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민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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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약용의 민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朝鮮)의 민(民)사상
1)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교화(敎化)의 대상으로서의 민(民)
2) 양민(養民)론
2. 정약용(丁若鏞)의 민(民) 사상의 이론적 기초
1) 다산(茶山)의 철학적 기초
2) 인간관의 변용(變容)
3. 정약용(丁若鏞)의 정치, 사회론에서의 민(民)관의 특질
1) 민(民)의 현실적 인식
2) 민(民)의 정치적 위치 - 민(民)에 대한 원리(原理)론
4. 정약용(丁若鏞)의 민(民)사상과 목민섬서(牧民心書)
5. 맺음말 - 성리학 및 서구와의 비교

본문내용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현실에 대한 개혁의지와 농민들에 대한 애민사상이 깊이 담겨 있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 담긴 정약용(丁若鏞)의 민(民)에 대한 입장은 애민(愛民), 위민(爲民), 나아가 균민(均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위민(爲民)이라는 용어도 일반적으로 유교정치이념에서 표방하는 바이지만 목민심서(牧民心書)에 담겨있는 위민(爲民)과는 차이가 있다. 정약용(丁若鏞)은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민(民)이 아니라 사회의 한 계층으로서 민(民)을 인정하였다. 또한 그의 위민(爲民)은 실천하는 위민(爲民)이었다. 수령의 도리를 열거하면서도, 그 하나하나에 민(民)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가 제안한 많은 제도도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에게는 항상 관(官)이나 공(公)보다 민(民)이 우선이었다.
5. 맺음말 - 성리학 및 서구와의 비교
지금까지 다산(茶山)은 민(民)이라는 사상을 대외적인 면과 대내적인 면에서 전개하였다.
그는 民族민족)을 하나의 개체로 보아 조선의 자존심을 주장함으로써 민(民)사상을 전개하였다. 중국 중심의 평천하(平天下)라는 성리학의 보편질서를 그 근거부터 흔들면서 관점의 상대화논리화와 안민위주의 부국(富國)론을 조선 개체의 자존심의 논거로 삼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에 대한 조선민(朝鮮民)의 자존성을 위한 논거로서 민(民)사사을 전개하였다.
다산(茶山)은 또한 대내적으로 군(君)에 대한 민(民)의 관계를 개체간의 기능적인 상호보완의 관계로 보아 민(民)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였다. 군(君) 또는 지배계층은 교유한 기능을 가진 하나의 개체로서 그 자존심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그 기능이 원활히 수행되지 못할 때 그 존립의 의미는 상실케 된다는 것이다. 특히 개체의 수준을 개인으로까지 확대함으로써 군(君)의 신분상의 특이성은 더 이상 인정되지 않고 있음을 본다.
다산의 민(民)사상을 성리학의 민본(民本)사상과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함으로써 가능한데, 크게는 두 가지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민(民)과 군(君)사이의 관계설정부터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성리학의 민(民)은 군(君)이라는 상위자(上位者)를 전제로 한 민(民)이었으며 위계관계(位階關係)가 전제되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다산(茶山)의 사상에 나타나는 민(民)은 군(君)이라는 개체에 대하여 또 하나의 다른 개체로서의 민(民)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체관계는 본질적으로 평등한 관계이다. 군(君) 민(民)이라는 두 개체의 관계는 위계의 관계가 아니라 기능상의 보완관계로서 파악되었다. 군(君)이나 민(民)에는 각기 고유한 저마다의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각 개체가 자기의 기능을 잘 수행하면 전체에 이익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전체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자기의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개체는 개체로서의 존재의의를 상실하는 것이다. 군(君)은 민(民)을 전제로 한 군(君)이기 때문에 군(君) 민(民)관계도 기능상으로 상호보완관계에 있게 된다.
둘째로 위민(爲民)의 실질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성리학에서 군(君)이 민(民)에 대하여 줄 수 있는 혜택은 군(君)의 일방적인 덕이나 자비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산(茶山)의 사상에서 군(君)이 민(民)에 주는 혜택은 군(君)이 마땅히 해야 할 군(君)의 의무로 설명된다.
다음으로 다산(茶山)의 민(民)사상이 서구의 시민권과 다른 점을 살펴보면 세 가지의 차이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첫째로 서구의 시민권은 절대왕조에 대한 오랫동안의 투쟁 속에서 얻은 것인 데 비해서 다산(茶山)의 민(民)사상은 지배계층과의 공존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서구의 시민권은 인권사상(人權思想)을 바탕으로 해서 나타났다. 고대의 스토아사상에서 18세기의 계몽사상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지속되어 온 자연법논리를 근저로 하여 시민권사상이 형성된 것이다. 그에 비하면 다산(茶山)의 민(民)사상은 인권사상(人權思想)과 무관하게 발현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다산(茶山)사상에 나타난 인권사상(人權思想)은 인권사상(人權思想)이 나타난 다음에 그것의 연장으로서 생겨났던 것이다. 셋째로 서구의 시민권은 배타적니 특권의식을 수반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부터 시민권을 특권층으로 취급되었고 자본주의(資本主義)시대에는 자본가가. 공산주의(共産主義)사회에서는 노동자 계급이 특권층으로 부각되었다. 이에 반하여 다산(茶山)의 민(民)사상은 산업상의 계층대립이 없었던 환경이기도 하였지만 배타적 계급의식에서가 아니라 기능적 상호보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다산(茶山)이 말하는 민(民)사상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모든 개체가 저마다 고유의 기능을 갖는다는 것이다. 민(民)의 개체도 민(民)개체만이 갖는 특유한 기능을 갖게 된다. 둘째로 군(君)이나 신(臣)의 기능적 개체성도 민(民) 자신의 기능적 개체성과 마찬가지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모든 개체는 상호 기능적인 보완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민(民)의 개체가 자기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하려면 다른 개체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다산(茶山)의 사상에 나타나는 민(民)사상이 군왕(君王)이나 관료(官僚)에 대한 대립관계로서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서 상호 기능상의 보완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진된다는 논리에 의하여 뒷받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산(茶山)의 민(民)사상이 19세기 이후의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개혁운동에 계속해서 영항을 끼쳐왔다. 동학혁명이나 31운동에 이르는 우리나라 근세기의 혁명운동에는 다산(茶山)의 사상에서 나타난 이와 같은 민(民)사상이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것은 기존질서를 인정하면서 대립이 아니라 공존의 관계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의 방법에서 그 면모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것은 집권층에 대하여 기능적 평등성을 바탕으로 기능적인 보완을 내세우는 개혁의 방법이라고 하겠다.
6. 참고문헌
* 정다산연구(丁茶山硏究)의 현황(現況) - 한치근(韓治劤) 외 13명 민음사(民音社)
* 茶山 丁若鏞의『民』의 觀念에 대한 硏究 - 이원악 석사논문
* http://blog.naver.com/lchw510/40052666833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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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3.19
  • 저작시기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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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2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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