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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로마법

Ⅲ. 로마법상 사용취득제도
1. 사용취득의 의의
1) 사용취득의 개념
2) 로마법상 시효취득제도
3) 취득시효제도의 목적
4) 사용취득의 법적 성질
2. 사용취득의 요건
1) 점유기간(tempus)
2) 사용취득의 객체(res habilis)
3) 정당한 권원(iusta causa, iustus tiltulus)
4) 선의(bona fides)

Ⅳ. 로마의 도시

Ⅴ. 로마의 주택

Ⅵ. 로마네스크 건축

Ⅶ. 로마의 체육
1. 전기의 체육
2. 후기의 체육

Ⅷ. 로마의 멸망

참고문헌

본문내용

국의 변경이 너무 길어 지리적으로 방어의 난점이 있었던 점을 든다. 부르크하르트는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상류 계층에서 혼혈에 의한 인종적 퇴화 현상 때문이라고 하였다.
역시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인종적 특성의 순수성 상실·잡종화 현상이 그 몰락 원인이라고 규정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종교, 정치 뿐 아니라 사회경제사 등 인간생활의 제반 측면에 대한 관심이 더 폭넓게 확산되었다. 예를 들면 핀리는 제국의 멸망을 문화적 토양에서 찾았고, 퓌스뗄 드 꿀랑쥐는 대지주의 세력이 지나치게 비대했기 때문이라 하였으며, 호드킨은 노예제의 폐단, 로마 무산자들의 극빈화, 자치 도시의 붕괴, 페르시아와 게르만의 침입 등을 들었다. 또한 헌팅턴은 기후 변화와 농토의 고갈을 원인으로 든다. 로마제국 멸망의 원인에 관해 20세기에 나타난 견해를 크게 분류해보면, 첫째, 마르크스적 유물사관이다. 프랑크는 로마의 경제가 농업과 노예제에 의존함으로써 공업이 후진성을 면치 못했음다는 점을 든다. 생산 증대와 생활 향상을 위한 기술의 발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칠드는 시장의 제한, 일반 대중의 구매력 하락. 노예 노동으로 자유노동자의 임금은 최악의 상태였기 때문이라 한다. 또 월뱅크는 칠드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저급한 기술과 일반 대중의 구매력 하락, 노예제도의 폐단. 부의 정당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한 전체주의적 체제 등을 꼽는다. 둘째, 문명 사관이 있다. 슈펭글러는 사회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청년, 장년, 노년기의 과정을 겪는다고 보면서, 로마의 멸망을 유기체적 숙명론적으로 해석하였다. 토인비는 역시 일종의 숙명론에 입각하여, 그리스 로마 문화를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분류하고, 이 문화권의 자살 시기를 이미 펠로폰네소스 전쟁시기로 규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제국은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몰락하도록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로마 멸망에 따른 이상의 여러 견해들을 주제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도미나투스 체제의 폐단이다. 전제적인 제권으로 인해 로마 사회가 탄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세금 징수를 위해 직업과 신분을 고정시킴으로써, 자유로운 경제의 흐름이 차단되었다. 또한 대규모 관료 체제와 군사력의 증강은 막대한 재정의 지출을 초래하였는데, 이는 과중한 수세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과중한 수세와 국가 재정 타개의 방안으로 주조된 악화의 강제유통은 바로 화폐 경제 혼란을 초래하여 제국의 경제를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몰아갔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들은 제국에 대한 지방민의 애착을 약화시켰다. 군인 황제 시대를 거치면서 군단과 정치의 중심이 상당부분 지방에 분산되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방의 원심적 경향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 다음은 군대의 질 저하와 게르만 족의 유입 문제이다. 로마 시민보다 속주 이민족 출신의 군인이 많아짐으로써 군대가 로마시민이 아닌 속주출신의 이민족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또 노예제의 폐단이 있다. 강제 노동으로 인한 생산의 비능률성, 노예 반란 혹은 태업 등이 장기적으로 제국의 생산력을 저하시켰다는 점이다. 동시에 노예노동은 기술 개발을 촉진시키지 못하였고, 사회전체에 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이어서 제국의 정복전이 한계에 다다라 노예의 공급원도 끊기자, 라티푼디움 체제는 위기를 맞이하고 마침내 콜로나투스제로 전환해간다.
제국의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제국 후반기 전염병 등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도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이에 더하여 로마인의 정신적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퇴폐적이고 향락적 생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임신, 출산, 육아 등을 포기하는 현상과도 연관된다. 제정기 로마 인구는 백만 정도로 감소하였는데 이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 같은 퇴폐적 풍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인구의 감소는 바로 경제력의 약화, 혹은 지배권력의 약회로 연결된다. 로마의 멸망과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이자면, 서로마가 망하고 난 뒤에도 서구에서는 항상 영원한 로마제국의 재건을 꿈꾸면서, 그 멸망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 옛날 로마제국이 태동하던 기원전 1세기 이미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드 1장에서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약속[I have fixed them(로마인들을 의미) no limit, not in place, not in time. I have given them rule without end]을 통해 \'영원한 로마(Roma Aeterna)\'의 꿈을 그렸다. 영원한 로마에 대한 이 같은 꿈은 실제로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듯 하다. 카알대제의 800년 서로마 황제 대관과 962년 시작된 오토 대제의 신성로마제국이 19세기 초까지 존속하였던 사실도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가지 유념할 것은 그런대로 로마의 전통을 이은 동로마제국이15세기까지 존재하였으며 서구인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제국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희랍의 웅변가 Aelius Aristides의 \"로마라는 명칭은 한 도시의 명칭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명칭\"이라는 찬사는 20세기의 손더스의 논문에서도 그 맥락이 찾아볼 수 있다. 손더스에 의하면, 로마는 영원성을 결코 상실한 것이 아니다. 언어와 법률, 업적 등을 통해 로마는 후세에 모범으로서의 고귀한 기억을 물려주었고 모국으로서의 위치를 점함으로써, 국가 몰락 여부를 떠나, \'영원한 로마\'적 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최근 유럽 국가들 간의 EC공동체나 유로화에 의한 화폐의 통일 등은 일종의 \'영원한 로마\'의 이념을 재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미로도 새롭게 조명된다.
참고문헌
ⅰ. 도널드 R.더들리, 김덕수 역(1997), 로마문명사
ⅱ. 성진규(1989), 로마 공화정 후기의 기사신분, 계명대학교
ⅲ. 유게도루, 양홍모 역(1992),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교문사
ⅳ. 하이켈 하임, 김덕수 역(1999), 로마사, 현대지성사
ⅴ. 황적인(1997), 로마법·서양법제사, 박영사
ⅵ. Edward Gibbon(2004), 로마제국 쇠망사, 북 프렌즈
ⅶ. Raffalt,Reinhard(1997), 로마 황제들의 눈물, 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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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0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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