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중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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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와 중세 교육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사회 문화적 배경
2. 교육적 상황
1) 중세 초기 : 기독교를 위한 종교교육
(1) 카톨릭 교회 부속학교
(2) 수도원
2) 봉건제도 하의 기사교육
3) 11세기 이후의 시민교육
(1) 시민학교
(2) 도제교육
4) 중세 대학의 성립과 발전
3. 여성교육
참고문헌

본문내용

그리스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대학의 기초과정인 학예학부 과정은 14세부터 20세까지 6년 걸린다. 중세 대학에서 가르치는 기본적인 교과과정은 문법, 수사학 및 논리의 3교과와 산수, 기하, 천문, 음악의 4교과의 이른바 7자유학과였다. 3교과를 수료한 경우 수공업자조합의 직인(journeyman)에 해당하는 격으로 문학사(bachelor of arts)의 학위가 주어져 초보적인 교과를 가르칠 자격을 갖는다. 그 후 5∼6년 간의 수업을 거치고서 비로소 온전한 독립된 교사자격인 문학석사(master of arts)가 될 수 있으며, 그는 7자유학과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든지 또는 전문학부인 법률, 의학 및 신학을 수학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의학과법학은 그 다음, 즉 20세부터 25세 사이에 배울 수 있었다. 신학은 최소한 8년 간의 수업과 35세 이상의 연령이 요구되는 장기적인 수업과정이었다. 전문과정을 이수하면 박사학위가 수여되었다. 박사가 되어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두 단계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개별시험과 공개시험인데, 개별시험은 문답 강의와 토론 등을 통해 학칙의 규정을 만족시킨 다음 공개시험을 거쳐야 가르칠 면허와 박사학위를 얻게 된다.
교육방법은 주로 강의, 반복연습, 토론으로 이루어졌으며, 논리와 기억력이 중심이 되었다. 교사 및 학생들은 교과과정에 지정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야 했다. 강의는 교수가 교재를 천천히 읽고 학생들은 그것을 받아쓰는 과정과 교수가 해석과 주석을 붙이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의 상당수의 필기록들이 남아 있으며 이러한 강의록은 발간도 되었다. 기초 작업에 해당하는 텍스트 주해, 즉 독해란 문자적 의미를 밝히는 문법적 분석에서 출발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논리적 설명을 거쳐 학문과 사고의 내용을 드러내는 주석으로 완성되는 심층적 분석이다. 독해는 적합한 절차들에 따라 질의로 발전하다. 질의에 대하여 사색을 하고 자기 나름의 해답들을 찾아내며 창조된 수동적 존재로부터 능동적 존재로 변모하는 대학의 지식인이 태어나는 것이다.
대학은 중세문화의 발전에 현저한 공헌을 하였다. 대학은 학자들을 지원하였고, 학문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대부분의 경우 저명한 학자가 있는 학부는 그 분야의 최고권위로 인정되고 있었다. 대학졸업생은 학식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에 종사하였다. 문학석사는 교사, 학교장, 행정가로 진출했고, 법학법사는 로마법을 사용하는 국가에서 법률가나 군주의 관리로 행세하였고, 교회법학자는 교회법정의 법관이 되었으며, 신학박사는 신학교수나 고위성직자가 되었다. 13세기 이후 중세문화의 일반적인 발전은 대학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3. 여성교육
중세 봉건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기독교와 관련하여 복잡한 문제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자는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이브의 죄로 남자마저 천국에서 추방되었다는 것이었다. 여자란 자체가 죄에 빠진 약한 그릇이었다. 게다가 교회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강조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듯이 아내는 남편을 섬겨야 했다. 봉건계급의 여인들은 완전히 남편에게 복속되어 있었으며 또한 언제나 남자의 보호 아래 있었다.
극소수의 수녀원에서 여자들에게 문예를 가르쳤다. 수녀원에서는 수녀를 대상으로 읽기, 쓰기, 노래하기와 같은 초보적인 것과 책력, 즉 달력 계산법을 가르쳤다. 재능이 더 있는 자는 라틴어를 배우고 성시를 낭송하고 고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시를 작문하기도 하였으며 수사본을 그대로 베끼거나, 문체를 화려하게 수식하였다. 수녀원장이 교육을 담당했는데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가르쳤다.
대부분 가정에서 딸들을 가르쳤지만 여학교도 있었다. 파리에는 티펜느라 부인의 학교가 1292년 수르스가에 생겼다. 1390년에는 20개도 넘는 여학교가 있었다. 여교장도 발탁되어 노트르담 성가대원의 감독 하에 있었다. 교육의 질도 낮고 학위취득 시험은 치룰 수도 없었지만, 여성들도 여학교가 있어 그나마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데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교육은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1246년 이래로는 주기도문, 천사축사, 사도신경만이 의무과목으로 부과되었고, 나머지는 하고자 하는 의지, 영감 혹은 능력에 따라 부과되었다. 중세 여성은 소설이나 우화시를 통해서도 지식을 습득하였다.
참고문헌
Albert Reble, 서양교육사, 문음사
조경원·김미환·최양미·장선희·정광희 공저, 서양교육의 이해-역사와 사상, 교육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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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8.15
  • 저작시기2008.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76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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