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교육, 그 의미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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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려시대의 교육
1) 관학(官學) : 국자감, 향학
2) 사학(私學) : 12도, 서당
3) 성리학의 도입
2. 조선시대의 성격
1) 정치 : 중앙집권적인 관료제도
2) 경제 : 농본주의 사회
3) 사회 : 신분사회
4) 문화 : 유교문화
3. 조선시대의 교육의 개관
4. 성장과정으로 알아보는 조선시대 교육
1) 태교와 유아교육
(1) 태교
(2) 출산 후 교육
(3) 유아교육
2) 초등교육
(1) 서당
3) 중등교육
(1) 서원
(2) 향교
5, 관학과 사학으로 나누어 보는 조선시대 교육
1) 관학 : 성균관, 사학, 향교, 왕실교육, 잡과교육
2) 사학 : 서원, 서당
3) 과거제도

Ⅲ. 결론

본문내용

켰던 것이다. 겨울에는 경사(經史)와 같은 어려운 학과를 하게하고, 여름에는 시율과 같은 흥미본위의 학습을, 봄·가을에는 사기나 고문과 같은 글을 읽게 하여 선비로서의 뜻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또한 하과와 같은 피서교육과 글짓기겨룸의 놀이·투호 등의 유희학습도 있었다.
- 서당 설립의 주목적이 명인륜과 향촌사회에 상하의 분별을 포함한 예법과 성리학의 전파에 있었기 때문에 예법교육도 아울러 실시했으나 조선 말기에는 문자해독 교육이외에는 별다른 효과를 가지지 못했다. 서당교육은 19세기말 근대적 교육의 전개와 더불어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개량서당은 재래식서당과는 딜리 근대교육의 교과를 도입하여 민중교육에 큰 공헌을 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동화교육정책에 대항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3) 과거제도
-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1392년 신왕조 개창과 함께 고려시대의 제술과와 명경과를 통합하여 문과로 하고, 다음해 처음으로 무과를 실시하여 양과가 균형적으로 운영됨으로써 양반관료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도 문과가 훨씬 중요시되었고 실무를 담당할 관료선발을 위해 잡과를 실시하였다. 조선과거의 특징은 문무양과를 실시했다는 점, 경전 중심인 생원시를 중시했다는 점, 과거제도와 관학제도를 연계시키려고 했다는 점 등이다.
- 시험의 시기는 정기시와 부정기시가 있었다. 정기시는 3년에 한번 열린 식년시, 수시로 열린 부정기시는 증광시·별시·알성시·정시·춘당대시 등이 있었다.
- 문과는 소과와 대과로 나누어지는데 소과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말하고, 대과는 관리로 임용되는 시험으로 최고의 단계에 속한다. 생원시와 진사시는 초시·복시 두 단계의 시험에 의하여 각기 100인을 뽑아 생원·진사의 칭호를 주고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대과는 동당시라고도 하였는데 원칙적으로 생원과 진사가 응시하게 되어 있었다. 문과 초시 합격자 240인을 서울에 모아 다시 고시하여 33인을 뽑는 것을 복시 또는 회시라 하였다. 전시는 회시 합격자 33인과 직부전시인을 시어소의 전정에서 등급을 정하는 것이었다.
- 무과는 무관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으로 문과가 실시될 때마다 함께 실시되었으며 3년에 한 번씩 식년시와 증광시, 별시 등이 있었다. 무과의 고시 과목은 강서와 무예의 두 종류가 있었다. 무과는 조선왕조가 여진, 왜의 침입을 받게 되자 크게 변질되어 대량으로 시취하기에 이르렀다. 한꺼번에 1만여 인의 합격자를 내는 일이 있게 되었는데, 이를 만과라 하였다. 결국 무과는 천시되어 사대부의 자재들이 외면하게 되었고 과거 규칙이 문란해져 대사(代射)·대강(代講)·뇌물수수 등의 협잡이 성행되기에 이르렀다.
- 잡과는 기술관의 등용고시로 역과·음양과·의과·율과 등의 네 종류가 있었다. 잡과는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설행되었으며 초시·복시만 있고 전시는 없었다.
- 과거의 응시자격은 조선시대 법제상 천인이 아니면 결격사유가 없는 이상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신분에 따르는 차별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문과나 그 예비시험의 성격인 생원·진사시만은 사족(士族), 즉 양반신분이 아니고는 응시하여 합격하기가 어려웠다.
- 과거제도는 1894년 폐지되었지만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하여 교육적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자취를 남겼다. 응시제한은 있었지만 능력을 우선시하였다는 점과 객관적인 선발 방법을 취하려고 했다는 점, 과거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교육기관의 정비를 가져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시험내용은 유교적인 내용에 국한됨으로 주자학 일변도 학풍을 형성하여 다양한 학문을 진작시키지 못하였다. 또한 시험에만 합격하면 된다는 풍조로 인해 학교의 쇠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Ⅲ. 결론 (조선시대 교육을 통해서 본 전통 교육의 의미)
한국의 전통사회는 체제 면에서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정치적으로는 가부장적 절대 왕권제 형식이었으며, 경제면에서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였다. 또한 신분제가 뚜렷하게 분화된 전형적인 복선형 사회체제구조를 갖춘 유교윤리 사회였다. 이중에서 한국인의 전통이념, 내용, 방법적 원리를 이룬 것은 유가(儒家), 즉 조선 성리학을 기틀로 하는 가부장적 유교윤리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에 가정교육이 자리 잡고 있는 형태이다.
우리 역사에서 유교는 종교이고 신앙이기 이전에 우리의 삶 자체였다. 어린이가 어른을 존중하여 선후의 예를 지켜 인사를 하고 공경하는 것, 자식이 어버이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상생활에서 정성으로 섬기다가 돌아가신 후에도 지성으로 제례를 행했던 모습, 모든 일을 우주의 질서에 따라 행하며 인간은 최선을 다하는 존재일 뿐 결과는 철저히 천명에 맡겼던 것은 유교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전통교육을 토대로 인성교육과 지식교육, 당시의 전통적 가치, 교육관을 바르게 이해하고, 전통교육과 문화를 복원하여 현재의 교육에 이어가야 하는 것이 교육적 과제이다.
한국교육에 대하여 우리는 시대적 변화와 요청에 따라 교육을 현대화하고, 또한 우리 문화의 고유한 전통을 보존하고 이를 이어가야 한다. 전통정신에서 요구하였던 교육과정, 교육대상, 교육수준의 논의와 전통사회에서 행해졌던 교육의 실천방식은 오늘에 와서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다. 우리 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교육적 과제와 대안을 여기서 찾고, 전통교육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됨의 실천의지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참고서적>
1. 강만철 외 11인, < 한국교육의 이해 >, 교육과학사, 2006.
2. 김태웅, <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 : 소학교풍경, 조선후기에서 3·1운동까지 >, 서해문집, 2006.
3. 서울대학교교육연구소, < 한국교육사 >,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4. 손인수, < 한국교육사연구( 상/하) >, 문음사, 1998.
5. 정영희·조정호, < 교육사 철학 입문 (한국교육에 대한 역사 및 철학적 조망) >, 교육과학사, 2008.
6. 최완기, < 한국의 전통교육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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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14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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