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의 삶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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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흄의 삶과 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데이비드 흄의 지성사적 위상

2. 생애와 저술

3. 인식론

4. 윤리학

5. 정치학
1) 원초적 계약과 인위성
2) 정의의 효용

6. 맺는말

본문내용

만으로 무시할 수 없는 의미가 생성된다. 이것만으로도 사적인 고려가 공적인 고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며, 반역이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불명예이며 악덕인지를 알려주는 교육이라는 것이다(Hume 1978: 546).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볼 때, 영국 혁명의 경우 설령 압제자를 몰아내어야 할 필요가 그토록 절실했다손 치더라도, 《인성론》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 판단을 드러내지 않지만, 《영국사》에서 흄은 1649년의 상황에서 챨스의 처형은 물론이고 왕위에서 몰아낼 필요조차 그토록 명백하게 절실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렇게 몰아낸 왕의 아들까지 별 논의도 없이 마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인 것처럼 쫓아내 버림으로써 고래의 헌정 전통에 의하여 축적된 정당성이 하루아침에 무력에 의하여 망가지는 실례를 남기고 만 것이 된다(Hume 1978: 565-567). 즉, 반역과 정당한 저항의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함으로써 정의의 존재가 끊어지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흄은 윌리암 3세 이후의 영국 헌정은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발전에 해당한다고 본다. 파당에 몰입한 시각에서는 흄의 태도가 모순덩어리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가 정의와 관습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초기 스튜어트 왕조의 존재로써 하나의 정의가 구현되고 있었듯이 명예혁명 이후의 의회주의적 헌정질서로써 다른 하나의 정의가 구현되고 있다는 그의 판단이 전혀 모순일 까닭은 없다.
6. 맺는말
사람들에 의하여 모순으로 지목되는 것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진실로 그리고 반드시 모순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떤 두 개의 항목 사이의 관계를 모순으로 바라보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인식 주체의 제한된 안목 또는 세밀하지 못한 이분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흄은 일반적 형식으로서 정의가 수행하는 역할과 구체적 현실 정치의 공방에서 “정의”라는 구호가 수행하는 역할을 세밀하게 구분하였다. 어떤 이념이나 가치로 포장을 하든지, 현실 정치에서 “정의”라는 구호가 수행하는 역할은 결국 그 당파의 이익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정의의 실질적 내용을 보편적으로 구획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흄은 그 실질적 내용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정치의 본령에 해당하는 문제로서 그 어떤 이론가나 철학자가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 논쟁은 대부분 “정의”를 향한 추구라는 형태를 띠지만, 정의 그 자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고정된 내용을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적 관습의 형성에 의하여 결판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관습이라는 것 역시 지속적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한번 결판이 났다고 해서 그대로 영속되어야 할 까닭도 없다.
이러한 점에서 흄은 19세기에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하여 본격적인 형태로 정리되었고, 실제 19세기 및 20세기의 영국 정치사에서 그 핵심 요소들이 상당 부분 구현된 자유주의 이념의 선구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실제로 그 자신의 독창적 주장들로써 자발성의 실례를 보여주었고, 이분법적 도식에 몰각된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주장들을 펼침으로써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알려주었다. 그는 생애의 후반기에 상당한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오늘날의 영국에서 그가 받는 평가에 비하면 생전의 명성은 미미한 수준이다. 즉, 영국 사회가 흄을 이해하게 된 정도와 영국 사회가 미신적이며 당파적인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된 경로가 비례하였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은 아닌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분명히 계몽주의자였지만 계몽주의 자체가 교조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일생을 통한 탐구와 저술로써 경고한 철학자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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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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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7.17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7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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