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삼국의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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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I. 서론

II. 삼국의 고분
1. 고구려 고분
(1)고분의 분포
(2)고분의 입지
(3)고분의 구조
①돌무지무덤
②봉토무덤
(4)주요고분
①장군총
②안악 3호분
③덕흥리 고분
2. 백제 고분
●전기고분 한성(漢城)시대(3세기 초∼475년)
(1)고분의 분포
(2)고분의 입지
(3)고분의 구조
①돌무지무덤
②돌방무덤
●중기고분 웅진(熊津)시대(475∼538년)
(1)고분의 분포
(2)고분의 입지
(3)고분의 구조
(4)주요고분
①공주 송산리 6호분
②무령왕릉
●후기고분 사비(泗비)시대(538∼660년)
(1)고분의 분포
(2)고분의 입지
(3)고분의 구조
(4)주요고분
①능산리 고분군
3. 신라 고분
(1)고분의 분포
(2)고분의 입지
(3)고분의 구조
①돌덧널무덤
②돌무지덧널무덤
③돌방무덤
④화장묘
(4)주요고분
①황남대총
②천마총
③금관총
④무열왕릉
4. 가야 고분
(1)고분의 분포
(2)고분의 입지
(3)고분의 구조
①널무덤
②덧널무덤
③독무덤
④돌널무덤
⑤돌덧널무덤
⑥돌방무덤
(4)주요고분
①대성동고분군
②복천동고분군
③지산동고분군

III.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 이미 강력한 정치집단이 출현하였음을 입증해주며, 이 세력은 금관가야로서 주변지역 특히 일본열도의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②복천동고분군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나지막한 구릉 위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의 무덤떼로 사적 제273호이며 부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이 일대를 거점으로 해서 성장했던 세력집단 지배자들의 공동묘지로 추정된다. 동아대학교·부산대학교 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이 수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시킨 결과 1991년까지 총78기에 달하는 유구가 조사되었다. 무덤의 구조는 덧널무덤, 구덩식돌방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덧널무덤은 딸린덧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양분되는데, 딸린덧널이 있는 경우 대개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은 일(日)자형으로 배치된다. 구덩식돌방무덤 역시 딸린덧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딸린덧널이 있는 경우에 으뜸돌방과 딸린덧널의 배치상태는 앞의 덧널무덤과 동일하고 딸린덧널은 나무덧널로 이루어지는데 10·11호분과 21·22호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방무덤은 이 유적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형분일 경우에는 막대한 양의 껴묻거리를 껴묻을 뿐만 아니라 으뜸덧널 혹은 으뜸돌방과 딸린덧널에서 순장이 실시되었던 흔적도 엿보인다. 반면 앞트기식돌방무덤은 숫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 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의 물질문화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토기의 경우 굽다리접시류가 많이 발굴되며 이외에 단지, 목단지, 바리모양·통형·화로형의 그릇받침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금속제품으로는 금동관·금귀걸이·유리구슬·곱은옥 등의 장신구류·쇠도끼·쇠손칼·쇠끌·쇠삽날·쇠낫 등의 농공구류, 쇠살촉·화살통·쇠투겁창·대도·삼지창 등의 무기류, 판갑옷·비늘갑옷·투구 등의 갑주류, 말머리가리개·안장꾸미개·발걸이·재갈·말띠드리개·청동제말방울·띠고리 등의 마구류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청동제칠두령·미늘쇠·덩이쇠 등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 유적의 연대는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방무덤의 경우를 보아 대체로 4~6세기에 걸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③지산동고분군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면 지산동 일대에 분포하는 가야의 무덤떼로 사적 제79호이다. 고령은 삼국시대에 대가야가 위치했던 지역으로서 당시의 무덤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 지산동고분군이 무덤의 입지나 규모 면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가야 최고지배자들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큰 무덤들은 주산의 능선을 따라, 작은 무덤들은 경사면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1977~78년에 걸쳐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 발굴단에 의해 44호분과 45호분이 발굴·조사되었고 이어서 1978년에 다시 계명대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32~35호분과 여기에 포함된 다수의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무덤 구조는 판석으로 된 돌덧널무덤, 깬돌로 된 돌방무덤, 대형돌방무덤 등으로 구분된다. 판석으로 된 돌덧널무덤은 4장의 큰 판석으로 돌덧널을 짜 맞추고 바닥에는 1, 2장의 판석을 깔았으며 돌덧널 내부에는 별도의 부장공간을 갖춘 것들도 있다. 이 유형의 돌덧널무덤 중에는 어린이가 묻힌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깬돌을 이용하여 만든 돌방무덤은 대체로 판석으로 된 돌덧널무덤보다 대형이며 둘레돌을 갖춘 것들도 있다. 바닥에는 자갈이나 깬돌을 깔았다. 32호분의 경우 둘레돌을 갖춘 지름 13m 이상의 원형봉토 내부에 구덩식돌방 1기와 여기에 딸린 돌덧널 1기가 배치된 형태로서 돌방 내부에는 주피장자와 그의 발치 쪽에 피순장자 1명이 매장되어 있었고 딸린 돌덧널에도 역시 1명의 피순장자가 매장되어 있었다.
무덤 안에서는 신라의 출자형금동관(出字形金銅冠)과는 형태가 다른 금동관 1점과 투구 2점, 비늘갑옷 1벌과 판갑옷·목가리개·어깨가리개 등의 갑주류, 대도·쇠투겁창·쇠살촉 등의 무기류, 발걸이·재갈·청동말방울·띠고리 등의 마구류와 함께 다양한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한편 32NE-1호분에서는 고리 부분에 은실로 당초무늬가 상감된 단룡문환두대도(單龍紋環頭大刀)가 발견되었다.
지산동유적에서 최대형급에 속하는 44호분과 45호분은 대형의 구덩식돌방무덤과 다수의 돌덧널을 매장주체로 하는 고분이다. 44호분의 경우 지름 25~27m 가량의 원형에 가까운 대형봉토 내부의 중앙에 으뜸돌방이 위치하고 이 돌방의 장벽과 단벽 쪽에 각기 1개씩의 딸린돌방이 배치되어 모두 3개의 돌방이 있다. 이를 중심으로 다시 32개의 작은 돌덧널들이 배치되어 있다. 주피장자는 장신구·무기·투구·마구·토기류 등과 함께 으뜸돌방에 매장되어 있으며 나머지 돌방과 돌덧널에는 피순장자들과 껴묻거리가 묻혀 있었다.
45호분도 44호분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2기의 돌방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11개의 돌덧널로 구성되어 있다. 으뜸돌방에서는 초화형금동관·금제귀걸이·목걸이 등의 장신구류, 삼엽문환두대도·쇠투겁창·쇠살촉 등의 무기류, 비늘갑옷편, 안장꾸미개·발걸이·재갈·말띠드리개 등의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44호분과 45호분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순장했다. 지산동고분군의 중심 연대는 대략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있으며 이 시기는 대가야의 전성기에 해당된다.
III. 결론
삼국의 고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아봤는데 고분의 다양한 형식과 그 영향을 알게 되었다. 고분이 가지는 의미는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고분의 형식변천을 통해 그 시대의 영향력의 흐름도 알 수 있으며 특히 벽화분을 통해서 그 시대상을 알아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부장품의 발굴은 그 시대의 공예실력과 문화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을 정리하면서 벽화분이 가지는 가치와 그 내용, 백제고분을 통해서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 무령왕릉을 통해 알게된 것들, 신라고분이 가지는 구조의 특이성에 의한 많은 유물의 발굴, 가야고분의 가야의 특색 등을 정리하며 고분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참고문헌>
김기웅, 『고분』, 대원사, 1998.
김원룡, 『한국고고학 개설』, 일지사, 1989
김원룡, 『한국미술문화의 이해』, 예경, 2004.
조유전, 『발굴 이야기』, 대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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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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