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경제 안정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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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80년대의 경제 안정화 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안정화 정책의 근원 1

본론
-전두환, 김재익을 제외하고 80년대를 논할 수는 없다. 4
-대통령의 경제학습 6
-6.28금리인하 9
-물가를 잡다 12
-예산의 동결 16
-불황의 시기 20
-3低 호황 26

결론
5공화국 시대의 경제 정책 29
출처 32
<부록> 5공 경제연표

본문내용

안정화 정책의 근원
10.26 사태와 당시의 경제상황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선 안정화 정책이 본질적으로 3공 말기의 경제선정에 대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의 흐름이었다. 그런 뜻에서 10.26은 안정화 정책을 촉진 시키는 계기였다기 보다는 극복해내지 못한 과거의 경제선정 자체가 10.26 사태의 촉발 요인의 하나로 분석될만하다. 사실 무리한 경제 정책의 부작용들로 인해 민심이 돌아서고 박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킨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제2차 오일쇼크 속에 물가는 폭등하고 중화학 공업의 중복 투자 후유증이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중화학 공업에 대한 은행 대출 비율이 73-74년에는 30%에 불과하던 것이 75-77년 사이에는 65%로 뛰어올랐는가 하면, 섬유산업에 대한 대출은 4-%에서 20%로 뚝 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10.26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정치와 경제모든 면에서 대대적인 인사조치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물론 10.26응 경제적 동인 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의 전후 배경을 살펴볼 때 경제적 선정에 대한 불만이 넓고 깊게 깔려있었을 뿐 아니라 정권의 마지막 보루인 정보기관에서 조차 당시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순 없다.
5공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제2차 석유파동이다. 그것은 3공의 몰락을 재촉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10.26 이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내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회교혁명으로 정권을 쥔 호메이니의 이란 정부가 78년 10월부터 원유수출을 중단함에 따라 드디어 제 2차 오일 쇼크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2차 오일쇼크는 겨우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동 산유국들이 앞을 다투어 생산과 수출 중단 조치를 취했고 이에 따라 국내에 기름을 대던 석유메이저들이 잇달아 우리 측에 공급량 감축을 통고해 온 것이다. 이들의 감축량은 전체 국내수요의 20%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0.26이 터진 것이다. 이때 기름 재고량을 조사해 보니 겨우 7일 분에 불과했다. 다급한 물량 확보는 당연히 가격문제를 야기시켰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참이었으므로 현물시장에서 사들인 가격은 배럴당 최고 41달러 60센트까지 줘야 했다. 더구나 얼마 안 있어 현물시장 가격이 35달러 선으로 내리는 바람에 더욱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석유 문제는 5공이 출범하는 시점에서 아무도 어쩔 수 없는 가장 암울한 요인이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저명한 세계적인 경제 예측기관들이 저마다 ‘계속되는 석유값 인상 추세’를 점치고 있었으므로, 이를 전제로 한 한국경제는 아무리 좋게 꾸미려 해야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름값이 계속 오르는 한 국제수지고 외채고 물가고 성장이고 간에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구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국제 고금리 추세 또한 원자재 파동과 함께 어울려 상승작용을 일으켰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5공의 출범과 함께 제5차 5개년 계획(82~86년)의 내용에도 아무리 낙관적인 청사진을 그려 넣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치솟기만 하던 석유값이 82년부터 급격한 하락세로 반전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5차 5개년 계획 자체가 쓸모 없어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혼란하고 비관적인 전망밖에 나올 수 없었던 국내상황은 제 5공화국이 안정화라는 큰 과제를 안고 시작할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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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1페이지
  • 등록일2010.05.11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워드(doc)
  • 자료번호#609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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