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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로마 도시계획][로마 건축][건축][콜로세움][검투사][장례문화][음악][로마 멸망]로마의 도시계획, 로마의 건축, 로마네스크 건축, 로마의 콜로세움과 검투사, 로마의 장례문화, 로마의 음악, 로마의 멸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로마의 도시계획
1. 로마의 도시계획
2. 로마
3. 로마의 지방도시
1) 식민도시(colonia)
2) 병영도시
3) 상업도시

Ⅲ. 로마의 건축

Ⅳ. 로마네스크 건축

Ⅴ. 로마 콜로세움과 검투사

Ⅵ. 로마의 장례 문화
1. 임종땐 교회 조종(弔鍾). 망자 관할 시경운영
2. 공동묘지 값 단일화
3. 종교 통해 죽음 극복

Ⅶ. 로마의 음악

Ⅷ. 로마의 멸망

참고문헌

본문내용

히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지하 5층이나 되며 3세기 당시 교황들의 유골이 봉안돼 있고, 음악의 수호성자인 \'성 세칠리아\'의 묘도 안치돼 있다. 박해가 가장 심했던 서기 190-300년까지 거의 동굴에 갇혀 지냈으나 예수부활교인들 가운데 지상에 남아 있던 귀족계급이 음식물을 지하로 내려보내 연명할 수 있었다. 이를 수색하러 들어온 병사들은 미로를 헤매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교인들에게 습격당하곤 했다. 카타콤베 내부에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 물고기 모양의 이투스가 곳곳에 남아있어 당시의 치열했던 신앙생활을 보여준다. 카타콤베와 같이 종교와 생활을 일치시켰던 로마인들의 유적은 매년 10조원에 달하는 관광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로마 바르베리니 광장에서 북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베네토 거리 7번지의 일명 해골사원(치미테로 데이 카프치니) 2층 전시실에는 이런 시귀가 적혀 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자만도 못한 인간이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여기 있는 사자들은 죽음으로써 항상 영원하리라\"
Ⅶ. 로마의 음악
전해오는 악기 개량, 오르간 등 갖가지 음악 만들어 그리스보다 지중해 서쪽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 반도 중간의 작은 \'도시\' 로마에서, 로마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치는 엄청난 \'제국\'으로 커갔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화의 힘이었다기보다는 강건한 시민 정신과 막강한 군사력, 그리고 치밀한 조직력이었다. 라틴 지방의 도시 로마는 주변의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나가면서 정복한 나라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어 갔다. 본래는 로마 시민의 수가 원체 적었기 때문에 엄청나게 커진 로마 제국은 극소수의 로마 시민과 엄청난 수의 노예로 구성되게 되었다. 로마시민은 통치하는 일에 바빴다. 그래서 예술 따위의 일들은 노예 (또는 포로)의 손에 주로 맡겨졌다. 로마의 음악도 그랬다. 로마의 지배층이 음악을 몰랐다거나 음악을 즐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자면 네로 황제는 스스로 악기를 치며 시를 읊었다고 하지요) 로마의 직업적인 음악가들은 주로 노예들이었다. 사실은 그리스 사회도 시민보다 노예가 훨씬 많았던 사회였다. 그렇지만 그리스에서는 험한 일을 노예가 하고 고상한 예술은 시민이 주도하였던데 비해, 군사력과 조직력으로 일어선 로마는 그런 일까지 노예들에게 맡겨버리고 주로 통제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로마 사람들은 대단히 실제적인 사람들이었다. 음악이 고상하건 않건 간에 그들은 음악을 제사에도, 사교 모임에도, 식사 중에도 연주하도록 하였다. 물론 일할 때도, 춤을 출때도 쓰였고,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쓰였다. 음악의 소비량은 사실 굉장히 많았던 셈이다. 온갖 민속들이 다 로마로 모여들면서 갖가지 음악들이 로마로 들어왔다. 특히 가장 발달되었던 그리스의 음악이 가장 널리 퍼졌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로마는 군대로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음악으로는 그리스에게 압도당한 셈이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는 음악에 관한 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음악분야에서 로마가 한 일은 악기 개량이었다. 실제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던 로마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소중하게 다뤄온 악기들을 이리 뜯고, 저리 붙여서 더 다양한 악기들을 만들어 냈다. 악기 분야에서 로마가 한 일 중에서 오르간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일로 꼽힌다. \'악기\'라는 것이 본래 \'소리 내는 기계\'지만, 특히 오르간이라는 것은 정말 기계다운 기계다. 입으로 힘들게 불어서 소리를 내야 할 관악기들을 쭉 묶어 놓고, 기계장치로 바람을 넣어 가면서, 역시 기계장치인 건반을 이리 저리 누르면 저절로 소리나게 만든 기계, 그 기계는 여러 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낼 수도 있었지만, 특히 사람이 직접 내는 것보다 소리가 훨씬 커서 노천 경기장에서 갖가지 여흥이 벌어질 때 즐겨 쓰였다고 한다. 로마는 이 밖에도 트럼펫과 호른 형의 금관악기들을 발명하고 발전시켰다고 한다. 군대의 나라다운 일이었다. 많은 민족이 서로 섞이게 되는 제국을 건설한 것은 물론 로마가 처음은 아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정복은 유럽 일부와 서아시아 아프라카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로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점이겠다. 그리스는 그들의 문화를 사방에 퍼뜨려서 넓은 지역에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를 심었던 데 반하여, 로마는 문화를 거의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두제국의 힘으로 서로 섞이게 된 많은 민족들의 음악은 그 뒤에 올 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음악에 대한 로마인과 그리스인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음악이 사람의 정신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따위의 이론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비해, 로마인들은 음악을 어떤 때 어떻게 써야 좋은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실제적인 사람들이었고, 로마는 큰 나라였다. 그래서 생각할 수 없이 많은 거대한, 환락적인 행사에 엄청난 인원이 음악에 동원되었다. 직업적인 음악가들의 수효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래서 제국 로마시대는 직업음악인들의 노동조합이 생겨난 때로도 기억된다.
Ⅷ. 로마의 멸망
(1) 제국의 쇠퇴 : 군인 황제 시대(235~284) → 물가 폭등, 질병, 이민족의 위협 심각
(2) 중흥의 시기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개혁 : 통치권 강화, 물가 안정 노력, 화폐 제도 정비
㉡ 콘스탄티누스 황제 : 수도 옮김(비잔티움), 경제 개혁 추진, 크리스트교 공인(313년)
(3) 로마 제국의 멸망
○ 제국의 분열(394년) : 동·서 로마로 분열
- 서로마 제국 : 게르만족에 멸망(476년)
-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 : 오스만 제국에 멸망(1453년)
참고문헌
류재화 역 / 고대로마의 일상생활, 우물이 있는집, 2003
배종무 / 서로마제국 멸망원인에 관한 고찰, 목포교대 논문지
시오노 나나미, 김석희 역 / 로마인 이야기, 한길사
에드워드 / 로마제국쇠망사7, 대광서림, 1992
지동식 / 로마제국은 왜멸망했는가?, 대학출판사, 1982
황건 역 / 로마제국 쇠망사, 까치,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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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0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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