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사의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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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미ㆍ소 공동위원회의 쟁점과 결말》

1. 머리말

2. 예비회담과 미ㆍ소의 입장

3. 미ㆍ소의 정략과 제 1차 미ㆍ소 공위의 쟁점

4. 공위 재개를 위한 미ㆍ소의 물밑 접촉

5. 평행선을 달린 제 2차 미ㆍ소 공위

6. 맺음말



《5ㆍ10총선거의 재조명》

1. 머리말

2.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정책
 (1) 미국의 정책
 (2) 소련의 정책

3. 남ㆍ북한에서의 분단체제 형성 과정
 (1) 북한
 (2) 남한

4. 미ㆍ소 공위의 실패와 미국에 의한 한국통일 문제의 유엔 상정

5. 유엔 감시하의 5ㆍ10총선거
 (1) 선거제도.
 (2) 선거 분위기
 (3) 선거결과

6. 맺음말



Ⅰ. 들어가며

Ⅱ. 기존의 연구 성과
 ⅰ) 미국의 대한정책, 1945~1948
 ⅱ) 이승만의 단독정부론 제기와 그 전개
 ⅲ)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 이승만 국회의장의 역할을 중심으로
 ⅳ) 이승만 대통령의 두 개의 이미지 - 국부ㆍ최고영도자

Ⅲ. 의견정리

Ⅳ. 나오며

본문내용

있었으면 지금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랬다면 미국과 소련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주입시키더라도 우리 스스로의 방안을 찾지 않았을까? 아무리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많고, 국가 건설을 위한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하더라도 지식인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건국 당시 강대국들의 영향을 받아서 남ㆍ북한이 분단되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사상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분단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되어갈 무렵 이승만은 단독정부론을 주장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이승만에 의해 남과 북이 분단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위의 연구 성과를 통해 설명했듯이 남한에서의 단독정부건설로 인해 한반도가 분단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승만이 이러한 주장을 하기 이전부터 북한은 이미 38선 이북지역만의 단독정부를 형성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한이 먼저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세웠다 해도, 이것으로 인해 남한이 분단을 고착화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표면적인 결과만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일 수 있다.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워 하루빨리 대한민국을 건국하고자 했다. 여기서 나는 이승만의 단독정부론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그 당시 우리가 결정해야 했을 하나의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승만이 건국 과정에서 과연 자신의 이익을 단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위의 연구들을 통해, 이승만이 우리나라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승만이 살아온 배경과 교육받은 사상으로 인해 미국의 민주주의를 선망하고, 우리나라에 그러한 미국식 민주주의를 도입해 보다 나은 국가를 설립하고자 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만 하다. 또 이승만이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압도했다는 사실로 비추어 보아, 그의 지도력과 카리스마는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독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모습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친일세력과 결탁하는 행동은 이승만을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된다. 또 4ㆍ19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정치적 권력을 위해 수없이 해왔던 부정적인 노력으로, 이승만이 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하고자 했던 그 의도가 어쩌면 자신의 야욕을 위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한다. 비록 처음 국가를 건설할 때의 노력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를 부정적 인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5ㆍ10총선거는 우리가 경험했던 최초의 선거였다.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해서 선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성공적으로 잘 치러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5ㆍ10총선거 이후 정치 역사를 돌아보면 부정선거의 연속이었다 할 수 있다. 독재를 위한 헌법 개정이 여러 차례 있었고, 금권선거나 투표결과 날조도 수 없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의 선거는 강압적이고, 위협적이긴 했지만 선거에 대한 자유와 평등은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부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선거를 반대하는 좌익세력의 폭력과 우익세력들만의 선거참여는 아쉬움을 남겼다. 만약 좌ㆍ우익 모두 선거에 참여하여 좌익세력들이 어느 정도의 권력을 차지했더라면 친일세력들을 청산하고, 토지개혁 단행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국외적ㆍ국내적으로 의견을 정리해 보았다. 그 당시 우리의 역사는 국제정치 속에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국내적인 민족분열로 인해 결국 분단의 한반도를 만들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처음에 제시했던 정치의 더딘 발전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처음 시작이 불완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친일세력이 친미세력으로 변모하여 지금까지 정치를 주도하고, 정책위주의 정당이 아닌 인물 중심의 정당을 유지되며, 미국의 정책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아마도 건국초기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불행한 역사 가운데 민족의 해방을 위해, 민족국가 설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우리는 현재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과거의 한국역사를 돌이켜 보면 불운한 역사의 연속이었더라도 그러한 모습을 토대로 더욱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직 대한민국이 지나온 길은 6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비록 시작은 불완전했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과거를 교훈삼아서 더 발전해야 할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불행한 역사 위에 더 굳건해진 대한민국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Ⅳ. 나오며
10장이 넘는 이 보고서를 쓰면서, 나는 한국의 건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각각의 논문들을 통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우리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답답함을 느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은 현재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국이 되었는데, 전쟁의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는 그에 뒤쳐져야 하는 것인가? 공평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 조금의 원망도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속에서 우리의 이름을 떨치고 있다. 비록 정치분야는 지금 막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나머지 경제ㆍ문화ㆍ과학기술 등 그 밖의 분야는 계속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의 다가올 대한민국만을 떠올려야 하겠다. 계속적인 대한민국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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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2.16
  • 저작시기2007.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2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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