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공예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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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찬란한공예문화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 론

Ⅱ.본 론
1. 청동기 문화를 꽃피우다
1) 청동기 시대
2. 만능 금속 철을 이용하다
1) 원삼국 시대
3. 황금빛 찬란한 삼국시대
1) 고구려
2) 백제
3) 신라
4) 가야

III. 결 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달아 장식했다. 관 테의 좌우에는 귀고리 형태의 드리개(장식)를 달았다.
이 금관은 다른 금관에서 볼 수 있는 옥 장식이 없고, 금으로만 이루어진 점이 특징이다.
천마총금관(天馬塚金冠)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금관이다. 천마총은 경주 고분 제155호 무덤으로 불리던 것을 1973년 발굴을 통해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금관은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32.5㎝의 전형적인 신라 금관으로 묻힌 사람이 쓴 채로 발견되었다.
머리 위에 두르는 넓은 띠 앞면 위에는 山자형 모양이 3줄,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이 2줄로 있는 형태이다. 山자형은 4단을 이루며 끝은 모두 꽃봉오리 모양으로 되어있다. 금관 전체에는 원형 금판과 굽은 옥을 달아 장식하였고, 금실을 꼬아 늘어뜨리고 금판 장식을 촘촘히 연결하기도 하였다. 밑으로는 나뭇잎 모양의 늘어진 드리개(수식) 2가닥이 달려있다.
금관 안에 쓰는 내관이나 관을 쓰는데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널(관) 밖에서 다른 껴묻거리(부장품)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4) 가야
가야는 흔히 ‘일어버린 왕국’으로 알려져 왔다. 그것은 가야에 관한 역사기록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이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가야의 역사를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으며 금석문 또한 거의 없음에 기인한다. 다행히도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가야의 왕릉급 무덤이 속속 조사되면서 잃어버렸던 가야사의 모습이 상당 부분 복원되고 있다.
가야사는 대체로 전기와 후기로 대별된다. 전기가야의 중심국은 현 김해에 도읍하였던 금관가야이다. 김수로 왕 탄생 설화가 길음 구지봉과 근거리에 위치한 대성동 고분군이 왕과 왕족의 묘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가야적인 유물로는 덩이쇠 *[철정]등 철소재와 갑옷, 투구 등 철제품이며, 수입품 가운데 동제품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북방 지역으로부터 들여온 청동솥 [동복]과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람개비 [파형동기]와 원통형 청동기 [통형동기]가 대표적이다.
후기가야의 중심국은 현 고량에 도웁하였던 대가야이다. 대가야는 서기 479년 중국 남조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보국장군본국왕’이라는 작호를 받을 정도로 크게 성장하였으며 특징적인 금속공예문화를 꽃피웠다. 가장 전형적인 공예품으로 금관과 금귀걸이, 큰칼이 있다.
가야의 관은 주로 대가야 지역에서 출토된다. 가야의 귀걸이는 주로 대가야권에서 출토되는데 고령과 합천이 분포의 중심이며 모두 *가는고리 귀걸이 뿐이다. 초기의 귀걸이는 서기 5세기대백제 한성도읍기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여 친밀하였던 두 나라사이의 역사적인 관계를 증명해 주고 있다.
가야의 돈, 철정(鐵鋌)
경상남도 김해시 양동리에 있는 가야 고분에서는 수십 개의 철정이 발견되었다.
철정은 길쭉한 막대처럼 생긴 철 덩어리인데, 당시에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했던
일종의 화폐이다.
철정의 모양은 길이가 15cm인 것부터 큰 것은 30cm정도이고, 허리 부분이 양 끝부분보다 약간 가늘다.
철정 중에큰 것은 가운데 묶어 가지고 다니도록 되어 있다.
가는고리 귀걸이
가야 귀걸이의 형태를 보면 굵은고리 귀걸이는 없으며 모두 주환이 매우 가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간장시으로는 속이 비어있는 둥근장식을, 그 아래에는 사슬형 금구를 이어서 하트모양 또는 원뿔모양 드림을 매달았습니다. 그런데 이는 일본의 5~6세기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귀걸이와 그 구조가 매우 닮아 있어 주목됩니다. 아마도 일본이 귀걸이 제작에 대가야의 기술자 집단이 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III. 결 론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게되었을때 감탄을 하며 공예품들을 찬찬히 둘러 보았던 기억이난다. 옛날에는 지금에 비해 작업 환경이 역부족이었을텐데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꼼꼼하고 정교하게 공예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품으며 그 자리에서 그것들을 모두 파헤쳐 보겠다는 냥 하나하나 세심하게 훑어 보았었다. 이번 레포트를 빌어 다시 한번 우리나라 공예 문화재를 접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박물관에서 느꼈던 감정 그대로이다.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는 그 자태란.. 그들의 장인정신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IV. 참고문헌
남궁연임, 『고신라 금속 장신구의 연구』, 북수힐, 2003
심봉근, 『한국 청동기 시대 문화의 연구』, 동아대학교출판부, 1990
이건무, 조현종, 『선사 유적과 유물』, 솔출판사, 2003
이난영, 『한국 고대의 금속공예』,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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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27
  • 저작시기2006.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8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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