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직과 한국성결교회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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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명직과 한국성결교회를 읽고 나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본문내용

을 해보게 되었다. 이명직 목사도 그 모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모임이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들어 전도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는 것처럼 이것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외적으로만 보이는 모습을 보면 이명직 목사가 친일파로 오해할만한 요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제의 정책에 동역하도록 이명직 목사를 자꾸 직책에 올림으로 일본의 정책에 따라가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일제는 조선기독교연합회를 만든 다음에 기독교 언론을 통제할 목적으로 「기독신문」을 만들었는데, 이사 자리에 이명직 목사를 세웠고, 창시계명을 실시한 일본은 이명직 목사의 이름을 목야명직으로 바꾸어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그 이름으로 사용하게 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로 인해서 이명직 목사는 한국교계의 중심인물로서 계속 활동하게 되었다. 일제말의 이 시기를 통하여 또한 성결교회는 한국의 3대교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명직 목사의 이러한 모습은 한편으로는 일본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있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이를 통해 성결교회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으로 인해 성결교회도 자치화가 된 것이다. 자치와 자립은 1920년대부터 성결교회의 꿈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당시 상황이 미국과 일본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한국에 주재하는 선교사들은 적국의 스파이로 간주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교회에 미국 선교사와의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하였고, 미국정부도 이런 위험한 지역에 있는 선교사들을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이 문제에 있어서 이명직 목사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능동적으로 이 문제에 있어서 대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선교사들이 떠나도록 하기보다는 확실한 명분을 세워서 성결교회가 자치와 자립을 준비하게끔 한 것이다. 본서에서의 표현은 “이왕에 받을 잔이라면 이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명직 목사는 이것을 기회로 교단발전과 신앙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선교부가 교역자의 생활을 책임져 주면, 교인들은 교역자에 대해서 관심이 적어지게 되지만, 교회가 교역자의 자급을 책임지면 교인들이 교역자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게 되므로 오히려 전자급의 실시가 교회와 교역자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개혁인 것이다. 왠만한 믿음이 없이는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히 인간이라는 것이 물질에 의해서 많이 좌우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흔들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 안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매우 쉽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직 목사는 그런 결단을 한 것이다. 이렇게 도전적인 모습으로 인해서 성결교회가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안정만 추구하지 않고 더욱더 도전적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이명직 목사의 모습을 통해서 젊은 나의 지금 모습을 또한번 돌아보았다. 사역을 하면서 너무 바쁘고 쉴틈이 없다는 것과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해서 잠시 과거를 생각하면서 그 때에는 참 편했었는데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았다. 옛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에 비하면 하나도 바쁘지 않고 피곤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나약해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젊은 나이에 도전적이지도 않고 안정만 추구하려고 했던 내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해서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이 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에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있듯이, 지금부터 열심히 뛰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이 되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각인 시킨 것이 바로 이명직 목사의 도전적인 모습을 본 후이다.
이명직 목사는 일제말에 일본으로 인해서 한국교회의 대표로서 자주 자리를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친일파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일제말에 이명직 목사의 상황을 보면서 다니엘이 생각이 났다. 다니엘도 바벨론에 있으면서 이름도 벨드사살로 바꾸고 나중에 바벨론에서 높은 위치에 까지도 올랐는데 이것을 보면서 친바벨론화라고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상황과 너무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고 본다.
내가 직접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았고, 일제 말에 이명직 목사의 상황과 동향을 정확하게 모르고 단순히 이 책만을 통하여서 이렇게 판단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서 본 이명직 목사의 모습은 난 그렇게 보인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 시기를 통해서 성결교회는 대표적인 교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성결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직 목사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서 성장한 것이지만, 그 주축에 있었던 이명직 목사가 친일파 명단에 오른 것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결론
본서를 통해서 알지 못했던 이명직 목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성결교회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성결교회가 이렇게 성장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아주 간단히 알았었는데,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고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좀 더 깊게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본서에 집중해서 내가 본 부분은 이명직 목사의 성장과 사역에 관한 부분과 일제 말 시기에 대한 부분이다. 물론 다른 부분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감동을 받고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지만, 내가 하는 것이 사역이고 나도 앞으로 목회자가 될 것이기에 그리고 이명직 목사의 친일파에 대한 부분을 그 전부터 궁금해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더 집중해서 보게 되고 그 부분에서 더 많은 통찰력을 얻은 것 같다.
성결교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이명직 목사. 나는 이 분의 삶과 사역을 보면서 신앙의 순수성과 그 순수한 열정을 보았다. 괜히 성결교회의 대표자라고 하는 부분이 아니구나.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에게는 다른 모습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앞으로 나도 사역을 계속해서 할 입장으로서,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서 순수한 신앙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가격2,5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01.13
  • 저작시기201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4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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