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① 선사시대의 정의
② 선사시대의 생활상·문화
▶ 선사시대의 생활상
1) 구석기시대의 유물
< 구석기시대의 유물 현황 >
2) 신석기 시대의 유물
3) 청동기 시대의 유물
*청동기 시대의 태안
② 선사시대의 생활상·문화
▶ 선사시대의 생활상
1) 구석기시대의 유물
< 구석기시대의 유물 현황 >
2) 신석기 시대의 유물
3) 청동기 시대의 유물
*청동기 시대의 태안
본문내용
.
이렇게 3기로 나누어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제2기에 들어와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청동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 특히 동모·동과 등의 무기류와 종교적인 주술용구가 많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서는 우선 고인돌을 들 수 있는데, 이 고인돌에는 남방식과 북방식이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이북 지역에 분포된 것을 북방식, 그리고 이남에 분포된 것을 편의상 남방식이라고 한다.
*청동기 시대의 태안
태안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고인돌(지석묘)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태안읍 장산리에서 7기, 그리고 고남면 고남리에서 1기 등, 모두 8기가 발견되었다.
장산리에서 발견한 것은 편의상 그 지역의 지명을 붙이어「장산고인돌」(일명7성 고인돌) 그리고 고남리 것은 역시 그대로「고남고인돌」이라 명명하였는데, 아직 학술 조사는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술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이유는, 일본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직접 이 장산고인돌을 발굴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인근 주민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발굴 현장에서는 아무런 부장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고남 고인돌에서도 부장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같이 태안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서 고인돌(지석묘)은 발견되었으나, 이곳에서 청동기 유물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았다.
또한 우리와 인접한 서산시에서도 고인돌은 일찍 20여기가 발견되었으나 역시 이곳에서도 청동기 유물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969년 서산시 대산면에서 동모가 한 점 발견되었고, 또 지난 1987년에는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에서 세형동검이 한 점 출토되었는데, 이 동검의 크기는 길이 28㎝ 폭 3㎝로 되어 있으며, 동모의 길이는 20㎝에 달한다.
이 같은 동모·세형동검 등은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고, 야산과 밭에서 발견된 것인데, 앞으로 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태안 지역에서는 아직도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의 유적이 이미 발견되었으므로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청동 숟가락이 몇 점 있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아니고, 고려시대 중엽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3기로 나누어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제2기에 들어와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청동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 특히 동모·동과 등의 무기류와 종교적인 주술용구가 많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서는 우선 고인돌을 들 수 있는데, 이 고인돌에는 남방식과 북방식이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이북 지역에 분포된 것을 북방식, 그리고 이남에 분포된 것을 편의상 남방식이라고 한다.
*청동기 시대의 태안
태안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고인돌(지석묘)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태안읍 장산리에서 7기, 그리고 고남면 고남리에서 1기 등, 모두 8기가 발견되었다.
장산리에서 발견한 것은 편의상 그 지역의 지명을 붙이어「장산고인돌」(일명7성 고인돌) 그리고 고남리 것은 역시 그대로「고남고인돌」이라 명명하였는데, 아직 학술 조사는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술 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이유는, 일본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직접 이 장산고인돌을 발굴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인근 주민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발굴 현장에서는 아무런 부장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고남 고인돌에서도 부장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같이 태안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서 고인돌(지석묘)은 발견되었으나, 이곳에서 청동기 유물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았다.
또한 우리와 인접한 서산시에서도 고인돌은 일찍 20여기가 발견되었으나 역시 이곳에서도 청동기 유물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969년 서산시 대산면에서 동모가 한 점 발견되었고, 또 지난 1987년에는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에서 세형동검이 한 점 출토되었는데, 이 동검의 크기는 길이 28㎝ 폭 3㎝로 되어 있으며, 동모의 길이는 20㎝에 달한다.
이 같은 동모·세형동검 등은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고, 야산과 밭에서 발견된 것인데, 앞으로 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태안 지역에서는 아직도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의 유적이 이미 발견되었으므로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청동 숟가락이 몇 점 있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아니고, 고려시대 중엽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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