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닥터 지바고를 보고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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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의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 아닌, 그보다 13일 늦은 1월 7일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유래가 있다. 1500년대 말까지는 동방정교회와 가톨릭 등 전 기독교계는 로마시절부터 내려오던 율리우스력을 따랐으나 가톨릭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제정에 의해 1582년 동방정교회를 제외한 서구세계가 개정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게 됐다.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매년 11분이 늦어 현재는 총 13일로 차이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율리우스력을 쓰고 있는 동방정교회권은 크리스마스 등 전통행사들을 서구보다 13일 늦게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공산체제아래서 묻어져야만 했다.
조사해보니 위와 같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 정교에 관해서 조사해 보았다.
러시아정교회 [Russian Orthodox Church]
그리스도교의 한 파로서,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의 중핵을 이루는 러시아의 자치(自治)교회. 동방정교회.
비잔틴에서 러시아에 처음 정교가 들어간 키예프시대의 러시아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 대주교(大主敎)의 관할하에 있었다. 그러나 실제의 신앙행사는 수도원에서 행해졌으며, 이를 통해 주기도에 의거한 독자적인 ‘겸허한 정신’을 쌓아 나갔다. 뒤이은 타타르인(人)의 지배 시대에도 수도적 신앙은 숲속에서 은밀히 유지되었다.
16세기 모스크바 시대가 되어, 비잔티움 교회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러시아정교회가 대신 정교회의 구심점으로 대주교구로 격상됨에 따라, 모스크바는 콘스탄티노플을 대신하는 ‘제3의 로마’로서 동방정교회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정교회는 신앙의 성지(聖地)라기보다는 제사주의적(祭祀主義的) ·권위주의적 장소로 바뀌어, 민중 사이에 미신이 유행하는 한편, 반권위적인 교회분열과 광신적인 종파가 생겨났다.
18세기 표트르 1세에 의한 총주교좌(總主敎座) 폐지 후의 관허(官許)의 정교회는 약체화하여, 그 후 명맥만이 유지되었는데, 특히 1917년 러시아혁명 후에는 반종교적인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10여 년에 걸쳐 박해를 받았다(1930년이 절정). 그 후에도 교회는 종교적 행동을 제한받아, 포교 ·종교교육 ·자선사업 등을 할 수 없었으며, 개인적 기도만이 허용되어 왔다. 소련의 연방체제 붕괴 이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키예프 ·푸스코프 등을 중심으로 서서히 교회가 되살아났으며, 교역자(敎役者) 양성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오데사에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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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1.29
  • 저작시기2008.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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