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금속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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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 고려시대의 금공기법
1. 성형기법(成形技法)
가.주조기법
나 단금기법
2. 조금기법(彫金技法)
가.선조기법
나.어자문기법
다.상감기법

Ⅲ. 고려시대의 금속제 유물
가.장신구
나.기명
다.대형청동기류
라.고려종(高麗鐘)
마.청동보탑과 보당)
바.동경과 경상

Ⅳ. 맺음말

본문내용

마음을 쓰게 하였고, 따라서 경상(鏡箱)을 사용한 사실은 일본 쇼소잉(正倉院)의 유물에서 볼 수가 있다. 중국에서는 고분의 출토시에 도자함 속에 보관된 채 출토된 예도 알려지고 있다.
5) 경상(鏡像) - 동경은 원래 화장용구가 그 구실이나 무덤의 부장품으로 또는 탑의 사리장엄구 속에 넣는 것은 마음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해석된다. 특히 일본에서는 신(神)의 조도품(調度品)으로 격(格)을 부여하기도 하였는데, 동경의 문양에 길상어(吉祥語)를 쓰거나 교훈적인 글귀가 담기는 것도 역시 이러한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따라서 동경의 면에 불보살을 새김으로써 직접적으로 신앙예배의 대상을 삼는 것도 결코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경상(鏡像)이라 하는데 경상은 동경의 면에 선각(線刻),또는 묵서(墨書) 등으로 존상(尊像)을 나타내는 것으로, 고려동경의 거울면에 불교도상(佛敎圖像)을 새기고 있으며, 또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의 동판(銅板)에 관음상보탑사천왕 또는 경문을 새긴 것이 전하기도 한다. 최근 이에 대하여 상징성과 관념의 변화를 조사연구한 성과가 보이고 있다.
Ⅳ. 맺음말
이상으로 고려시대 금속공예품의 기법과 형태를 나누어 소개하였다. 고려의 공예품은 전세품(傳世品)이 거의없고 발굴품이 주류를 이루며, 그나마 청자(靑磁) 등의 도자공예에 밀려 출토상태가 알려지지않은 채 출토되었다가 산일되어 남아 있는 예가 적고 관심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공예수준을 능히 짐작케 하나 그들에 대한 철저하고 완벽한 조사연구와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보다 더 정밀한 실태가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http://ujuhim.co.kr/잡동산이/new_page_잡동1-17고려의%20금속공예.htm
금속활자는 고려시대부터 동활자이용 인쇄
금속활자는 한국에서 일찍부터 발달하여, 고려시대 1234년에 동활자(銅活字)를 사용해서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50권을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403년(태종 3)부터 수년 간에 걸쳐 동활자 수십만 개를 주조하여 서적 인쇄에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미자(癸未字)이다. 4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납활자의 주조에 성공, 이것을 조판해서 포도압착기를 응용하여 만든 평압식(平壓式) 인쇄기로 성서를 인쇄하였다. 이것은 인쇄기를 이용한 최초의 볼록판인쇄로서 수년 사이에 유럽 각지에 퍼졌다. 60년경 이탈리아의 피너게라는
금속판의 표면을 부식시켜 오목판을 만들어서 오목판인쇄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으며, 1798년에는 독일의 A.제네펠더가 자기 고장에서 산출되는 대리석(석회석의 일종)에 인쇄잉크(쇠기름을 원료로 한 것)로 글씨를 쓴 다음 질산으로 대리석판을 부식시켜 볼록판을 만들어서 악보 등을 인쇄하는 동안, 이 대리석이 다공질(多孔質)로서 수분을 오래 지녀 지방성인 인쇄 잉크를 받지 않는 점에 착안해서 석판인쇄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것이 평판인쇄의 시초가 되었다.
금속활자는 한국에서 일찍부터 발달하여, 고려시대 1234년에 동활자(銅活字)를 사용해서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50권을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403년(태종 3)부터 수년 간에 걸쳐 동활자 수십만 개를 주조하여 서적 인쇄에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미자(癸未字)이다. 4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납활자의 주조에 성공, 이것을 조판해서 포도압착기를 응용하여 만든 평압식(平壓式) 인쇄기로 성서를 인쇄하였다. 이것은 인쇄기를 이용한 최초의 볼록판인쇄로서 수년 사이에 유럽 각지에 퍼졌다. 60년경 이탈리아의 피너게라는 금속판의 표면을 부식시켜 오목판을 만들어서 오목판인쇄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으며, 1798년에는 독일의 A.제네펠더가 자기 고장에서 산출되는 대리석(석회석의 일종)에 인쇄잉크(쇠기름을 원료로 한 것)로 글씨를 쓴 다음 질산으로 대리석판을 부식시켜 볼록판을 만들어서 악보 등을 인쇄하는 동안, 이 대리석이 다공질(多孔質)로서 수분을 오래 지녀 지방성인 인쇄 잉크를 받지 않는 점에 착안해서 석판인쇄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것이 평판인쇄의 시초가 되었다. 이리하여 18세기 말까지 볼록판(목판 활판) 오목판(조각 오목판 에칭) 평판(석판) 등 세 가지의 기본적 인쇄방법이 고안되었다. 19세기가 되면서 프랑스의 니에프스와 다게르에 의해 사진술이 발명되고, 1839년 영국의 폰턴에 의해서 중크롬산 젤라틴액의 감광성 내산물(感光性耐酸物)이 발견됨으써 사진제판이 고안되어, 마침내 67년에 독일의 알버트에 의해서 콜로타이프 인쇄로서 실용화되었다. 또, 망목 스크린과 감광제 등의 발명으로 사진판 원색판 그라비어 인쇄(1893) 오프셋 인쇄(1904) 등의 인쇄방법이 계속 고안 되었다.
"비단,가죽,대나무 조각 등에 필사를 하던 기록문화는 목판인쇄술의 개발로 일대 전기를 맞게 되지만 이미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를 사용한 한국는 세계 인쇄문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한국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된 것은 12세기 고려시대였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선 인쇄술을 자랑하던 고려인들은 몽고의 잦은 침략으로 수많은 목판과 서적들이 소실되자 보다 경제적인 인쇄방법을 찾게 되었고 12세기에 마침내 해동통보를 부어내는 방식으로 동활자를 만들었다.
이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복"이라는 활자가 증명하고 있으며 문헌상으로도 1232년 이전에 남명천화상송증도가 1234년~1241년 사이에 고금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바로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책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것으로 당시 고려에서는 지방 사찰에서 까지도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인쇄하였을 정도로 활자인쇄술이 발달하였다
*목 차
Ⅰ.머리말
Ⅱ. 고려시대의 금공기법
1. 성형기법(成形技法)
가.주조기법
나 단금기법
2. 조금기법(彫金技法)
가.선조기법
나.어자문기법
다.상감기법
Ⅲ. 고려시대의 금속제 유물
가.장신구
나.기명
다.대형청동기류
라.고려종(高麗鐘)
마.청동보탑과 보당)
바.동경과 경상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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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5.19
  • 저작시기2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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