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감수성의 혁명과 자기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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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승옥, 감수성의 혁명과 자기 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김승옥의 작가세계
2. 김승옥 작품의 내적 성찰과 기교주의적 경향
3. 근대적 자본주의와 개인의식의 고양
4. 잃어버린 자아와 자기 세계의 확립
5. 순수성의 훼손과 현실논리의 수용
6. 60년대 도시인들의 피폐한 내면 풍경

III. 작품 분석
1. 서울 1964년 겨울
2. 무진 기행

IV. 결론

* 참고 도서
* 연보

본문내용

이상'과 '순수'를 버리고 '현실의 속물'이 되어가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으로 귀결된다.
IV. 결론
김승옥을 60년대 작가라고 하는 말은 그의 작품이 60년대적 특징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50년대와 구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은 4·19세대의 주역으로 김승옥이 가지고 있던 감수성을 통해 나타난다. 먼저 50년대 문학이 예외 없이 간직하고 있던 강력한 논쟁점에 대한 집착 내지 교훈주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50년대 문학이 개인의 문제를 전쟁이라는 전체의 문제 속에 귀속시킴으로써 개인의 문제를 대개의 경우 집단의 문제로 귀속시켰다. 그러나 김승옥은 거대한 사회적 논쟁점을 지닌 교훈 주의적 내용을 그리고 있지 않다. 한 개인의 모습과 내면세계를 그리거나 주변의 사물이나 환경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승옥 소설은 자기 탐구에 의한 「자기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50년대 있어서 개인은 상황의 절대적인 압력을 선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인물들의 의식의 수동성을 극명히 하기 위해, 병을 앓거나, 군대를 갔거나 하는 특정 상황이 설정된다. 반면, 60년대 개인은 50년대와 비슷한 조건, 상황 속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상황을 뚜렷이 인식함으로써 그 상황을 극복해 낸다. 김승옥의 경우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그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그러하다. 즉, 자기의 상황을 수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수락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김승옥의 60년대적 의의는 언어에 있다. 한글세대로 대상과 감성과의 거리를 최소한으로 압축시켜 사물에 작가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옷을 입혀 활성화시켰으며 이는 모국어의 새로운 활기와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한국소설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건의 이미지화와 공감각적 언어구사, 공간에 대한 묘사를 실현했다는 것이다. 또 70년대의 최인호·한수산 등의 문체도 결국 김승옥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김승옥의 소설 언어는 젊은 세대의 신선한 언어 감각과 그 감각의 상업화 가능성까지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 참고 문헌
김승옥,『김승옥 소설전집1』, 문학동네, 1995.
김병익, <시대와 삶>,『상황과 상상력』, 문학과 지성사, 1979.
김 현, <구원의 문학과 개인주의>, 『김현문학전집 2』, 문학과 지성사, 1991.
나순일, 김승옥 소설연구, 계명대학교 석사논문, 1991.
류보선, <개인과 사회의 대립적 인식과 그 의미>, 『한국현대 작가연구』, 문학사상사, 1991.
류양선, <김승옥의 소설, 세계 또는 '서울, 1964년 겨울'에 유폐된 영혼>, 『작 가 연구』제6 호, 새미, 1998.
유종호, <감수성의 혁명>, 『현실주의 상상력』, 나남, 1991.
이호규, <소통 회복 지향의 일상적 주체>, 『작가연구』 제6호, 새미, 1998.
* 작가 연보
1941년 12월 23일 일본 오사카에서 아버지 김기선과 어머니 윤계자의 장남으로 태어남.
아명 은 학길.
1945년 귀국하여 전남 진도에서 수개월 지내다가 본적인 전남 광양에 일시 거주.
1946년 순천으로 이사, 정착함.
1948년 순천 남국민하교 입학. 여순반란사건 발발. 부친 사망.
1949년 여수 종산국민학교(현재 중앙초등학교)로 전학.
1950년 6 25 발발. 경남 남해로 피난. 수복 후, 순천 북국민학교로 전학.
1952년 월간 『소년세계』에 동시를 투고하여 게재, 이후 동시, 콩트 등 창작에 몰두.
1954년 순천중학교 입학. 교지 편집, 학교대표 배구선수, 학생회장 등 활동. 교지에 콩트, 수필 등을 발표.
1957년 순천고등학교 입학. 교지 편집, 학교대표 배구선수 등 활동.
1960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불문과 입학. 문리대 교내신문 『새세대』기자 활동, 한국일보사 발행 『서울경제신문』에 연재만화를 아르바이트로 그려 학비를 조달함.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생명 연습」당선으로 문단에 데뷔. 강호무 김성일 김창웅 김치수 김현 김치수 염무웅 서정인 최하림과 동인지 『산문시대』발 간.
단편 「건」, 「환상수첩」 등을『산문시대』에 발표.
1963년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확인해 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을 『산문시대』
에 발표.
1964년 「역사」(『문학춘추』),「무진 기행」(『사상계』),「차나한잔」 (『세대』), 「싸게 사들이기」(『문학춘추』) 등 발표.
1965년 서울대학교 졸업. 「서울 1964년 겨울」로 사상계사 제정 동인문학상 수상.「다산 성 1 」(『창작과 비평』),「시골처녀」(『신동아』) 발표.
1966년 「다산성 2」(『창작과 비평』), 「염소는 힘이 세다」(『자유공론』) 등 발표. 장 편 「 빛의 무덤 속」을 『문학』에 연재.「무진 기행의 시나리오 집필을 계기로 영화계 와 관계 시작.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이 창문사에서 출간.
1967년 중편 「내가 훔친 여름」을 『중앙일보』에 연재. 김동인의 「감자」를 각본, 감독 하여 영화로 만듦. 백혜욱과 결혼.
1968년 「야행」을 『월간중앙』에, 장편 「보통여자」를 『주간여성』에 연재. 이때부터 시나리오 각색에 주력함.
1970년 당시「오적」사건으로 김지하가 투옥되자 이호철 박태순 이문구 등과 김지하 구명 운동 시작.
1971년 월간지 『샘터』편집.
1976년 창작집 『서울 1964년 겨울』,『60년대식』을 서음출판사에서 출간.
1976년 옴니버스 스타일의 소설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를 『문예중앙』에 발표.
1980년 장편 「먼지의 방」을 『동아일보』에 연재 시작했으나 광주사태로 인한 집필 의욕 상실로 15회만에 자진 중단.
1981년 4월 종교적 계시를 받는 극적 체험을 한 후, 성경 공부와 수도 생활 시작.
1986년 『이상문학상수상작가대표작품선』이 문학사상사에서 출간.
1987년 『서울 1964년 겨울』을 성지출판사에서, 『환상수첩』을 고려원에서, 『다산성』 을 도 서출판 한겨레에서 출간.
1991년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99년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1년 성결대에서 신학 공부
2004년 뇌경색으로 언어 기능 마비. 현재 재활 치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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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5.27
  • 저작시기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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