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2-1. 송시열의 업적
2-2. 송시열에 대한 비판
3. 당대의 상황
3-1. 인조반정
3-2. 송시열의 출사
3-3. 산당의 정치적 입장
3-4. 대동법
3-5. 북벌
3-6. 인조대의 상황
3-7. 송시열의 죽음
4. 나가며
5. 참고문헌
2. 본론
2-1. 송시열의 업적
2-2. 송시열에 대한 비판
3. 당대의 상황
3-1. 인조반정
3-2. 송시열의 출사
3-3. 산당의 정치적 입장
3-4. 대동법
3-5. 북벌
3-6. 인조대의 상황
3-7. 송시열의 죽음
4. 나가며
5. 참고문헌
본문내용
극단을 보여준다. 노론계 인사인 김재구가 저술한 조야회통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우암 송시열은 직령의를 입은 후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그 전날 밤 흰 기운이 하늘에 뻗치더니 이날 밤 한 규성이 땅에 떨어지고 붉은 빛이 우암이 죽은 지붕 위에 뻗쳤다. 우명으로 관은 덧붙인 관을 썼다.
규성이 문을 담당하는 별임을 상기시켜 볼 때, 그의 죽음으로 천하의 문운이 다 했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는 조선 문인 사회에서는 가장 큰 극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소론 나량좌가 쓴 명촌잡록의 기술은 이와 정 반대이다.
정읍에서 사약을 받던 날 도사 권처경 앞에 꿇어앉아 말하기를, 이것은 양저의 어찰인데 감히 우 러러 바칩니다고 하였다. 권처경이 나는 사사하라는 명만 받았으니 어찌 갖다 드리겠소라며 거부하 고 서리에게 그 편지를 빼앗게 하여 그 자손에게 주었다. 송시열은 계고가 궁하자 다리를 뻗고 바 로 드러누웠다. 도사 권처경이 재촉했으나 종시 마시지 않으므로 약을 든 사람이 손으로 입을 벌리 고 약을 부었는데 한 그릇 반이 지나지 못해 죽었다.
송시열이 숙종의 조부모인 효종과 명성왕후의 어찰을 빙자해 목숨을 구걸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사약 마시기를 거부하는 추태를 부리다가 추하게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그의 죽음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등장하는 데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송시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김재구의 서술처럼 과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를 반대하는 세력의 기술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자, 공자 같은 대 성인에게만 붙는 자자가 붙어 송자라고 일컬어졌던 송시열의 사후 평가가 과연 객관적이었나 하는 문제에는 의구심이 남을 수밖에 없다.
4. 나가며
송시열에 대해 새로 인식해 볼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 우리 기억속의 송시열은 조선의 대학자이자 효종의 북벌론에 찬성한 위인이다. 그러나 내가 조사한 송시열의 모습은 그와 많이 달랐다. 그의 행동을 보아하면 국가의 이익보다는 당의 이익에 앞서 행동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송시열은 조선의 주자학의 최고 학자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상황은 주자학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동법의 시행, 상인의 발달 등 조선은 근대화로 향하는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지나치게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주자학은 당연히 변화하는 조선의 상황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학자로서의 능력을 비판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자학의 최고 학자로써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허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숭배했던 성리학이 과연 그 시대에 적합했냐 하는 것이다. 그런 마찰들이 송시열을 더욱 당쟁의 회오리속에 휘말리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5. 참고문헌
이덕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 2000
이한우, 「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해냄, 2007
이종호, 「우암 송시열」,일지사, 2000
이기환,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 황금부엉이, 2004
우암 송시열은 직령의를 입은 후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그 전날 밤 흰 기운이 하늘에 뻗치더니 이날 밤 한 규성이 땅에 떨어지고 붉은 빛이 우암이 죽은 지붕 위에 뻗쳤다. 우명으로 관은 덧붙인 관을 썼다.
규성이 문을 담당하는 별임을 상기시켜 볼 때, 그의 죽음으로 천하의 문운이 다 했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는 조선 문인 사회에서는 가장 큰 극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소론 나량좌가 쓴 명촌잡록의 기술은 이와 정 반대이다.
정읍에서 사약을 받던 날 도사 권처경 앞에 꿇어앉아 말하기를, 이것은 양저의 어찰인데 감히 우 러러 바칩니다고 하였다. 권처경이 나는 사사하라는 명만 받았으니 어찌 갖다 드리겠소라며 거부하 고 서리에게 그 편지를 빼앗게 하여 그 자손에게 주었다. 송시열은 계고가 궁하자 다리를 뻗고 바 로 드러누웠다. 도사 권처경이 재촉했으나 종시 마시지 않으므로 약을 든 사람이 손으로 입을 벌리 고 약을 부었는데 한 그릇 반이 지나지 못해 죽었다.
송시열이 숙종의 조부모인 효종과 명성왕후의 어찰을 빙자해 목숨을 구걸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사약 마시기를 거부하는 추태를 부리다가 추하게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그의 죽음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등장하는 데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송시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김재구의 서술처럼 과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를 반대하는 세력의 기술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자, 공자 같은 대 성인에게만 붙는 자자가 붙어 송자라고 일컬어졌던 송시열의 사후 평가가 과연 객관적이었나 하는 문제에는 의구심이 남을 수밖에 없다.
4. 나가며
송시열에 대해 새로 인식해 볼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 우리 기억속의 송시열은 조선의 대학자이자 효종의 북벌론에 찬성한 위인이다. 그러나 내가 조사한 송시열의 모습은 그와 많이 달랐다. 그의 행동을 보아하면 국가의 이익보다는 당의 이익에 앞서 행동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송시열은 조선의 주자학의 최고 학자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상황은 주자학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동법의 시행, 상인의 발달 등 조선은 근대화로 향하는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지나치게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주자학은 당연히 변화하는 조선의 상황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학자로서의 능력을 비판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자학의 최고 학자로써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허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숭배했던 성리학이 과연 그 시대에 적합했냐 하는 것이다. 그런 마찰들이 송시열을 더욱 당쟁의 회오리속에 휘말리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5. 참고문헌
이덕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 2000
이한우, 「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해냄, 2007
이종호, 「우암 송시열」,일지사, 2000
이기환,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발굴로 풀어본 살아 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 황금부엉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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