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사회주의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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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시대의 사회주의 운동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의 태동

3. 공산주의 운동세력의 형성

4. 제 1, 2차 조선공산당 운동

5. 제 3, 4차 조선공산당 운동 및 해체

6.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7. 파쇼체제하 공산주의 운동

8. 맺음말

본문내용

과별로 책임자를 조직하고, 유사시의 치안조직까지도 준비했으며 무장봉기를 통해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계획까지도 세우고 있었다. 건국동맹은 무장봉기 계획을 세우면서 두 가지 방안을 모색하는 데, 하나는 국내의 공산주의자 그룹-공산주의자 협의회-과 합동으로 군사위원회를 조직해 전국적 범위의 노농군을 편성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연안의 독립동맹과 여결해 국내외의 무장투쟁을 상호 연결지으려는 공작이었다.(임경석, 「국내 공산주의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전술(1937~45년)」『일제하 사회주의운동사』, 한길사, 1991)
일제의 파쇼정권이 조선에 대해 폭력적인 착취와 탄압을 자행하고 있었던 일제 말기의 운동은 反파쇼 투쟁의 필요성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통일된 당조직의 부재는 통일전선의 형성을 저해하였고, 일제의 탄압 역시 그러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공산주의운동은 투쟁방법과 이론의 논쟁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히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기존과는 또 다른 활동을 보여주었다. 이런 전시체제 하의 고민들은 기존의 전술적이념적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시에 보완된 체제를 통해 해방이라는 급격한 사회혼란에도 불구하고 대중투쟁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단순히 파쇼체제의 억압과 조공 재건의 실패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운동세력이 보다 성숙해나가는 단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임경석, 위의 책.
물론 이 시기 공산주의 운동은 앞의 긍정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극심한 억압으로 인해 광범위한 대중투쟁을 전개해나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또한 일체의 합법적인 활동마저도 제약받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비합법의 지하운동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그로 인해 공산주의운동 내에 서클주의적수공업적인 작업방식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는 해방 후 공산주의 운동에서 지방주의적 성격이 나타나는 요인이 되는 한계를 낳았다.
맺음말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은 초기의 다양한 사상에서 출발했으나 러시아혁명의 성공 등의 요인으로 공산주의 운동이 그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각지에서 일어난 각 파벌간의 갈등이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 등으로 인해 극단적인 충돌로까지 이어지나 곧 통일적인 전위당 결성에 공감하게 되고 연대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그 과정에서 당시 공산주의 운동세력의 가장 강력한 권위체였던 코민테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해지고, 이는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이 코민테른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조선공산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다.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탄압과 파벌간 알력으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고 해체와 재건을 거듭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 운동세력의 투쟁은 더욱 성숙해져갔다. 조선공산당은 민족주의진영과의 연대도 모색해나가면서 그 투쟁범위를 넓혀갔고, 이에 따른 이념적 발전도 함께 수반했다. 그러나 일국일당의 원칙에 따라 해외의 공산주의 운동세력이 해당국의 공산당으로 속하게 되고, 수차례의 검거사건으로 운동역량을 크게 상실하게 된 조선공산당은 결국 4차당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코민테른의 지도 아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나가게 되고, 이런 활동은 일제말기의 극심한 탄압에도 이어져 해방 후 민중운동을 주도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그것은 기존의 운동이 갖는 한계점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통해 진행되었다.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은 일제강점기의 가장 주요한 민족해방운동으로서 투쟁을 전개해나갔다. 그리고 전술과 같이 해방 이후에도 매우 조직적인 움직임을 통해 해방 정국을 주도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의 반공이데올로기와 북한에서의 분파주의 비판 등의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북한에서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에 관한 연구는 1950년대 초반까지 매우 의미있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수반된 타 분파 숙청과 김일성의 영웅화 작업 등에 따라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사 연구는 김일성의 ‘혁명운동사’ 연구로 전락하면서 연구성과가 침체되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남한에서 서서히 그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하여 현재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 많은 연구과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조선공산당 창당과정에서 서울파의 불참이나 공산주의운동의 노선전환에서 코민테른에 대해 수동적인 성향으로 일관한 점 등은 아직 남아있는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당시의 가장 주요했던 운동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런 운동을 통해 해방 후 정국이 진행되었으며, 그것이 현재에까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의 연구는 더욱 중요하다. 다만 서술과정에서 1920년대 이후 해외한인의 그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정세 변화에 따른 전술전환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던 점 등이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사의 의미를 퇴색시킨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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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2.10
  • 저작시기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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