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비판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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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마네의 작품은 지금 보면 별게 아니지만 19세기 중엽 당시에는 일종의 플레이보이지 같은 효과를 만들어 냈다. 남자신사들이 발가벗고 있는 창녀하고 점심식사 하는 것을 그린 것이다. 당시에 파리에선 이 그림처럼 돈 많은 신사들이 파리 시외에 창녀를 데리고 가서 발가벗겨놓고 자기는 옷 입고 노는 문화가 유행했다. 그것을 마네가 그린 것이다. 현대적인 분위기로. 그것을 다시 이용해서 창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같은 포즈로 앉아있고 옆에 가수들이 신사복을 입고 있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앨범으로 낸 것이다. 마네의 그림은 워낙 유명하니까 보는 순간 다 알 수 있게된다. 얘기를 안해도 문화적 맥락이 그대로 전달된다. 해서 앨범이 엄청나게 팔렸다. 그런 식으로 순수예술을 이용하는광고. 역관계로 보면 대중문화가 순수예술을 잡아먹고 있는 꼴이다. 순수예술은 안 잡히려고 발버둥치다가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있는 모양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중문화가 순수예술을 다 잡아먹게 하는 것이 좋으냐하면 결국은 광고가 예술을 잡아먹는 결과밖에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 따라서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대중문화를 싹 없애 버리고 모더니즘 시기처럼 순수예술만 주장하자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개방적, 역동적, 참신함 등등의 특징을 다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순수예술이 더 정신을 차려서 대중문화의 긍정적 측면을 받아들이면서 대중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칼아트 출신의 로리 앤더슨 같은 여자 예술가처럼. 이 사람은 대중시장으로 돌파해 들어간다. 그래서 대중전위주의라 부를 수 있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순수예술에도 능통하고 대중문화에도 능통하다. 그래서 양쪽에서 다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전위예술가라는 것이다. 뉴욕에서 복합매체 공연예술가, 이 사람은 화가도 사진가도 그렇다고 음악가도 아니다. Multi-Cultural Artist, Multi-Media Artist, Multi-장르 Artist라고 자기 스스로 위상을 정한다. 칼아트가 바로 그러한 예술가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그 중에 대표적 인물이다. 판도 많이 팔려서 돈도 많이 벌고 비판적인 작업을 통해서 뉴욕에 있는 미술관과 보수적 매체, 잡지도 뒤흔들어 놓은 작가다.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왜냐하면 사진도 잘 찍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육을 잘 받는다해도 원래 재능이 없으면 어쩌겠는가. 이런 드문 경우는 계속 나와주면 좋겠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중매체의 이미지와 기법을 비판적 실험에 이용하려는 실천적인 순수예술의 형식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재주는 하나밖에 없더라도 대중매체의 이미지와 기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적의 무기를 가지고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그것도 안될 때는 전통적인 순수예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판적 예술도 좋다. 전통적인 순수예술이란 몸으로 하는 것이다. 신디사이저 음악과 달리 첼로줄에 손가락을 베이며 하는 연주라든지 거대한 캔버스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붓 들고 수십일 을 고생하는 그림, 컴퓨터로 편집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는 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모든 잠재력으로 세계와 부닥치는 그런 방식이다. 정보화시대의 대중문화매체는 미디어를 통해서 세계와 접촉을 한다. 사람과 사람을 통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부딪치는 문화란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인간이 모두 간접적인 방식으로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 몸을 써야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하고 자연과 접촉을 해야 한다. 그런 힘은 보존해야하고 강력히 키울 필요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전통적인 순수예술이 필요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순수예술을 모더니즘시기의 끝도 없고 무의미한 방식으로 계속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대중매체의 부정적 측면, 정보화 사회의 소외문제, 자연파괴를 환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결국 문제는 고급문화의 위기인 포스트모던이라는 상황에서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 측면을 순수예술이 가지고 있는 비판적 힘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의 문화 정치적인 과제이다.
이런 문제들을 묶어보면 세계의 입체적인 좌표축이 그려진다. 정치경제문화라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세 측면이 정치적으로 탈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한편 끊임없이 정치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갈등이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어떤 사회든 간에 평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화가 심해지기 마련이다. 마치 인력과 천력처럼 작용하는 힘이 있기 있게된다. 또 한 측면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캐피털리즘과 포스트캐피탈리즘이 상존 한다. 하나는 자본주의에는 파시즘적 경향이 있고, 사회 민주주의적 경향이 있다. 70년대 영국의 사회 민주적 경향과 30년대 독일의 파시즘적 경향이 동시에 있다. 끊임없는 캐피탈축적으로 가려는 것과 만들어진 자본을 사회로 환원시키고 넓히려는 움직임이 사회에 존재하게 된다. 이것을 좌표에 그려보면 여덟 개의 덩어리가 나오게 된다. 이것을 보면 자기가 여덟 개의 덩어리 어디에 좌표에 속해있는지를 알 수 있다. 포스트모던한 상황에서는 밑에 것이, 모던한 상황에서는 위의 네 개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던한 상황에서는 네 가지 입장이 가능하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비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입장 속에서 대중문화의 긍정적 측면과 순수예술의 비판적 시각을 결합한 것은 여덟 개중의 한 두개이다. 그것을 만드는 것이 90년대 문화를 진짜문화, 개방적 문화, 민주주의적이고 비파시즘적 문화, 비상업적이고 활력을 가지는 문화로 만드는 관건이 된다. 그러나 94년까지의 경향을 보면 두개를 결합시키는 성과는 미술, 문학, 영화 어디에서도 뚜렷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것은 좌표를 잘못 그리는 데 이유가 있다. 고급문화가 위기에 빠진아래 지도를 잃고 카오스적 상황에 빠진 것이다. 설악산에서 태풍을 맞아 길을 잃은 것과 비슷하다. 빨리 지도를 찾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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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6.10.15
  • 저작시기2006.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67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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