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사(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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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진한시대 및 위진시대의 미술

3. 남북조 시대의 미술

4. 당대의 미술

5. 송대 초기-중기의 미술

6. 송대의 인물화

7. 송대의 산수를 배경으로 한 인물화

8. 송대의 화조 동물화

9. 남송 원체 산수화(마하파)

10. 송대의 문인 화가와 선화가

11. 원대의 미술

12. 명대의 미술

13. 청대의 미술

14. 중국의 근현대 미술

15. 맺음말

16. 참고자료

본문내용

인화풍'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명조에 들어가 남화는 대가 심주, 문징명, 동기창 등으로 인하여 중국 회화사상 귀족주의적 궁중예술을 누르고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위의 남북의 2대 화풍을 정리해보면 북화는 화북지방의 험악한 기후 풍토를 배경으로 원체파의 전문적 궁정 화가 중심의 아카데믹한 전통파 예술이다. 왕실, 귀족 중심의 화려한 성격으로 강한 필치와 농채, 수묵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한편 남화는 강남 지방의 온화하고 기름진 기후와 풍토를 배경으로 재야파의 비전문적 문인 중심의 이상적 성격의 예술이다. 문인들의 절개와 지조를 표현하여 부드러운 필치와 담채, 또는 수묵을 사용한 사의적寫意的 화풍이 특징으로 시문서화를 아우른 종합 예술이다.
13. 청대의 미술
청은 만주족이 세운 정복왕조로서 명조를 멸하고 청제국을 세우니 이후 270년 동안 중국은 다시 이민족의 천하가 되었다. 이들은 정치·문화적으로 명조의 행정과 문화를 그대로 계승하여 시행하였다. 명조 말기부터 들어온 서양문물의 전래는 근대화의 결과를 낳기도 하였으나, 외국의 제국주의자들에게 침략의 기회를 만들어 20세기에 들어서 청국은 패망하게 된다. 청조 전반기인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시대는 청조의 문화·정치·경제의 절정기로서 학문과 예술을 애호하고 후원함으로서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 주위의 이웃나라인 미얀마, 타이, 베트남 및 조선 등의 각국이 중국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교류를 하여 청조의 문화는 이웃나라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침략은 청조의 국세를 기울게 하여 결국 쇠망의 길로 이끌었다. 건축은 청 문화의 전성기인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 치세 아래 약 130여 년간 대규모의 건축조영사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대의 양식을 모방하였을 뿐, 새로운 예술적 발전은 보지 못하였다.
회화는 초기에서 중기까지는 융성하였으나, 후기 이후부터는 재야 작가들의 활동이 성하였고, 또 다양한 화파와 화풍이 나오게 된다. 명 말기 동기창의 '상남폄북론'으로 청조 초기는 남화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이에는 '사왕오운'의 육대가를 중심으로 하는 묵수주의화파들과, 명말의 유민인 석도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파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사왕오운이란 왕시민, 왕감, 왕희, 왕원기의 사왕四王씨와 오력吳歷, 운수평 壽平의 2인을 합한 6대가를 말하는데 이들은 남종산수화의 명인들이다. 이들은 주로 강남 지방을 중심으로 청조 산수화의 전통을 세웠다. 한편 독특하고 기이한 화풍으로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화가로는 석도石濤와 팔대산인八大山人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명이 망하자 초야에 묻혀 화조풍월花鳥風月을 벗삼아 살면서 그림을 통하여 이민족 통치의 시대상황에 반항 의식을 표현하였다. 이는 '원말4대가'들과 정신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사왕오운'작가들이 남화풍의 전통을 계승한 아카데미즘에 대항하여, 같은 남화풍이지만 새로운 착상과 구도, 대담한 필치로서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한편 양자강 하류 북방에 위치한 양주는 청대 학술·예술의 한 중심이 되었으며 옹정과 건륭기에는 이 지방에 양주팔괴라고 불리는 문인화가가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양주팔괴는 이선李鮮, 왕사신汪士愼, 김농金農, 황신黃愼, 고상高翔, 정섭鄭燮, 이방응李方膺, 나빙羅聘등의 여덟명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개성을 중시하고 감흥의 솔직한 발현을 목표로 하여 기성의 형식이나 기교를 버리고 자유분방하게 붓을 휘둘렀다. 반전통적인 제작태도로 선적인 묘사보다 면적인 표현을 취했으며 고전적 절도를 무시하고 짙은 먹색과 화려한 색채, 강한 필세와 격한 붓처리를 하였다.
청조의 궁중 화원으로 서양화 기법을 전한 것은 이탈리아인 화가 낭세녕郎世寧, Josephus Castiglione 이다. 그는 강희제 시대 궁정 화가로 일하면서 주로 화조, 인물들을 음영법에 의하여 극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청조 말기에 이르러 나라 안팎으로 혼란하자 문인 등의 예술가들은 경제 생활이 활발한 상해·북경 등의 대도시로 모여들었다. 대도시를 생활무대로 직업적으로 그림을 팔며 생활한 이들은 사의적 작품을 즐겨 그려 일반 대중의 기호에 맞는 그림을 제작하였다. 산수화보다는 묵색이 물씬 풍기고 필치가 통쾌한 화훼·절지의 신문인화 등이 많았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오창석吳昌碩을 들 수 있는데, 운치있는 고전의 석고 문체를 잘썼고, 웅건한 필치로 화훼를 잘 그려 새로운 문인화 예술을 이루었다.
14. 중국의 근현대 미술
중국 근대 회화는 청의 말기부터 시작되는데 그 때 궁정화가가 화단의 중심이었던 풍토에서 벗어나 각지에서 유력한 화가의 배출을 기다리는 상황이 출현하였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 제일의 개항 도시가 된 상해에서는 화가들이 모여들었는데 여기에서 조지겸(趙之謙)과 임이, 오창석(吳昌碩)이 있다. 임이의 영향은 청말부터 민국 초기에 걸쳐서 상해 화단 전반에 나타났으며 오창석의 영향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20세기 전반에 전통 화풍을 새로운 시대에 접목시킨 화가로는 제백석(齊白石)과 황빈홍(黃賓虹)이 있다. 북경의 화단에서 명성을 얻은 제백석은 팔대산인과 석수, 오창석 등의 감화를 받으며 독특한 화풍을 수립하였다. 미술학자이기도 했던 황빈홍은 당송 시대 회화의 깊은 맛을 살린 산수를 그렸다. 이밖에 20세기 전반의 동향으로는 노신(魯迅)의 제창으로 이루어지는 목각화 운동, 대중과의 의사 소통을 주안점으로 한 새로운 중국 회화로의 방향도 주목되었다.
15.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중국의 회화는 전체적으로 기술적, 해석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진술 이외에도 개개인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데에 미학적 이론을 출현시켜 휴머니스틱한 분위기를 창출시켰다. 그림속의 인간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그 존재가 미약하게 보이나 오히려 그것이 중국인들이 회화에 부여하는 인간적인 가치라 느껴진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역시 개인의 창조성 또한 존중해 주는 중국의 회화는 그 원류를 따랐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화가와 미술 작품 사이의 참신하고 고무적인 끈이 작용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한다.
16. 참고자료
J.캐힐, 중국회화사, 열화당 미술전서
  • 가격1,6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8.01.13
  • 저작시기2008.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7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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