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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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자연세계에의 관심
1. 그리스 철학의 발생
2. 밀레토스학파 - 근원적 물질에의 추구
3. 피타고라스 학파 - 형상의 철학
4. 엘레아 학파 - 존재의 철학(형이상학)
5. 헤라클레이토스 - 변화의 철학
6. 원자론과 고대유물론

Ⅱ. 자연세계에서 인간사회로
1. 소피스트의 철학
2. 소크라테스(Sokrates, BC 470?-399)의 철학
3. 플라톤의 철학
4.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Ⅲ. 고대철학의 종말과 신학의 등장
1. 고대철학의 종말
2. 고대말기의 대중운동과 종교
3. 신학의 등장
4.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사상

본문내용

하고 유부녀와 동거하며 아들을 낳기도 하였다. 그는 20대초반에 마니교의 열렬한 신자였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그는 10년이상 마니교에 심취했으나 학문적. 예술적 탐닉을 거듭한 결과 마니교에 회의를 느끼고 그 당시 유행하던 회의주의에 빠졌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의주의에서 빠져나온 것은 그가 로마로 이주한 후였는데 이 시기에 15년간 관계를 맺어 온 내연의 처와 헤어지고 결혼을 하였다. 또 이 시기에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기독교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이제까지의 행동을 혐오하고 청빈한 수도사의 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집 정원에서 "들어서 읽어라"는 어린이의 노랫소리를 듣고 성서를 펼쳐 읽어 내려갔는데 마침 바울이 도덕적 회개를 설교하는 부분이었다. 이것이 마치 신의 계시처럼 느껴져 이후 세속생활을 버리고 사색과 기도에 전념하였다 이때가 386년으로 그의 나이 32세가 되던 해였다. 391년 그는 사제가 되었고 395년 히포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이후 그의 사상적 활동은 주로 기독교신앙을 체계화하고 변론하는데 집중되었는데 그는 "인간의 지성은 신의 보상이다. 그러므로 믿기 위해서 이해하려 하지말고 이해하기 위해서 믿으라"고 말하면서 지성보다 신앙을 우위에 두었고 믿음이 사고나 추리력보다 우위에서야 한다는 중세철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살던 시대는 아직 기독교의 교리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시기였다. 많은 성직자들이 이 시기에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고자 하였는데 이들을 교부라고 했다. 이들은 예수의 후계자로 자처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확대. 보급하고 신학체계를 만들어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사회 정치적 조건에 맞추려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제국이 황제권력 약화와 야만족의 침입으로 서서히 붕괴되어가자 로마제국을 수호하고 교권을 강화하고자 마니교와 기독교내의 이단에 대해서 엄격하게 대하였다. 그는 당시 수도사였던 펠라기우스가 인간의 삶이 미리 절대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예정설과 인류가 아담과 이브의 원죄 때문에 죄 값을 치뤄야 할 운명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구원예정설을 거부하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진정한 신앙은 죄를 범하기 쉬운 경향을 억제하고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선한 쪽으로 개발하는 것이며 그것은 윤리적인 선택의 문제이다"라고 주장하자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그는 "신의 은총 없이 인간의 의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의지나 구원의 문제는 철저하게 신의 권한이며 신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다"라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평생을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그의 진리는 이론적 지식이 아닌 구원의 진리였다. 회의주의자들이 이 세상에 확실하고 참된 진리란 있을 수 없고 설령 있다하더라도 알 수 없다고 주장하자 이에 대해 "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로 그를 부정한다. 회의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세상의 모든 사물을 의심할 수 있다. 내가 만지는 이 책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혹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환상은 아닌지 모든 것을 의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가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바로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오류를 범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발견을 가능하게 해주는 다른 존재가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명방식은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전혀 논리적 증명이 되지 않는다.
410년 로마가 서고트인에 의해 정복되자 많은 로마시민들이 이를 기독교의 탓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이라는 책을 통해 기독교를 변호하고 있다. 신국론의 내용을 보면 인간의지의 방향에 따라 두 가지 사회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카인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지상의 나라이고 또 하나는 아벨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신의 나라이다. 신의 나라사람들은 지상이나 현재의 삶 대신 미래의 세상을 열망하고 준비하는 사람들로써 자기 희생, 복종, 겸손을 덕으로 삼는다. 반면 지상의 나라사람들은 없어져 버릴 현세의 삶을 추구하며 자기사랑과 야망을 덕으로 삼는다. 신의 나라 통치방식은 사랑과 용서이지만 지상의 나라 통치방식은 힘과 강제이다. 인간의 역사는 이 두 나라의 보이지 않는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역사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운동이 아니다.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는 시간내의 과정이다. 시작은 신이 인간과 만물을 창조한 순간이고 끝은 인류에 대한 심판이다. 그래서 역사는 결국 최후의 심판을 위한 준비과정일 뿐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일은 현재의 세속적 삶이 아니라 앞으로 올 구원에 있다. 역사적 사건들은 앞으로 다가올 최후의 심판이나 구원과 연관될 때 의미가 있다. 따라서 역사는 구원의 역사로서만 의미가 있다. 이 구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타난 일이다. 이 사건은 신의 구원의지의 표현이자, 미래에 나타날 최종승리를 미리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신의 나라의 역사는 희망의 역사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역사를 율법이전의 시기, 율법아래 있는 시기, 율법이후 은총의 시기 등 3기로 나눈다. 역사의 주인은 신이다. 인간은 신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으며 신의 섭리는 인간의 의도를 지배하며 인간은 신의 의지를 따르게 된다. 신은 선인이나 악인, 신자나 비신자 모두를 지상의 나라에 거주시키고 그 나라와 함께 멸망하거나 악이나 불신과 싸워 이기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뜻을 완성한다. 인류의 역사, 세계사는 인간의 정의를 심판하는 신의 법정이며 고통을 통해 인류를 가르치는 학교이다. 결국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운명과 행동은 신에 의해서 미리 결정되어 있으며 역사의 모든 순간들이 신의 섭리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현실의 모순이나 부조리도 신의 섭리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 사회의 모순을 나름대로 긍정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현실을 벗어나서 초월자인 신을 인식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의 시대가 요청한 기독교 변론의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충실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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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08.01.05
  • 저작시기2007.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5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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