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학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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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그러나 꽃에 대해 논문을 쓰는 식물학자는 어린아이와 다른 측면으로 꽃을 본다. 꽃을 보고 연구하며 학습하고 실험한다(theoretical knowledge).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상대적일 뿐 명확한 구분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하나님에 관한 실제, 지식은 이론지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모두가 Pre-theoretical knowledge(선이론 지식)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창조-타락-구속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실제이며 선이론의 지식이다. 신학은 이론지식이다. 신학은 science이다. 신학과 성경은 구분된다. 신학은 이론적 지식의 결과이며 이론적 추상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실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은 선이론 지식으로부터 신학자에게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말하지 않는지 말해주어야 한다. 신학자가 교리를 설명해 준다. 교리는 신앙고백의 공동체(교회)로부터 온다. 교회의 신앙고백이 교리이다. 이것이 소위 신학적 지식이고 이것을 다루는 것이 신학이다. 교회가 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말하지 않는지를 판단해 주는 것이 철학이다. 신학은 철학의 말을 들어야 한다. 신학을 철학의 아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신학을 공부하는 개혁주의 전통 안에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15 mode를 통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15개의 mode는 일부는 Pre-theoretical knowledge이고 일부는 theoretical knowledge이다. 이것들을 먼저 확인하고 너와 나 사이에 이러한 mode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 mode들은 하나님을 전제하고 있다라는 것을 말함으로써 한 가지를 말하고 있다라는 방법론을 취하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문제는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이성을 통해서 공감대를 통해 계시로 나아가자고 한데에 있다. 암스텔담 학파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칼빈주의며, 하나님 전제를 말한다. 지식의 최소 단위들이 하나님을 향하고 말하고 있다라고 하는 나름대로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전제가 이 과정에 있어서 유지가 되느냐는 일관성의 문제를 낳는다. 일관성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형식적인 의미에서, 성경 외에는 신학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구속사를 강조한다(Pre-theoretical knowledge). 이것은 구프린스톤의 Vos와 내용적 측면에서 일치하는 면이다. 암스텔담은 성경신학을 부인한다. 바빙크도 그의 개혁주의신학서론에서 성경 신학을 부인한다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카이퍼학파의 특징이다. 원리적인 면에서 같은 얘기를 한다. 성경은 Pre-theoretical knowledge을 말하는 것이지, 성경신학은 theoretical knowledge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구속사를 말하므로 Vos와 일치한다. 이렇게 신학에 있어서 방법론적 차이가 있다.
VanTil이 볼 때 Herman Dooyeweerd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서 Herman Dooyeweerd에게 자신의 학생을 유학보냈다. 그러나 나중에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지식의 최소단위들에 대한 특징들이 하나님의 세계에 속해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하나님을 전제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
15 mode를 나눈 것 자체가 인위적인 면이 있고, 방법론에서 모호함이 있다. 하나님을 전제하는 것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가가 중요하다.
일반계시의 한계와 특별계시의 한계를 구분해야 한다.
강웅산 교수의 죽산 강좌 논문을 읽어 보라.
적은 차이 같지만, 큰 차이를 낳고 있고,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2>
밴틸의 전제주의 변증방법
전제에 의한 변증 방법
전제는 하나님의 존재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전제해야 인식론적인 바른 이해가 되고
인식론적으로 바로 돼야 바른 행동, 윤리가 나온다.
우리의 질문 : 서두부터, 전제로 하나님을 얘기하는 것이 변증으로써 통하겠느냐?
접촉점 : 하나님의 형상. 칼빈은 신적 감각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접근하는 방법만이 피차가 같은 얘기를 하는 방법이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증거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불신자들과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쓰는 방법이 하나님을 배제하는 방법이므로 이것이 모순이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기(네솨마) : 생물의 기식, 전능자의 기운(욥32:8). 하나님의 도덕적 영적 성품을 담는 의미가 있다. 사람의 영혼(잠20:27)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이것이 접촉점이다.
인간의 타락한 현실을 지적하는 방법은 당신이 죄인이라고 지적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된 현실을 지적할 수 있다.
전도할 때, 액면적으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하는 것이 전제적 방법론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개발해야할 숙제이다.
인간의 바램, 도덕성 문제, 영원에 대한 갈망, 인간의 한계 등 모든 것이 영적인 문제임을 지적한다. 이 세상은 해결점이 없다는 것이 쉽게 드러난다. 행17장의 사도바울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필요를 도출하라. 절대적 선, 하나님을 제시하라.
전제주의 변증학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칼빈이 한 것이 전제주의 변증학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바울도 전제주의 변증이다. 보스, 메이첸도 전제주의 변증이다.
증거주의 방법을 다시 검증하며 전제주의 변증학이 부각된다. 보다 성경적인 변증이다. 개혁주의와 개혁원리에 부합되는 변증학이다.
증거를 사용한다고 해서 증거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증거 사용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이 심어 질 수 있다. 이것도 전제주의적 방법. 증거주의는 증거가 신자와 불신자가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며 그 순간 하나님을 배제시킨다. 하나님을 부인해야 그 증거가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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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2.03
  • 저작시기2008.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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