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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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도전의 정치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기

2. 정도전의 생애(生涯)
가. 정도전의 가계
나. 변혁(變革)을 꿈꾸다
다. 이성계와의 만남, 그리고 조선의 건국(建國)
라. 개국이후의 업적(業績)
마. 죽음

3. 조선왕조의 창건(創建)과 이데올로기(Ideologie)적 정당성(正當性)
가. 우왕과 창왕은 왕 씨가 아니다.
나. 천자에 대항(對抗)
다. 우왕 ․ 창왕 ․ 공양왕의 실정(失政)
라. 천명과 인심에 따른 결과
마. 역성혁명

4. 정도전의 사상(思想)
가. 사회 ․ 정치사상
나. 경제사상
다. 철학 ․ 윤리사상
라. 배불론

5. 맺음말

6. 참고문헌

본문내용

계급의 세력이 삼제되지 못하고 지주적 성리학이 강하게 계승되면서 통치규범과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5. 맺음말
우리는 흔히 이성계를 조선의 건국자로, 정도전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알고 있다. 만약 조선의 건국이 이성계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조선은 이성계라는 무장이 건국한 왕조이지만, 그 배후에는 이성계 보다 능력이 뛰어난 ‘조선 건국의 지휘자’ 정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이성계도 조선의 건국에 있어 자신의 역량보다는 정도전의 역량이 더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후 술이 거나하게 취할 때마다, 삼봉이 아니면 내가 어찌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정도전의 공을 치하했으며, 정도전 역시 술이 취하면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 고조 유방과 참모 장량의 관계에 비유하며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장량이 나라를 세운 것! 이라 했다 한다. 정도전을 비하한『태조실록』도 개국 초기 그의 업적에 대해서만큼은 그의 힘으로 도울 수 있는 데까지는 힘쓰지 않은 것이 없어서 결국 대업을 이루게 된 만큼, 정말 으뜸가는 공신이었다. 는 평을 남기고 있다. - 조유식,『정도전을 위한 변명』, 1997, pp.32~33
즉 조선의 건국은 정도전의 사상(文)과 이성계의 힘(武)이 만나서 이루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의 건국에 있어서 정도전의 사상은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의 사상적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민본사상’ 이었다. 이는 곧,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므로 백성을 사랑하고 위하고 보고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통치자에게 요청되는 도덕규범인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통치자가 이와 같은 민본의 도덕규범을 저버리고 이에 위배되는 악정을 베푼다면 이를 구제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정도전은 혁명사상을 내놓았다. 혁명사상에 의하면 통치권은 천명(天命)=천공(天工)=천리(天理)에 의하여 부여되고 합리화되는 것으로서 천명이 떠나면 통치권은 소멸되고 다른 유덕(有德)한 자에게 천명이 옮아가서 그가 새로운 통치자로서의 통치권을 부여받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천명(天命)이 부덕(不德)한 통치자로부터 유덕(有德)한 통치자에게 바뀌는 것이 곧 혁명(革命)이요, 수명자(受命者)가 타성(他姓)일 때 이를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고 한다. 따라서 조선건국에 있어서 이성계는 뛰어난 용맹과 전쟁수행 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했고, 동기에 덕치(德治)를 펼칠 수 있는 성군(聖君)으로 묘사되어야 했다. 바로 그 순간, 이성계라는 인물은 조선건국의 영웅으로 바뀐다. 정도전은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조선은 이미 성인을 가지게 되었고, 그 순간 혁명가 정도전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어쩌면 비극적인 죽음까지도 그가 해내야 할 역할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조선의 건국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조선을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민본사상은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었다. 그렇기에 정도전은 민본정치를 위하여 통치자의 권한 약화와 통치자가 민(民)과 자신을 동일화시키기 위하여 경연의 필요성도 역설하였다. 그래서 재상(宰相)이 주도하는 관료 정치를 통하여 최대한 합리적으로 제도화된 정치를 희망하였다. 그러면서 정도전이 더욱 비중을 둔 것은 부당한 군주를 반정이나 역성혁명을 통해 축출하여 민본 정치 정신에 따라 정치를 크게 바로 잡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도전의 정치이론들은 현실적론 이상적 실현에 한계가 있다. 정도전은 군주와 관료를 민(民)의 대리인으로 정의하지만, 현실에선 군주와 관료는 정치의 실질적인 주체이며 민(民)은 단지 군주와 관료가 정해놓은 빚 좋은 개살구 격인 명목상 주체일 뿐이다. 민(民)이 정치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는 정도전의 주장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주의적 이론일 듯하다.
그러나 그는 고려말기 사회의 폐단을 몸소 겪었고,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쳐 새로운 사상과 사회를 낳을 씨앗을 잉태하였다. 새로운 사상과 사회를 낳을 씨앗은 바로 민중의 에너지를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갈 희망을 발견하는 데서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암담한 시대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현실에서 구하려고 한다면, 희망은 반드시 찾을 수 있기 마련이다. 바로 정도전은 그 희망을 찾아 자신이 꿈 꾼 세상을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일구어 낸 것이었다.
6.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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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1.07
  • 저작시기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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