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진보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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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주변부/아시아의 민족주의
3. 민족주의, 발전, 진보
4. 배제의 논리를 넘어서

본문내용

본적으로는 정치적인 성격의 노동에 강력한 동기부여와 초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대체로 아시아 경제발전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이러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담당했다.
민족주의에 의해 추동된 ' 후발국의 선진국 따라잡기' 인식체계는 무제한적 착취를 통한 무제한적 성장을 민족집단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는데 기여했다. 그것은 소위 국민/민족적 정체성, 즉 특정국가 특정민족에의 강렬한 소속감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집단적 정체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국가 및 자민족의 번영과 생존은 최우선적인 목표로 각인 되며 따라서 그 순간 모든 다른 요소는 철저히 도구화된다.
3) 더구나 민족주의는 일반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을 갖는다. 통합적 구심점으로서 국가는 민족주의자의 뿌리다. 국가주의는 대체로 민족주의와 동일시된다. 특히 '후후발국'에서 시장기제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로서 근대적 시민사회를 자생적으로 이뤄내지 못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민족 부르주아지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제도로서 국가의 역할은 더욱 강화된다.
) 최장집, "박정희 정권과 한국현대사," 『계간 대화』 (1995년) 제5호 참조.
그러한 국가 중심적 사고와 체계는 산업화가 유발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자연 파괴 및 오염을 오히려 조장하고 정당화한다. 그것은 국가라는 물리적 폭력의 합법적 소지자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환경운동가가 '반국가 사범'으로 취급받은 것은 단순히 정치적 탄압만의 결과가 아니다.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이 그만큼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4. 배제의 논리를 넘어서
나는 여기서 '차이'의 정치학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국민국가적 정체성, 즉 민족주의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국민국가 구성원의 균질적이고 동질적인 공동체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라고 하는 동질성의 감각과 '외국인'이라는 타자에 대한 배타적인 감각은 결국 '차이'의 인지와 경험을 매우 어렵게 한다. '차이'는 오로지 국적 혹은 민족적 귀속을 기준으로 해서만 경험되며 그때의 차이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국민국가적 정체성을 체화한 개인은 외국인 혹은 '타민족'이라는 타자를 상정한다. 그러나 그것의 일상적인 실제적인 체험은 제약되어 있거나 철저히 자국민 중심적인 회로 속에서 재해석된다. 따라서 '차이'는 '차이'로 경험되지 못하며 차별의 근거와 동질화의 대상으로만 간주된다. 재일동포 학자 이효덕의 표현을 빌면, "사회란 원래 시작부터 다양한 차이로 구성되는 혼성적인 것일 뿐, 거기에서 사람들이 공존한다는 것은 단절 없고 끝도 없는 나날의 '차이의 경험'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차이'의 경험이야말로 인간이 사회를 만들어 공존하려고 하는 영위의 기본"이다.
) 이효덕, "국민국가의 안과 밖-국민국가/국가/주체," 『당대비평』 1999년 여름호, 제7호, 211면.
균질적이고 민족적인 정체성이 압도하고 있는 사회에서 차이의 경험은 어렵다. 매일 매일 경험하는 차이를 '국민-비국민', '우리 민족-타민족' '우리-남' 간의 관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근거로 인식하는 것은 어떤 특수한 계기가 주어질 때 가능하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지구화가 열어놓은 국가횡단적 민족초월적 공간, 특히 아시아라는 지역적 공간은 새로운 정체성이 탄생할 수 있는 매우 다층적이고 중층적인 곳이다. 그것은 물론 패권국의 질서와 자본을 전세계에 확산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며 또한 민족적 정체성을 초월한 그러나 매우 획일적인 초국가적 소비주체의 확산을 매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경제의 식민화, 신자유주의적 과정으로서만 지구화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일면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과정속에서 위치의 정체성이 내셔널리티의 정체성을 압도하며 새로운 중층적 다의적 주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가령 그러한 조건을 내재화한 주체로서의 재일 코리안, 국경을 가로지르는 페미니스트 운동, 동성애자 운동, 생태주의 운동, 지역공동체간 교류, 국제주의적 노동운동 등도 다국적 초국적 다문화적 혼성화 사회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물론 국가횡단적 경험에 있어서 가장 앞서 있는 것은 자본이다.) 특히 '아시아'라는 지역적 개념은 특정국가의 중심의 헤게모니 및 위계질서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일국가중심적 민족주의를 넘어서 이러한 가능성을 매개할 수 있는 탈민족국가적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지구화, 특히 문화의 지구화는 이런 차원에서 단순히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 중심부 논리의 전지구적 확산이라는 차원이라는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민족과 국가에 묶여있던 근대적 주체가 진정으로 '진정성'(authenticity)의 개인으로서 주체적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도 있다. 또 한편 생태주의의 지속가능한 단위로서의 지역공동체의 출현이 보장되는 조건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노출, 다양한 민족문화에서 형성된 타자에 대한 경험은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의
)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진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상상의 공동체』(나남, 2002)로 번역되었다). 참조.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앤더슨은 민족이 가공의 신화 혹은 발명품이라는 주장을 하는게 아니고 마을단위에서와 같은 직접적 접촉과 체험이 불가능한 그래서 상상에 의존해서 이해 수용해야 하는 집단 의식이라고 강조한다.
신화라는 것을 깨닫게 하면서 월경적 다중적 주체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 이때 '우리'는 '닫힌' 전근대적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적 틀에서 벗어나며 동시에 '열린' 민족주의가 부과하는 배제와 정복의 논리로부터도 자유로질 수 있다. 비로서 '개인'이 해방된다
이러한 과정이 전통적인 진보에서의 탈피, 탈근대적 방향임은 뚜렷하다. 그런 의미에서 월경적 다중적 주체의 탄생과 증가를 통한 근대 민족주의의 극복은 국민국가 논리와 실천으로부터 멀어져가기이며 '진보'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보라는 말에 계속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진보'의 재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시아라고 해서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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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17
  • 저작시기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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