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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요리][24절기][한글][훈민정음][전통의복][한복][노리개][탈][태극기]한국 요리, 한국 24절기, 한국 특수지형, 한국 문자 한글(훈민정음), 한국 전통의복 한복 삼작 노리개, 한국 탈, 한국 국기 태극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한국의 요리
1. 한국 요리의 특징
2. 식사예절
3. 식단
1) 한국음식의 종류
2) 반상차림
3) 장국장 차림
4) 죽상 차림
5) 주안상 차림
6) 다과상 차림

Ⅱ. 한국의 24절기
1. 입춘 : 양력 2월 4일경, 음력 1월
2. 우수 : 양력 2월19일경
3. 경칩 : 양력 3월6일경, 음력2월
4. 춘분 : 양력 3월21일경, 음력2월
5. 청명 : 양력 4월5일경, 음력3월
6. 곡우 : 양력 4월 20일경, 음력3월
7. 입하 : 양력 5월6일경, 음력4월
8. 소만 : 양력 5월21일경, 음력 4월
9. 망종 : 양력 6월6일경, 음력 4-5월
10. 하지 : 양력 6월 21일경, 음력5월
11. 소서 : 양력 7월7일, 음력6월
12. 대서 : 양력 7월23일경, 음력6월
13. 입추 : 양력 8월8일, 음력7월
14. 처서 : 양력 8월23일, 음력7월 중순
15. 백로 : 양력 9월8일경, 음력8월
16. 추분 : 양력 9월23일경, 음력8월
17. 한로 : 양력 10월8일경, 음력9월
18. 상강 : 양력 10월23일경, 음력9월
19. 입동 : 양력 11월8일경, 음력10월
20. 소설 : 양력 11월22일경, 음력 10월
21. 대설 : 양력 12월7일경, 음력11월
22. 동지 : 양력 12월22일경, 음력 12월
23. 소한 : 양력 1월5일경, 음력12월
24. 대한 : 양력 1월20일경, 음력12월

Ⅲ. 한국의 특수지형
1. 카르스트 지형
1) 지형의 형성원인
2) 특색
2. 화산지형
1) 지형의 형성원인
2) 특색
3) 토지이용도
3. 고위평탄면
1) 지형의 형성원인
2) 토지이용도

Ⅳ. 한국의 문자 한글(훈민정음)

Ⅴ. 한국의 전통의복 한복 삼작 노리개

Ⅵ. 한국의 탈

Ⅶ. 한국의 국기 태극기

참고문헌

본문내용

방문하러 가던 중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일행과 숙의해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태극기의 유래는 잘못 알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박영효가 주도한 작품이 아니라 고종의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새삼 밝혀졌기 때문이다. 1882년 10월 2일자 일본 도쿄에서 발행된 일간신문 「시사신보」(1882년 3월 창간,1936년 폐간) 는 당시 일본을 방문한 박영효 수신사 일행과 기자 회견을 갖고, 태극기는 자국의 국기를 모방하라는 청나라의 압력을 뿌리치고 고종이 직접 도안을 하고 색깔까지 지정한 것으로 보도했다. 박영효는 고종이 구상한 작품을 고종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가던 도중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시사신보 기사는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 태극기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실은 최초의 태극기가 게재된 시사신보 축쇄판을 동경도립중앙도서관에서 단독 입수, 지난 광복절날 일간신문(동아, 한국일보)을 통해 태극기 그림을 공개한 서울시청 총무과 송명호씨에 의해 밝혀졌다. 송씨는 당시 일간지가 서둘러 보도하면서 최초의 태극기 발견 사실에만 기사의 초점을 맞추고 정작 태극기가 고종의 작품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한 점을 중시,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관련 자료를 작성, 주요 도서관과 학술연구기관에 무료 배포하기에 앞서 뉴스피플에 제공했다. 그가 제공한 화제의 시사신보 관련 기사는 「잡보」란을 통해 수신사 박영효 일행의 일본 방문을 조선의 유신이라고까지 장황하게 극찬한 다음 「조선국기」라는 캡션이 붙은 태극기 그림과 함께 국기의 재정 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 내용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때까지 조선에는 국기로 부를만한 것이 없어 지난번에 탁지부를 방문한 중국(원문에는 지나로 표기했으며 청나라를 지칭함)의 마건충(청나라 덕종때 사람으로 1882년 군함 수척에 군인 4천5백 명을 인솔, 조선에 와 임오군란을 조정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대원군을 천진으로 압송하는 등 조정에 친청파를 구축하며 내정에 깊이 간여한자임)이 조선의 국기는 중국의 국기를 본받아 삼각형의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야 하며 본국인 중국은 황색을 사용하나 조선은 동방에 위치하는 나라이므로 동쪽은 청색을 귀히 여긴다는 뜻에 따라 청색 바탕을 이용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에 국왕(고종)은 분하게 여겨 절대로 중국 국기를 흉내내지 않겠다고 해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원(두개의 소용돌이 모양)을 청색과 적색으로 그리고 국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역괘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고 한다.」
이 신문의 관련 기사 첫 머리는 「지난달 28일(1882년 9월 28일 가리킴) 하나부사공사와 함께 도쿄에 도착한 조선인의 이야기에 의하면」이라고 돼 있어 박영효 수신사 일행 중 한명과 인터뷰를 통해 기사를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개혁파 지식인들인 김옥균, 서광범 등도 박영효와 동행했다고 이 신문은 적고 있어 이들 중 한명과 인터뷰를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련 기사에서 고종은 청나라 마건충의 강요에 분노하며 독창성을 발휘, 도안과 도형의 설명, 그리는 방법까지 직접 언급하고 있다. 이는 국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세를 단호히 배격했음을 의미한다. 당시는 청나라가 내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고 임오군란을 이용, 제물포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자국군의 서울 주둔을 강요하며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열강의 틈사이에서 국왕이 국정을 제대로 펴기조차 힘든 시기였음을 볼 때 고조의 이 같은 자주정신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송씨는 설명했다. 태극기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관련 기사가 발견되기 전에는 주역의 태극도를 그렸다는 등 태극기의 유래에 대해 별의별 억측이 많았으나 이젠 이러한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82년 9월 25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날 박영효 일행이 고베에 도착, 숙소인 니시무라야(西村屋) 옥상에 국기를 게양했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그로부터 사흘 뒤 일행이 도쿄에 도착했고 이를 시사신보 기자가 취재해 10월 2일자에 보도한 겁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태극기는 모두 다섯 번의 변천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첫 번째는 시사신보의 보도처럼 고종의 지시에 따라 박영효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두 번째는 1885년 고종이 외무담당 미국인 데니씨에게 선물한 태극기로 현재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세 번째는 1896년 독립신문 제호에, 네 번째는 1900년 파리박람회 때 사용했던 태극기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은 1949년 정부에서 42인 국기제정위원회를 구성, 제정한 것이다. 그동안 태극기의 유래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언급한 것은 1961년 진단학회가 펴낸 「한국사」로 전문가들 사이에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우리나라에서 국기문제가 논의된 것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당시 강화도 회담에서부터 대두됐다. 이때부터 국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이를 눈치 챈 중국이 황준헌을 통해 중국의 용기를 본받아 그려서 전국적으로 사용하라는 간섭을 했다. 그 후 우리나라와 중국은 국기 제정에 따른 양국 위원을 임명했는데 우리측 위원은 이응준이었고 중국측 위원은 마건충이었다. 그러나 국기 제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수신사 박영효 일행은 일본을 방문하게 됐고 이때 출발에 앞서 고종황제로부터 내략을 받았다. 일본 기선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동숭한 수신사 일행, 영국 영사관 아스톤, 선장 제임스 등과 태극 8괘의 도안을 가지고 숙의한 끝에 최종적으로 4괘의 태극기를 국기로 결정, 제작했다. 아마 이 결정은 일본으로 출발에 앞서 고종황제가 지시한 대로 따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강무학 - 한국세시풍속기, 서울 : 집문당, 1990
김상보 - 한국의 음식생활, 문화사, 1997
김상섭 - 태극기의 정체, 동아시아, 2001
김정수 - 한글의 역사와 미래, 열화당, 1994
서연호 - 한국의 탈놀이 2 황해도 탈놀이, 열화당, 1988
윤은숙 - 한국의 음식, 효일 출판사
이근수 - 훈민정음 창제와 조선 와조, 인문과학 4, 홍익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6

키워드

한국,   요리,   한글,   전통,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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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2.1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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