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노동시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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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제1차세계대전 후의 노동시장구조

3. 철강금속노동자들의 고용구조: 고령화, 고숙련화 그리고 안정화

4. 기업의 고용정책: 내부노동시장의 발전

5. 맺음말

본문내용

일한 사무직이었지만, 이후 기계화로 인해 생산공정이 복잡해지면서, 생산을 설계하거나 관리하는 다양한 기술직이 도입되었다. 생산공정의 기계화로 인해 기능장의 역할은 원래 통제기능에서 협조 및 정보 교환을 담당하는 숙련노동자의 위치로 바뀌었다. Welskopp, Arbeit und Macht, p. 534 ff.
따라서 산업화 초기에 일반노동자가 사무직의 자리까지 승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 사무직으로의 진출 가능성은 점차 확대되었다. 여기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1913년 소위 사무직 연금보험법의 도입으로, 이를 계기로 누가 사무직인가 하는 논란이 있었고, 1918년 이후 사무직노조의 활성화로 인해 원래 노동직으로 분류되었던 다양한 직업군이 사무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사무직 노동자의 수가 대폭 증가했다. 예컨대 크룹 사의 경우 1919년 원래 임금노동자로 분류되었던 1168명의 직원이 사무직으로 전환되었다. HA Krupp WA168/554: Zusammenstellung der Effektivstarke fur den November 1919.
임금이 아닌 봉급을 받는 사무원이 임금수준에서 항상 생산직노동자들을 능가했던 것은 아니지만, 고용조건에서 보면 여러 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많았다. 이러한 사무직의 진출로 인해 생산직의 ‘관료화’가 진전되었고 이것은 고용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와 관련하여 기업 내 부서이동이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신규사원을 채용하기 전에 사내에 남아 도는 노동력을 재배치함으로써 신규채용에 따른 비용절감의 효과와 이 회사에서 익힌 특수한 기술을 살린다는 장점에서 기업주에게는 사내 재배치가 매력적이었고, 노동자에게는 눈앞에 직면한 해고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1921년부터 1939년까지 크룹 사 에센공장의 경우에 새로 충원된 생산직노동자 가운데 사내전출을 통해 기용된 사람이 약 1/3을 차지한다(전체 사원수에서 사내전출한 남성노동자의 비율은 대략 10%에서 최고 25%까지였다) HA Krupp WA41/6-57 (1922-1924), WA 41/6-58 (1925-3. 1936) und WA 41/6-59 (6. 1936- 6. 1939).
. 경기변동에 따라 내부 충원률의 비율은 크게 변화하지만, 최고 50%까지 내부에서 충원했다. 그 과정을 보면, 한 공장에서 남아도는 인력이 있으면 중앙인사부에 보고하고, 그 해당 노동자는 해고당하기 이전에 신규채용을 원하는 공장에 가서 다시 간단한 테스트를 받은 후 취업여부가 결정된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적어도 형식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대등적 관계로 변화한 노사관계 역시 취업구조 및 고용형태의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노조의 고용관리(채용, 승진, 배치전환 등)에 대한 발언권의 강화로, 기업은 노동투입량 조절의 탄력성을 얼마간 상실했다. 많은 노동자를 한꺼번에 채용하거나 해고할 경우 기업주는 노사위원회의 노동자대표와 협의를 거쳐야 했다. 또 해고 시에 해당 노동자는 기업노사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Das Betriebsrategesetz, in: Reichsgesetzblatt 1920, p. 164 참조하라.
따라서 기업은 생산 및 고용관리의 탄력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형태를 개발했다. 예컨대, 기업은 ‘임시휴직제(Werksbeurlaubte)', ‘3일전 해고를 통보할 수 있는 계약,’ (Arbeits- verhaltnis mit 3-tagigen Kundigungsfrist), 공장 내 하청노동자(Unternehmensleute) 등과 같은 다양한 고용형태의 개발했다. 이와 같은 외부충격에 대응한 기업의 노력은 기업 내부에서 노동의 수량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며, 이는 앞서 언급한 기능적 유연성과 더불어 노동시장을 재편하는 두 개의 축으로 작용했다.
5.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1920년대 독일 노동시장은, 한편으로 동부로부터 이주해온 노동자의 유입이 중단되고 이농현상의 약화로 인해 미숙련 ‘노동군단’을 상실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숙련화로 더욱더 분절되었다. 이런 노동시장의 구조화에 대해 독일 철강산업의 대기업들은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 노동시장의 내부화가 크게 진전되었다.
물론 이 연구는 한 기업에 국한된 것이어서, 섣불리 일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특히 크룹 사의 경우, 여러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대기업 가운데서도 예외적인 특성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룹 사의 정책은 하나의 선구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다른 기업의 모범이 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지멘스(Siemens)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책이 추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0년의 한 문서에 따르면, 크룹과 지멘스 사가 독일에서 장기근속자가 가장 많은 기업으로 손꼽혔다. Heidrun Homburg Rationalisierung und Industriearbeiter, Arbeitsmarkt- Management-Arbeiterschaft im Siemens-Konzern 1900-1939, Berlin 1991.
뿐만 아니라 내부시장의 특성상, 한 기업이 내부화를 단행하면, 다른 기업들도 이런 정책을 같이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 지역의 노동시장에서 한 기업이 노동시장을 내부화시킨다면, 외부시장에 의존하는 기업의 경우, 새로운 인력수급에 차질을 빚게 된다. 그렇다고 타기업의 내부노동시장에서 인력을 수급한다면, 그 비용은 외부시장에서 수급하는 것보다 더 높을 것이다. 따라서 한 기업의 내부시장화는 다른 기업의 내부시장화를 초래한다는 특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본문에서 간단히 언급했다시피, 이 내부시장화는 독일의 독특한 숙련노동자 수급방식인 기업 내 직업훈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업 내 직업훈련소가 독일기업에서 상설기관으로 자리잡은 때가 1920년대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내부시장형성에 대한 기업가들의 전략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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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6.15
  • 저작시기2009.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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