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학파의 윤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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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토아 학파의 윤리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제논의 윤리사상과 초기의 스토아주의자들
2. 에픽테투스: 고통에 대한 스토아적 무관심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주의의 요약된 견해
4. 스토아학파의 인식론과 자연법에 관한 학설

Ⅲ.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상은 거의 2세기 동안이나 기독교와 대결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으며, 그 이론의 상당한 부분이 후세의 기독교신학에 융합되었다. 그리고 스토아사상은 칸트, 스피노자를 비롯한 일군(一群)의 현세적인 철학자들의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이 감정을 억제하고 전적으로 이성의 명령에만 따를 수 있다면 얼마나 높이 평가할 일인가!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생활은 정말로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가 만들어 낸 다른 모든 철학과 마찬가지로 스토아철학도 결점이 있다.
감정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감정을 완전히 제거한다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경험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해 주는 감상과 정서가 없다면 생활이 얼마나 메마르고, 둔감하며 따분할 것인가!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어도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과 조각가들의 작품, 그리고 아름다운 명곡을 감상하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노릇인가. 가치의 영역에 눈이 먼 정신적인 불구자만이 미학적인 진리, 도덕적인 진리, 종교적인 진리, 그리고 철학적인 진리에 대하여 완전히 무감각해질 수 있을 것이다. 느낌(feeling)이 없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도, 학문에도 관심이 없을 것이며, 개인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일은 물론 인생살이 그 자체에 대하여 흥미를 잃고 말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염세적인 생활관(the Tenet of Taedium Vitae), 즉 사람들은 누구나 생에 대하여 환멸을 느낄 때는 최종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신념 때문에 삶에 대한 무관심과 환멸이 몇몇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제논이나 클레안테스 같은 스토아주의자는 이 이론을 방편으로 하여 죽음을 택했으며, 차가운 사색으로 일관해 온 세네카도 에픽테투스의 정신과 아우렐리우스의 교훈에 따라 마지막 순간가지 감정이 없는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어떤 사람이 방에 연기를 피운다고 생각해 보라. 만약 연기가 심하지 않으면 나는 머물 것이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면 나는 밖으로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항상 문이 열려있다는 사실(자살이라는 탈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Epictetus, Discourses, bk. 1, chap. 25.
라고 에픽테투스는 주장했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도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당신의 권리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이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때는 목숨을 끊어라. 그러나 아무런 고통도 없는 듯이 그렇게 하라. 방 안에 연기가 가득하면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Marcus Aurelius Antoninus, Meditations 5. 29.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가르침과 행동양식은, 특히 노예였으며 불구자였던 에픽테투스가 그의 주인에게 만약 그가 계속하여 다리를 비튼다면 결국은 부러지고 말 것(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최후까지 견디니까)이라고 경고한 사실을 생각하면 스토아사상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아무도 다리가 부러질 때 느끼는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아학파의 사상가들은 악이 무지와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악이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선도 또한 선이 아닌데도 이해의 부족 때문에 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스토아주의 사상가들이 그들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는 한, 다분히 ‘무지에의 논증의 오류’(Argumentum ad ignorantium fallacy), 즉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사실을 제시하지 않고 상대방을 무식하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논리인 것이다. 이해가 항상 문제를 해결하고 악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정신과의사는 살인마가 왜 살인을 일삼는지 이해할 수 있고 또 쉽사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같이 동정하고 슬퍼한다 하더라도 비극 그 자체는 제거되지 않는다. 이 같은 주장을 최대한 받아들인다면 아마 “악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가끔씩 그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될 것이다. 인간이 선과 미의 역할을 이해할 때, 그것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키게 된다는 사실이 실로 다행스런 것이다. 그리고 인간생활이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은 또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삶의 기쁨(jodie de vivre)을 잃을 때도 있지만 그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Acknowledgment is made Brand Blanshard, Reason and Goodness(New York:: Macmillan Co., 1961), chap. 2, for generating some of the ideas expressed above.
스토아주의의 몇 가지 목표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같은 이상은 우리들ㅇ게 실망을 안겨 주며 결국에는 자포자기하게 만들 수 있다. 정신의학자 아들러(Adler)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했을 때 흔히 노이로제 증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분명히 스토아학파의 이론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 목표를 완화해야 하며 인간의 능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생활환경에 대하여 완전히 무관심하라는 스토아철학의 이상을 달성한다는 것은, 정신병자만이 자신의 주위환경에 대해 극단적인 무관심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신병자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참고 문헌>
로버트 L. 애링턴, 서양윤리학사, 서광사, 2003
W.S. 사하키안, 윤리학의 이론과 역사, 박영사, 1986
Johannes Hirschberger, 서양철학사 上, 이문출판사, 1981
Samuel Enoch Stumpf and James Fieser,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열린책득, 1966
B. 러셀, 서양철학사 上, 집문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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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07
  • 저작시기2007.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0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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