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그 역사와 문화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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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규장각 그 역사와 문화의 재발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개의 글

2. 도서 개요

3. 줄거리

4. 나가면서

본문내용

리와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의 규장각 자료 관리가 이루어 졌다.
책은 이때 조선일보의 기사를 빌어 우리 규장각의 실태를,
일제 식민지 지배가 말기로 접어든 1939년 1월 21일자 조선일보에 〈집도 없는 규장각본〉이라는 기사가 났다. '이조 오백년 왕가의 비장도서로서 궁중 깊이 간직해 두어 두문불출로 내려오던 규장각의 귀중도서 13만 권이 총독부의 손을 거쳐 경성제대 도서관에 자리를 옮겨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소화 5년의 일이다…지금에 와서는 서고의 제자리는 남에게 빼앗기고 방화장치도 아무것도 없는 소사실 모퉁이 누추한 단칸방에 삼던 싸틋 버림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고 있다.' 라는 기사를 발췌하여 담고 있다.
유네스코와 규장각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조선왕조의궤》 등 훗날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귀중한 사료들이 신간서적에 밀려 수위실 신세를 지고 있다는 고발기사였다. 규장각 도서를 '이등국민'의 문화잔재로 취급했던 일제의 문화정책을 보여준 사례였다. 규장각의 자료가 이 정도나마 전해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면서 한편으로는 기가막힌 사태였다. 북한이고 일본이고 마치 뇌가 없는 사람들처럼 역사의 기록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태우고 그야말로 야만인들의 극치가 아닌가 ? 행여 훼손될까봐 비록 그것이 자기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왕실의 발자취이며 역사적 사료인데...
책에서는 전하지 않지만 아마 이때 일본에서 많은 사료를 가져갔거나 훼손의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을 것이고 광복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한 북한의 서울 점령은 싫던 좋던 규장각 도서의 수난의 시대였음을 전하고 있다, 이후 서울대학교 도서관 재건을 기화로 규장각의 도서가 정리되고 ‘규장각 도서 관리실’ 설치와 장서 관리의 체계화를 이루며 규장각의 독립과 연구 기능의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나가면서
규장각에 소장된 주요 자료들은 세계적인 기록유산들은 물론 어필과 기록화의 세계를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그렇다. 규장각은 단순히 서고의 한계를 넘어 이를 통해 전통과 세계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은 컴퓨터 문명에 물들어 미래만 보고가는 우리에게 과거로의 회귀, 과거로부터 배움이라는 시간의 한계를 극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 규장각, 역사서, 독후감, 사료. 역사이야기. 세계문화유산
역사학, 국문학, 사학. 홍문관
  • 가격2,0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0.01.04
  • 저작시기201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7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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