안정된 근원을 교란시키고 해석의 불가능함을 시사하며 모든 결론을 유보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차이’를 인식하고 ‘불확실성’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며, 지배문화로부터 제외된 ‘타자’를 인정한다. 그것은 또한 지배체제나 지배구조에 의해 억압받는 ‘개체’의 해방을 외치며 경직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열린사회’를 지향한다. 끝으로 탈구조주의는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을 중시하며, 현재와 역사, 그리고 언어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면에서 그 문학적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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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저자란 무엇인가-디지털 시대의 저자의 죽음」, 연세대학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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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9.12
  • 저작시기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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