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예술적 음악인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호가 붙게 되었다. 중략
당시 서평군(西平君) 영조 때 외교에 공로가 컷던 사람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름이 요(橈)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표(標)라 했는지 알수 없다.
공자 표(標)는 부자로 호협(豪俠)하였으며 성품이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였다. 실솔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여 날마다 데리고 놀았다. 매양 실솔이 노래하면 공자는 으레 거문고를 끌어당겨 몸소 반주를 하는 것이었다. 공자의 거문고 솜씨도 또한 일세에 높았으니 서로 만남이 더없이 즐거웠다.
유우춘보다는 복이 많은 음악인이다. 음악이란 공통된 주제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은 유우춘이 바랬던 모습일 것이다. 여하튼 송실솔은 왕족과의 교류를 통해 음악을 인정받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더욱더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특히 공자가 거문고 반주를 직접했다는 것은 독특하다. 심용편에서는 심용은 후원자로 그들을 성장시켜준 반면 여기서 공자는 더불어 즐기는 존재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지배계층도 예술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유송년(柳松年)편을 보자.
유송년(柳松年)은 자(字)거 기경(耆卿)인데 노래로써 서울 장안에 유명한 사람이었다. 중략 송년의 가문이 대대로 유학을 힘썼고 여러 종항간들도 문학으로 세상에 이름이 있었다. 송년만은 일찍부터 한량으로 놀이판에 놀았으므로, 형제들이 모두 아예 버린 놈으로 치고 말았다. 그럴수록 송년은 더욱 경박하게 놀아나서 집이 부유하였으나 날로 치폐하여 갔다.
유송년의 가문을 보면 유학을 힘썼다고 한것을 보면 양반가문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떠한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고 종항간들이 문학에 이름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중인층일듯 하다. 그래서 유송년은 자신의 신분적인 제약에서 벗어나려고 한량으로 놀이에 빠진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노래로 자신의 신세를 달래려고 한 것는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의 음악인들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계층과 모습이 보여 졌지만 음악이란 하나의 공통된 모습 속에 인간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예술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과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한다. 사대부나 중인들의 허위의식 속에 행해지는 예술, 별감이나 돈 있는 무뢰배들의 퇴폐적인 놀이보다는 이들의 예술적인 행위는 상당한 차별성을 가진다. 이러한 음악인의 차별적인 예술 활동은 조선후기 예술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가격1,5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9.01.03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291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