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정두경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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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두경(鄭斗卿)의 시와 복고취향(復古趣向)

1) 삶의 특징

2) 시에 나타난 복고취향

가. 당(唐) 이전(以前) 지향

나. 변새시(邊塞詩)의 재현

다. 웅건한 기상과 자주의식

라. 생활 주변의 정감

본문내용

경이 함께 과거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때 동명은 벼슬이 正言이어서 考試官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그런데 때때로 떨어뜨리는 답안지를 보면 반드시 유달리 칭찬하곤 했으니, 대개 채유후의 잘못을 비웃는 것이었다. 채유후가 매우 불쾌해 하며 말하기를 “나는 비록 문장을 잘하지 못하나 대제학이고, 그대는 비록 문장을 잘하지만 직책이 臺諫일 뿐이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 동명이 노하여 수염을 만지면서 큰 소리로 “백창(伯昌 : 채유후의 자)아, 네가 우리나라 시집을 조금 읽고 급제하여 대제학에 오른 것은 장한 일이다. 내가 네까짓 대제학을 볼 때엔 썩은 쥐와 같이 생각하는데, 네가 어찌 감히 나를 위협하느냐.” 채유후가 곧 웃고 풀었다. 이어서 술을 시켜 권하고 시를 청하니, 그 때가 마침 시월인데 우레가 치고 비가 쏟아졌다. 과거는 식년 회시였다. 곧 붓을 들어 쓰니 채유후가 붓을 놓고 화답하지 못했다. 그 시에 이르기를···라고 했다. 효종이 듣고 기뻐 감탄하며, “이 시가 이 가뭄을 없애고도 남을 만하다.”라고 했다.
이 일화로 보아 정두경이 당대의 문장으로 자부하였고, 그의 시가 활달한 상상력을 구사하여 웅장한 기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효종 임금도 인정했던 것이다.
라. 생활 주변의 정감
정두경의 문집에 실려 있는 800 수 가까운 시 중에서 증답시(贈答詩)와 만시(挽詩)가 약 반을 차지한다. 이렇게 남에게 지어 준 시가 전체 시의 반에 가깝다는 것은 그가 교유의 폭이 넓었거나, 그에게 시를 요청한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이다. 그는 사람됨이 소탈하고 호방하여 벼슬에 나아가기를 즐기지 않았고, 몸가집이 간략하고 얽매이지 않아 농담을 잘 하고 술을 즐겼으며, 또한 교유에 뜻을 끊고 세상과 멀리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의례적인 경우에 쓴 시를 빼고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느낀 정감이 서린 시를 보면, 가까운 친구에 대한 우정, 전원에서 한가하게 술 마시는 기분, 신선과 도교에 대한 선망 등의 내용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이를 확인해 보자.
전원에서 일이 있어 · 두 수(田園卽事 二首)(첫째 수)
수양버들 그늘 속에 오솔길은 호젓하고
온갖 꽃 푸른 나무 풀들도 향기롭다.
시인은 홀로 술 마시며 시를 짓는데
시골 늙은이는 서로 만나도 시비가 없네.
봄물에 뱅어는 팔딱팔딱 뛰놀고
들판에는 노란 참새가 포르르 나는구나.
翟公은 한가하게 사는 이 흥을 몰랐으니
문 앞에 車馬가 드문 것을 못내 한스러워 했지.
垂柳陰中一逕微 雜花生樹草芳菲 騷人獨酌有詩句 村老相逢無是非
春水白魚爭潑潑 野田黃雀自飛飛 翟公未解閑居興 枉恨門前車馬稀
(東溟集 卷7, 461쪽)
이 시는 편차로 보아 30대 후반에 지은 작품인 듯하다. 전원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한가한 분위기가 드러나 있다.
수련에는 봄날의 생기 넘치는 자연을 조용하고 그윽하게 바라보는데, 약동하는 생명력보다는 한가로운 전원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함련에는 시인 자신의 전원생활과 순박하고 조용한 시골 인심을 보여준다. 시비가 없는 시골 인심이라는 말은 자신을 괴롭혔던 벼슬길에 대한 대비적 심정에서 나온 것이다. 경련에는 봄물에 노는 뱅어와 들판에 나는 참새로 봄날 전원의 생명력을 동적으로 표현했지만 역시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깨뜨리지는 않았다. 미련에서 한나라 문제 때 정위를 지냈던 적공(翟公)이 자신이 벼슬할 때는 손님이 몰리다가 벼슬이 떨어지니 손님이 끊어진 것을 한탄하여 다시 정위가 됐을 때, 문에다가 어려움을 겪어본 후에 사귐을 알 수 있다는 글을 써 붙였다는 고사를 끌어와서 적공은 한가하게 전원생활을 즐기는 흥취를 모르고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 빈객이 없는 것만을 한스러워했지만, 자신은 조용하게 전원의 흥을 즐기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전원의 한가함 속에서 술 마시는 기분을 표현하기도 했다.
◇◆
정두경은 조선 중기 선조 때에 나서 현종 때까지 살았던 문인 관료였다. 이 시기는 두 차례의 큰 전란으로 문풍은 점차 시들어지고 이념에 대한 경직성이 강화되던 때였다. 한편으로는 이에 반발하는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두경은 사장파의 전통을 이으면서 전대의 당시 지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 이전의 복고적인 취향으로 한시의 새로운 활로를 찾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복고취향은 성당 이전의 시를 지향한 것과 변새시를 재현한 것, 웅건한 기상과 자주의식을 드러낸 것, 그리고 생활 주변의 정감을 표현한 것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사마천의 고문을 중시하고 한위(漢魏)시대의 고체시와 성당의 시를 존중하여, <시경>에서부터 성당이전까지의 시를 모범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악부시 중의 가행(歌行)을 잘 지었고, 고풍스런 가락에 고사를 관련시킨 시를 즐겨 지었다.
둘째, 그는 상무적(尙武的) 기상과 변방의 형편을 시화하여 성당 시대의 변새시를 이 땅에서 재현해 내었다. 전란을 겪고 변방을 둘러보면서 무비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되었고, 그러한 정서와 생각을 상무적 기상과 어울려서 변새시로 표현해낸 것이다.
셋째, 그의 시에는 웅건한 기상과 굳건한 자주의식이 드러나는데, 그가 변새시에서 보여준 상무적 기상은 현실의 불의를 응징하려는 의지와 관련되고, 또한 국가의 자주성을 확립하려는 정신과 연결되어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한 씩씩한 기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생활 주변에서 느낀 정감을 시로 표현하였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친구와 이별하는 서운함, 전원에서 한가하게 술 마시는 기분, 그리고 도교의 신선경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을 표현한 시들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증별시나 만시 등의 의례적인 작품이 상당히 많아서 전체 작품의 반에 가까운데, 이는 그의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그의 시가 지니는 한국 한시 문학에서의 의의를 생각해 보면, 당시풍을 지향했던 전대의 모색을 좀더 심화시켜서 한위(漢魏)에서 성당까지의 복고적 취향으로 돌아가려 한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고문이 존중되고 고풍이 숭상되던 당대에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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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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