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왜곡의 내용, 일본 역사왜곡과 한국 근현대사, 일본 역사왜곡과 창씨개명, 일본 역사왜곡과 독도문제, 일본 역사왜곡과 교과서왜곡, 일본 역사왜곡과 자민족우월주의, 일본 역사왜곡의 사례와 시사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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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역사왜곡의 내용, 일본 역사왜곡과 한국 근현대사, 일본 역사왜곡과 창씨개명, 일본 역사왜곡과 독도문제, 일본 역사왜곡과 교과서왜곡, 일본 역사왜곡과 자민족우월주의, 일본 역사왜곡의 사례와 시사점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일본 역사왜곡의 내용
1. 임나일본부설
2. 4세기 후반 삼국관계
3. 6세기 삼국 및 국제관계
4. 삼국의 조공설
5. 왜구
6. 조선국호
7. 임진왜란
8. 조선통신사
9. 조선의 서구 열강에 대한 인식과 국제적 지위
10. 전 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조선
11. 일본=무가사회, 조선=문관사회론
12. 정한론
13. 강화도 사건
14. 한반도 위협설

Ⅲ. 일본 역사왜곡과 한국 근현대사

Ⅳ. 일본 역사왜곡과 창씨개명

Ⅴ. 일본 역사왜곡과 독도문제

Ⅵ. 일본 역사왜곡과 교과서왜곡

Ⅶ. 일본 역사왜곡과 자민족우월주의

Ⅷ. 일본 역사왜곡의 사례

Ⅸ. 결론 및 시사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최대의 도시 에도(東京), 그리고 고호도 모방한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화풍을 뽐 낼 수 있지만, 한국은 중국의 앞선 문물을 일본에 전해주는 다리 역할만 했지 이렇다 할 문화가 없다는 투다. 허나 이처럼 중국과 한국과의 차이나 서양과의 동일성을 과장함으로써 얻어진 일본의 정체성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에 쉽게 환멸로 바뀔 소지가 큰 매우 취약한 것이다.
셋째, 이 책은 일본 인근의 한국과 중국, 러시아는 더불어 살 대상이 아니라 자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이거나 존중할 만한 것이 없는 열등한 존재로 묘사한다. 서양을 제외하고 더불어 살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대목은 메이지초 일본에 왔다 조난당한 터키 군함의 생존자를 구조한 일과 1985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터키가 테헤란 공항에 비행기를 보내 일본인의 귀환을 도운 일을 대응시켜 “은혜 갚기”라는 표현으로 소개한 것 외에는 찾아 볼 수 없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을 자랑하고 그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독자와 종속, 우월과 열등, 문명과 야만, 진보와 정체, 우군과 적군이라는 균형 감각이 결여된 도식적 이항대립의 수사법을 남용하고 있다.
Ⅷ. 일본 역사왜곡의 사례
-낙서가 구석기 벽화로?-
저명한 고생물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정교하고도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사기극의 희생자였음이 분명해졌다…. 그 속임수는 너무도 사악하고 불가해한 것으로, 고생물학의 발견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1953년 11월, 필트다운맨 진위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논문이 발표됐다. 논문은 다섯쪽짜리 짧은 분량이었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컸다. 해부학자, 사상가, 고생물학자, 화학자 등 훌륭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선입견에 맞고 자신이 선호하는 이론을 입증한다는 이유로 속아넘어간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기극을 밝히는 데는 무려 40여년이 걸렸다. 많은 젊은 고고학자들이 이 유골을 의심했지만 이해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반론을 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야 진실은 드러났다. 한번 입증된 학문적 성과를 뒤집기는 이렇게 어려웠다. 후지무라의 사기극 역시 제보와 언론의 추적이 없었다면 그토록 빨리 탄로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후지무라의 사기극은 뒤집기가 쉽지 않았던 만큼 이를 특종보도한 <마이니치> 신문은 매우 치밀한 취재를 통해 후지무라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도록 했다. <마이니치>의 취재진이 후지무라가 미리 땅속에 유물을 파묻는 장면을 찍은 것은 지난 10월22일. 그러나 <마이니치>는 그 사실만으로 바로 사기극을 보도하지 않고 기다렸다. 닷새 뒤인 27일, 취재진은 후지무라가 유물을 묻은 바로 그 곳에서 다시 유물을 발굴해 그것이 대단한 사료라고 발표하는 것까지 다시 촬영하고 그 다음에야 후지무라에게 비디오를 들이댔다. 후지무라로서는 꼼짝없이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치스런 고고학 사기극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충격적인 유물날조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다. 96년 탄로가 난 별황자총통 조작사건이다. 이 사건은 92년 해군 충무공 해저유물발굴단의 한 장교가 진급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골동품상과 짜고 가짜 총통을 만들어 바다에 빠뜨린 뒤 다시 건져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총통이란 점에서 언론에서도 역사학상 엄청난 사건으로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4년 뒤 결국 조작임이 발각됐고, 이 과정에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 문화재당국은 큰 망신을 샀다. 92년 충무공 총통이 발견됐다는 보고만 받고 전문가의 감정도 없이 발견 3일 만에 국보로 지정했던 것이다.
악의적인 사기는 아니지만 학자의 오판에서 나온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 사건 역시 일본에서 벌어졌다. 한 고고학 교수가 일본 벳푸지방의 동굴에서 후기구석기시대 원시인의 벽화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일본에는 후기구석기 벽화가 전무했기 때문에 만약 사실이라면 엄청난 학문적 성과였다. 그러나 조사결과 고대벽화는커녕 마을 사람들이 과거에 그려놓은 낙서로 판명돼 희대의 코미디에 그쳤다.
Ⅸ. 결론 및 시사점
`침략 전쟁의 미화``동학혁명`에 대하여 보국인민을 내건 민중항쟁을 폭동으로 평가 .`종군위안부`에 대하서는 일본군 및 전 세대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주는 내용을 완전 삭제, 중학생 고교 수준에 반인륜적 전시 성폭행 언급 곤란을 이유로 국제적으로 이미 사실로 인정된 범죄행위에 대한 의도적인 은폐와 전쟁미화 및 정당화로 이어지게 왜곡.`난징 사건`에 대해서는 번번하게도 자료부족이라면서 기술을 회피했다. 이것은 범죄해위에 대한 의도적인 은폐로 문제가 되고 있다.`한국 합병`에 대해서는 국제정치 역사상 한국합병이 불가피 했음을 부각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기술임을 강조, 낙후된 한국 근대화에 공헌 했다는 점을 시사하였는데 이것은 불법적 침략 사실 은폐, 한국 내 소수 친일파의 합병 수용론을 먼저 다룸으로써 역사사실 기술의 공평성 결여, 식민지 수탈 의도 은폐로 문제가 되고 있다.`일본이 전쟁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민족주의를 높이고 있다 이는 일본이 왜 전쟁 피해를 입게 되었냐에 대한 근본적 원인 설명을 외면함으로써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거부와 전승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고립적, 폐쇄적, 국가주의적 심성 배양 유도로 문제가 되고 있다.`전범 재판`에서는 국재법상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일본이 전승국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당했다는 점을 부각하여 침략전쟁, 전쟁범죄에 대한 잘못을 부인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국가 수뇌부에서 인지를 못한 건 아닐 것이다. 좀 더 강경한 대책을 세워 과거사 회복과 역사왜곡을 중단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김흥수,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고찰, 동아대 동북아국제대학원, 2004
- 김한종, 역사왜곡과 우리의 역사교육, 책세상, 2001
- 배러클로우, 이연규 역, 현대역사학의 추세와 방법론, 풀빛, 1983
- 시민모임, 일본역사왜곡내용, 2002
- 한상범, 일본의 역사왜곡, 무엇이 문제인가?, 한글새소식 제345호, 2001
- 호리고메 요조, 역사를 보는 눈, 개마고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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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3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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