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다스] 아디다스의 마케팅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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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디다스] 아디다스의 마케팅전략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본문
1. 아디다스의 기원과 발전과정
1) 다슬러 형제의 수제화
2) 아디다스와 퓨마의 발전
2. 아디다스의 스폰스쉽 마케팅
1) 아디다스의 경영이념
2) 아디다스의 경영혁신전략
3. 아디다스의 스포츠 마케팅
1) 아디다스의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2) 아디다스의 한국 스포츠 마케팅
4. 아디다스와 리복의 M&A
1) 넘버3는 없다.
2) 상대방 텃밭 공략
3) 글로벌 마켓 포트폴리오 구축
4)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
5. 아디나스와 나이키의 선의의 경쟁
1) 아디다스
2) 나이키
6. 아디다스의 마케팅 전략
1) 아디다스의 도전
2) 월드컵에서의 아디다스의 위상
3) 세줄무늬 스타일 혁명
4) 세계 초일류 브랜드 재도약을 위한 마케팅전략

참고자료

본문내용

스의 위상
월드컵에서의 아디다스의 위상은 나이키를 압도한다. 1998 프랑스 월드컵 공식 후원 업체 선정에서 아디다스가 제일먼저 선정됐고, 12개 후원업체 중 유일하게 ‘장비 공급 업체’ 까지 겸한 것만 봐도 월드컵에서의 아디다스의 위상은 업계 1위인 나이키를 능가한다.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아디다스는 후발주자인 나이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리복, 필라의 도전도 만만치 않지만 월드컵만큼은 아디다스가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FIFA 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회 때 처음으로 입간판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는 아디다스 ‘홀스트 다슬러’ 회장의 아이디어였고, FIFA는 82년 ISL 을 설립해 스포츠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 재정상태가 안 좋은 FIFA 에게 ‘돈 버는 법’ 을 알려준 곳이 바로 아디다스였던 것이다.3) 세줄무늬 스타일 혁명 스포츠룩이 대유행이다. 스포츠 룩은 말 그대로 스포츠웨어의 이미지를 더한 일상복. 스포티한 이미지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단연 ‘아디다스 라인’이다. 멋쟁이 여성의 청바지 옆선, 청소년들이 즐기는 후드점퍼의 소매옆선에 덧댄 줄장식이다. 한줄 혹은 2~3줄의 아이다스 라인은 곧 멋진 스포츠룩의 상징인 것.
그 기원은 스포츠용품 브랜드 ‘아디다스’가 1949년 채택한 트레이드 마크인 ‘세줄무늬’다.
1차세계대전 후인 1920년, 20세의 독일인 아디 다슬러는 전쟁물 자인 천막용 캔버스천으로 달리기용 운동화를 만들었다. 그의 꿈은 모든 선수에게 각각의 종목에 적합한 최고의 신발을 제공하는 것.
1925년 그는 축구와 트랙경기를 위해 스파이크가 박힌 최초의 신발을 내놓았고, 1930년대 중반에는 이미 테니스 등 11개 스포츠 종목을 위한 30종의 신발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신발제조업자가 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군 연료탱크에서 나온 고무로 ‘포스트워’ 신발을 만들었다. 1948년 그는 자신의 성과 이름을 조합해 ‘아디다스’로 회사명을 정하고, 이듬해 세줄무늬의 회사 트레이드마크를 등록했다.
‘아디다스’의 도약기는 1954년 스위스 베른의 월드컵. 아디다스가 만든 나사형 징이 박힌 축구화를 신은 독일팀이 헝가리와의 결승전에서 승리했다. 그로부터 아디다스는 스포츠의 빠른 발전에 발맞춰 최상의 제품을 만드는 동시에 제품을 일반에게 알리기 위한 스포츠 프로모션을 도입했다. 그 방법은 유명한 운동선수를 제품광고에 활용하는 것. 제스 오웬, 무하마드 알리, 막스 슈멜링, 프란츠 베켄바우어 등이 모두 아디다스의 패밀리가 되었다
아디다스가 경기와 트레이닝을 위한 옷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63년 첫제품 ‘산티아고’가 등장한 이래 아디다스 축구공은 주요 경기의 공식 지정공이 되었다.
1996년은 아디다스에 또하나의 중요한 해. 전신을 아디다스로 휘감은 독일팀이 유러피안 축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33개국의 선수가 아디다스를 입었다. 1998년에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아디다스가 스포츠기업 최초의 공식 스폰서가 되어 주최국 프랑스팀도 아디다스를 입었다.
1920년 이래 아디다스가 확보한 특허권은 700개. 이는 가볍고, 안전하고,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제품생산으로 아디다스가 얻은 훈장들이자 스포츠용품 발전의 기록이기도 하다. 시즌마다 아디다스가 생산하는 스포츠신발은 600여종, 의류는 1500여종이며, 이는 160개국에서 판매된다.4) 세계 초일류 브랜드 재도약을 위한 마케팅전략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서독 선수들은 긴 나사형 징이 장착된 축구화를 신고 ‘베른의 기적’을 연출했다. 비에 젖어 있던 경기장에서 이 특별한 축구화는 빛을 발했다. 축구화에 징을 박은 사람은 아디 다슬러. 바로 아디다스 창시자이다. 그 후 징이 박힌 축구화는 불티나게 팔렸고, 아디다스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했다. 오늘날 아디다스의 세 줄 무늬는 월드컵을 장식하는 단골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디다스 본사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왕복 2차선 도로를 10여㎞ 달려야 나오는 헤르쪼게나우라흐라는 시골에 있다. 띄엄띄엄 자리 잡은 건물들은 뜻밖에도 하나같이 소박하고 전통적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혁신적인 스포츠용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디다스의 월드컵 공인구 퍼레이드는 스포츠 마케팅의 백미로 꼽힌다. 한·일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는 전 세계적으로 400만 개나 팔렸다. 얀 루나우 홍보수석은 “2006독일 월드컵 공인구는 전자칩이 내장된 새로운 개념의 스마트볼”이라며 “이미 개발을 완료한 상태로 12월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90년대 초반 파산 위기까지 겪은 아디다스는 지난 몇 년간 놀라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 경영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순매출액은 64억7800만유로(약 8조4200억원)로 전년도에 비해 3% 증가했고 순수익은 21% 늘어난 3억1400만유로(약 4082억원)를 기록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총매출액이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월드컵 특수를 누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아디다스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광고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90년대 초반부터 광고를 대폭 강화한 덕분에 아디다스는 젊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현재 아디다스가 후원하고 있는 세계적 축구 선수들로는 1억파운드(약 1900억원)짜리 초대형 종신계약을 맺은 데이비드 베컴 외에 지네딘 지단, 라울 곤잘레스, 올리버 칸, 미하엘 발라크 등이 있다.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는 국가대표팀은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터키, 중국, 일본, 남아공 등이다.
2004년 아디다스는 안방인 유럽에서 축구용품 시장을 나이키에게 빼앗겼다. 그러나 독일 월드컵을 통해 유럽 시장을 탈환하고 세계 최고 스포츠 브랜드로 재도약할 꿈에 부풀어 있다.참고자료뉴시스 http://www.newsis.com
브랜드커리어닷컴, 리포터 정상진
<스포츠 스폰서쉽활용 실태 분석> 김창호
<스포츠마케팅의 이해> 김영준 이벤트박스 1998.12.20
삼성경제연구소
서울신문 김태현기자 2006.08.11
문화일보 이형숙기자 2003.05.22
  • 가격1,5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04.06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2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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