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의 이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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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문화의 이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대 구분과 연대의 이해

2. 원시문화

3. 아스카(飛鳥)시대

4. 나라(奈良)시대

5. 헤이안(平安)시대

6. 가마쿠라(鎌倉)시대

7. 남북조시대

8. 무로마치(室町)시대

9. 전국시대

10.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

11. 에도시대

본문내용

부나가가 살던 아즈치성의 이름을 따서 이 시대를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라고 부른다. 주체는 노부나가히데요시를 정점으로 하는 신흥 다이묘와 가신들,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교토사카이나가사키 등의 거상들이었다.
특징은 첫째 현실긍정적이고, 신선미가 풍부하며 웅장하고 화려한 풍치를 드러낸다. 동시에 차분한 다도회가 유행했다. 둘째 불교의 예속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의 현세를 즐기려는 풍조였다. 셋째, 지방에 큰 도시가 생겨나고 중앙과 지방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문화가 지방까지 확대되었고 또한 다양한 신분에게 확산되었다.
11. 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황으로부터 정이대장군에 임명된 1603년에서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大政奉還)한 1867년 10월까지 256년 동안을 에도 시대라고 한다.
이 기간 동안 권력의 중추 기관인 바쿠후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있었기 때문에 에도 시대 라고 하며, 도쿠가와 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대는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대외적으로 외국침략을 받지 않았고, 대내적으로는 바쿠한(幕府藩)체제가 확립된 17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였다.
(1) 오다노부나가
전국시대를 돌아볼 때 흔히들 그 시대의 다이묘들은 일본열도를 통일하기 위해 서로 전쟁을 벌였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최대관심사는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낸 구니(國)의 보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구니를 초월하여 천하를 넘본 유일한 전국 다이묘가 바로 오다노부나가였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호랑이로 불리던 오다노부히데의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을 거부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오와리의 바보, 멍청이 또는 개망나니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지휘관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특히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사상 최강을 자랑하던 신켄의 기마단을 총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전법을 써서 전멸시킴으로써 전국시대를 통일시켰다.
그러나 난세의 풍운아 노부나가는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1582년 6월 1일 혼노사(本能寺)에서 격전 끝에 할복했다(혼노사 정변).
‘내 적은 바로 혼노사에 있다’는 유명한 혼노사의 배는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명언으로 남아있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도 노부나가의 짚신을 담당하는 아시가루로, 체온으로 짚신을 데워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은 유명한 인물이다. 혼노사 정변을 일으킨 아케치 미쓰히데를 격파하고, 전국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시바타 가쓰이에를 제건한 후 각국의 영주들을 차례로 항복케 하여 100여년간 계속되어온 전국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배경지식이 고루해진다 하여 죽을 때까지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글 한자도 못썼으나, 권력의 정점에 오른 후에야 몇자 배워 떠듬떠듬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얼마나 탁월한 독심능력과 지모를 타고났기에, 난세의 풍운아로 불리는 노부나가의 생각을 정확히 간파하여 중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천하를 통일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물론 우리로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죽일 놈이지만 일본에서는 청소년들이 존경하는 인물랭킹 2위에 뽑힌 영웅이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에야스는 미카와(현재의 아이치현)의 지방호족 출신으로 8살 때부터 노부나가가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칠 때까지 11년간 인질생활을 겪었다. 그가 나중에 인내의 대명사가 된 출발점도 볼모생활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착실히 실력을 쌓아오다 노부나가와 동맹하여 영지를 확장했으며, 히데요시 밑에서 17년간 신하노릇을 하면서도 호죠씨의 뒤를 이어 간토지역에 250만석을 영유하는 최대의 다이묘로 군림했다. 게다가 그는 조선에도 출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병력을 털끝하나 상하지 않게 했다.
히데요시 또한 이에야스가 비범한 인간임을 알고, 패권을 잡은 후에도 이미 결혼한 동생을 이혼시켜 이에야스의 정실로 보냈고, 어머니 또한 인질로 보내게 된다. 그토록 효자라고 소문난 히데요시가 그런 행동을 할 정도였으니, 당시 이에야스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에야스에게 히데요시의 죽음은 대권장악의 마지막 기회였다. 1600년 9월 15일 이시다 미Tm나리(石田三成)가 이끄는 西國의 다이묘들을 중심으로 한 8만 2천의 군사와 東國의 다이묘들을 중심으로 한 이에야스군 7만 4천은 세키가하라에서 결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승리함으로써 1603년 정이 대장군에 임명되고, 에도에 막부를 열게 된다.
(4) 노부나가히데요시이에야스의 leadership 비교
이들 세 사람은 同시대를 누볐으나 character는 천양지차여서 후일 비교의 대상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 중 하나가, 손안에 있는 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이다.
노부나가 : 다혈질에 성미가 급한 반면에 냉정하고 과감하게 결단력을 발휘한다. 울지 않으면 새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 즉시 죽여버린다.
히데요시 : 지혜가 뛰어나고 적극적이며 대체로 사랑받는 편이다. 자존심 또한 강한 성격으로, 새에게 자극을 주든가 놀라게 하는 등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새를 울린다.
이에야스 : 자기 통제에 능한 성격으로 신중하고 인내심이 강하다. 자신의 손 안에 새가 있는 이상 도망은 못가니까 죽지 않도록 보호해주면서 언젠가 울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다.
세 사람의 관계를 종합해서 결론을 내린다면, 노부나가가 열심히 농사를 짓고, 히데요시가 맛있게 밥을 지어놓으니, 이에야스가 그 밥상을 통째로 받아먹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십여년간 일본에서는 거품경제의 논란과 함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본정치 지도자들의 무능력과 리더십 부재에 관한 아쉬움과 비난의 얘기들이 있었다. 이 시기 일본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일본 매스컴을 통해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일본 역사상의 인물로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되살릴 필요가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인데, 1위가 오다노부나가였고 2위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때에 따라 존경하는 인물,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이 바뀌겠지만, 현재 일본 정치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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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02
  • 저작시기2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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