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_음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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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차례-

일본의 음식문화

Ⅰ. 일본 음식의 역사 ----------------------------> 3


Ⅱ. 일본 음식의 특색 ----------------------------> 4


Ⅲ. 일본요리의 종류 ----------------------------> 5


Ⅳ.일본 식생활과 식사 예절 ------------------------> 6


Ⅴ.일본의 육식사 -------------------------------> 9

본문내용

, 물오리, 꿩, 학의 벼가 발굴되고 있다. 소, 말, 염소, 양이 보이지 않는 것은 조몬시대 후기 이후에 대륙으로부터 전해졌기 때문이다.
야요이 시대의 유적은 서쪽 지역에 많다. 멧돼지와 사슴이외에도, 곰, 늑대, 원숭이, 토끼 다람쥐, 영양 등의 뼈가 출토 되고 있다. 무렵에 소와 말은 가축화 되어 농경용으로 논농사에 쓰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고대인들은 들짐승 고기를 즐겨먹었지만 닭은 때를 알려주는 매우 상서로운 짐승으로 소와 말은 가축으로 귀하게 여겼다. 일본인들은 일상생활에 동물은 구분해서 쓰고 있었다.
고훈 시대가 되면 육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소는 농경용으로 말은 군사용으로 이용된다. 이 무렵에는 한반도에서 건너와 정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그들은 멧돼지나 개, 그리고 가축으로 쓰던 소나 말을 먹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불교의 전래와 육식금지령
538년(긴메이 7년)에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663년에 벌어진 백마강(하쿠손코, 백촌강) 전투 이후 멸망한 백제의 망명자들이 속속 바라를 건너왔다. 신라와 고구려 사람들도 찾아왔다. 이들은 오미(근강, 지금의 사가현)의 도읍지(오쓰大津)에서 우대받으며 갖가지 문화를 꽃피웠는데, 거기에는 소를 사육하고 소를 잡아 신에게 바치는 풍습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소의 주요 생산지는 '도래인'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곳이 많다.

[표] 일본의 살생금단, 방생령 (야마우치 아키라의 『식食의 역사인류학』에서)
연대
포고자
동물
이유
출전
675년
덴무(天武)천황
소, 말, 개, 원숭이, 닭
불교 및 실리
『日本書紀』29
712년
겐쇼(元正)천황
사냥개, 가마우지, 닭,
돼지 방생
불교 및 仁愛
『續日本紀』8
730년
쇼무(聖武)천황
돼지, 사슴
난획 금지
『續日本紀』10
732년
쇼무(聖武)천황
돼지 40두 방생
가뭄
『續日本紀』11
741년
쇼무(聖武)천황
말, 소
실리
『續日本紀』14
758년
고켄(孝謙)천황
돼지, 사슴
황후의 쾌원 기원
『續日本紀』20
791년
간무천황

제물 사용의 금지
『續日本紀』40
801년
간무천황

제물 사용의 금지
『日本後紀』9
804년
간무천황

실리
『日本後紀』12
810년
사가(嵯峨)천황
소, 말
실리
『日本後紀』20
1126년
스토쿠(崇德)천황
가마우지, 매, 개 방생
기근
『하쿠렌쇼百鍊抄』

진신(壬申)의 난에서 승리한 오아마(大海人) 황자는 덴무(天武)천황이 되었다. 그는 불교를 융성시키고자 불상을 만들고 사원을 일으켜 경전을 봉납하기도 했는데, 675년(덴무4년) 불교 교의를 기반으로 한 살생금지, 육고기 금지 사상에 입각해, 소, 말, 개, 원숭이, 닭의 육식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소, 말,개, 원숭이, 닭은 먹지 말라. 이외에는 금하지 않는다. 만일 이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처벌하리라"라는 최초의 육식금지령이었다.
불교는 본래 음식에 대한 터부는 없지만, 산 것을 해하거나 죽이는 일은 피했다. 육식금지령은 여기에 기반을 둔 일본적 금기로, 그후에도 때때로 금지령이 발포되었다. 살생금단령 외에 방생령도 발포되었는데, 방생령이란 잡은 동물을 들에 놓아주는 의식이다. 신사나 절에서는 오늘날에도 음력 8월15일에 방생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 금지령은 1200년 동안이나 이어져, 일본의 음식이 육고기와 멀어지고 단백질 공급원이 육류에서 어패류 중심으로 바뀌는 원인이 된다.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전해진 우유나 유제품도 사라져버렸다. 금지령의 특징은 사육동물인 가축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예외는 있었지만, 야생동물은 제외되었다. 농경, 군사, 수송에 유용한 소와 말은 절대로살생해서는 안 되었다.
몬무(文武) 천황 때인 701년(다이호 원년)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법전인 다이호 율령이 반포되었다. 율령에는 가축이나 고기에 대한 조항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가축을 먹는 것은 기마민족의 습관으로, 고대 일본에는 없던 것을 '도래인'이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당시 일본인에게 육식금지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음 금지령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불교의 융성과 함께 대두되기 시작한 도래인 세력을 음식 측면에서 억압하려고 한 정책이었다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우유를 마시는 것은 생피를 마시는 것과 같다.
불교의 5戒 (계) 중에는 "불살생'계가 있다. 먹는 음식에 대한 터부는 없지만 유전과 윤회 사상 때문에 산 것을 해치거나 살생하는 것을 피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산 것은 사람도 동물도 마찬가지라고 보았기 때문에 살생의 응보를 두려워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생물이라도 어패류는 별개였다. 불교 살생계의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같은 불교국가이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일본처럼 육식금지령이 반포되지 않았다. 살생계가 사원을 중심으로 한 일부 신도들에 의해 지켜지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소, 돼지, 말, 양, 닭, 물고기 등 뭐든지 먹었다. 다만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는 고기와 술을 삼가했다. 한반도에도 살생금지령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만큼 엄격하지는 않았다. 쇠고기는 몽고의 침략 무렵에 부활해 조선시대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 중국, 한반도는 각기 전려 다른 육식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양요리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독자적인 절충으로 '양식'을 만들어 낸 것은 일본뿐이었다.
일본인의 육식기피현상은 율령국가 이래 계속된 것으로, 들짐승과 날짐승의 고기는 별개였지만, 가축류의 고기를 먹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무로마치 (室町) 시대의 선교사 '클라세'가 쓴 『日本 西 敎 史』에는 "일본인은 쇠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를 기피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말고기를 기피하는 것과 같다. 또 우유를 마시는 것은 생피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 굳이 마시지 않았으며, 소와 말이 아주 많지만, 소는 농사에 쓰고 말은 전쟁에 사용할 뿐이다. 일본인은 사냥으로 잡은 들짐승 외에는 먹지 않는다. 산에는 영양, 멧돼지, 토끼류가 많다. 새 역시 많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에도시대 중기부터 말기에 걸쳐 영주(大名) 중에는 이런 규정을 따르지 않고 몰래 '몸보신'용으로 육식을 하는 자가 나타났다.
참고자료 돈가스의 탄생 /뿌리와 이파리/ 오카다 데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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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1.23
  • 저작시기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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