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공황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경제대공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1.서론
경제대공황 개념 및 정의

2.본론
경제대공황의 원인
경제대공황의 전개과정
케인즈이론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미국 외 다른 나라에 미친 파급영향

3.결론
경제대공황의 시사점

본문내용

획을 세우게 되고 1941년 12월8일 진주만기습을 감행하면서 태평양전쟁이 시작된다. 초반에는 일본의 태평양의 미국 및 영국의 식민지를 점령하면서 전쟁을 우세하게 끌고 갔지만 미드웨이해전의 대패를 계기로 밀리게 된다. 사실 일본이 자원이나 국력 면에서 월등한 미국을 이기기에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이렇게 독일과 일본은 계속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먼저 무너진 것은 독일이었다. 1944년 6월 6일 미국의 아이젠하워장군의 작전으로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프랑스가 해방된다. 계속해서 진격한 연합군은 1945년 마침내 베를린을 점령하고 히틀러는 자살한다. 이해 4월은 연합국 측에 낭보만 있었던 달은 아니었다. 4월 12일 연합국의 실질적 리더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45년 5월 7일에 독일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이제 2차 세계대전의 마무리 작업은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항복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7시 9분 히로시마에는 공습경보가 울렸다. 8시 정각 세 대의 폭격기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나 하나의 폭탄을 투하했다. 전 도시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사람들은 강력한 섬광을 본 순간 실명했고, 중심부에서는 섭씨 10억 도의 고온에 사람, 건물 할 것 없이 모두 녹아내렸다. 당일 히로시마에서 8만 8천 명이 사망했고 5만 천 명이 실종되었으며 7만 6천 채의 건물이 초토화되었다. 누구도 이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폭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일본은 전문가를 동원하여 조사했고 놀랍게도 그것이 원자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항복하지 않자, 이틀 후 소련은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고 만주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8월 9일 또 하나의 원자탄이 26만이 사는 나가사키에 떨어져 6만 명을 죽였다. 단 한 발로 수만 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원자탄의 위력에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다.
8월 15일 드디어 일본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9월 2일 항공모함 미드웨이 선상으로 대표단을 파견하여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미 육군 원수) 장군 앞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1945년 8월15일 무조건 항복하게 되면서 기나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된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기까지 만 6년간은 피비린내 나는 무참한 대량 살육의 기간이었다.
2. 2차 대전이 세계에 미친 영향
1945년 8월 15일 세계에는 6년 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전후 미국은 전세계 340억 달러에 해당하는 금의 총량 중에 240억 달러나 되는 금을 보유하게 되어 명실상부 세계 유일의 금융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패전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갖고 있던 식민지는 사라졌다. 한편 전승국 영국 미국 프랑스도 과거와 같은 형태의 제국주의적 식민통치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전승국도 6년이라는 긴 전쟁 기간 동안 많이 지쳤고, 전 세계 식민지에서 일어난 민족 자결주의 정신의 고양으로 종전의 제국주의적 지배 체제는 이미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종전 후, 소련은 히틀러와 밀약을 통해 확보하기 시작했던 동구 유럽을 그대로 그 세력권 안에 품고 있었고, 미국과 세계를 두고 다투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로써 동유럽은 러시아의 공산주의가 서유럽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오랜 냉전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수세기 동안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은 양차대전으로 그 주도권을 미국과 러시아에게 넘겨주고, 특히,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할되었다. 서독의 경우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경계한 미국의 마샬플랜에 의해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아,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에 의한 중국의 공산화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일본의 공산진영으로의 진입을 저어하여 무제한적으로 일본을 지원해 주었고 이것은 일본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얻게 된다. 2차대전의 장이었던 유럽은 쑥대밭이 되어 영국, 프랑스와 같은 기존의 강대국은 크게 약화된 반면 미국은 전쟁으로 무기를 수출하여 큰 이윤을 창출하는 등 경제적 부를 획득했으며,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위상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력 또한 막강해졌다.
그리고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과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의 주요 참전국들은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경제 대국으로서 결과적으로 전쟁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우리는 2차대전에 의해 짜여진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3. 결론 -경제대공황의 시사점
경제대공황의 회복에 큰 기여를 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은 2차대전으로 전시호황이 시작되기까지는 실업 등 대공황의 여파가 계속되었다는 점에서 ‘구제’나 ‘회복’ 측면의 성과는 낮게 평가된다. 그러나 자유방임주의의 종언, 독점자본주의 모순 시정, 미국복지제도의 토대 형성 등 철학과 이념, 제도의 대전환을 가져왔다는 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는 케인즈 이론이라는 효과적인 경제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지도자의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학자들은 경제대공황 당시 국제금융위기를 초래한 정책들이 현재 우리 경제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고 본다. 경제대공황의 원인, 전개, 회복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하여 경제대공황 당시 미국정부의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잘 수용했던 역량 있는 지도자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깨닫게 해준다.
※참고문헌: 주명건 「미국경제사」서울:박영사 1983
박무성, 『미국현대사』, 문맥사, 1987
손세호, 『하룻밤에 읽는 미국사』, 랜덤하우스코리아(주), 2007
양재열,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혜안출판사, 2005
이주영, 『미국사』, 대한교과서(주), 2005
주명진, 『미국경제사』, 박영사, 1987
The Venus Encyclopedia 학습백과대사전
네이버 백과사전
  • 가격3,300
  • 페이지수24페이지
  • 등록일2009.01.27
  • 저작시기2007.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606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