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교회 형성사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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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구한말 한미관계와 선교사들의 한국교회 비민족화사
2장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이념과 운동의 변천
3장 한국교회의 종파의 계보
4장 적극신앙단과 그배경
5장 한국교회와 민족산업
6장 맺 는 말

본문내용

이 되었다.
1930년대 이후부터 신신학의 모색, 1960년 부터 교회밖에 대한 선교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표현되었다. 산업선교의 성질을 띈 기관이 조직된 것은 1956년 카톨릭 교회에서 청년노동자 협회를 결성한 것이 최초이다. 1966년 한국도시 산업 선교협회를 조직하였다.
기독교 사업인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외자나 차관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내자에만 기대었다. 둘째, 기업에 있어서 정신적 가치나 그 위치를 강조하고 있었다. 셋째, 기업의 공공성과 사회성에 대해서 이들은 한결같은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넷째, 대개 보수적 신앙의 영향 아래서 그 신앙 유형이 잡혀진 이들이다.
6장 맺 는 말
교회가 미국 선교사, 일본에 의해 비민족화되는 과정을 걸으면서도 민족교회의 형성을 향해 여러 갈래에서 모색과 구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선교사들은 정연주의적 영의 구원과 안주의 선교에도 불구하고 비세적인 생활이 산업에서 까지도 교회의 민족사적 사명의 소재에도 충실했다. 한국에서의 이단 정통의 개념 확정의 표준도 고전적 일률성에서 보다는 민족적 구원의 대업 성취의 범위와 그 의식의 성실한 구현도에서 따로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겨례의 운명에서 눈을 돌린 정통이 참일 수 없고 선교사의 보호 아래 항상 종순한 태도가 치리의 정당성을 당장 세워주지는 않는다. 영적인 순결의 교회가 보편성에 강조를 둔다해도 한국에서 토착화 하면 그것 역시 민족교회가 될 수 있다. 여러 실천 과정에서 절망의 나라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든가 정치체제는 어떠한 형태든지 거기있는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자포자기적인 윤리관이 성실과 참여 그리고 동역의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독교인의 약화를 꾀한 까닭에 그 정책이 비판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현실을 떠나 살 수 없다. 교회 초창기 부터 신앙의 영적 차원에만 강조해 온 선교사들과는 달리 한국교회는 그 영적 신앙의 일변도가 민족의 삶, 그 역사적 소명에 대한 소홀로 까지 인도해서 국력을 설약하게 하는 것은 물론 민족으로서의 생존의 위협까지 수반한다고 보고 산업과 민부의 증진에 정진했던 것이다.
C. 글을 끝마치면서...
역사를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역사를 읽는 다는 것은 인간의 과거를 음미한다는 것일 것이고 그것은 세상을 바로 본다는 것일 것이다. 이때 세상을 바로 본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총체적'으로 읽는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이어져 있는 세상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고 토론하며 보다 낫게 하는 식으로, 비판적이고 실천적으로 읽는다는 말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주관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기도 하겠다. 여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만 주관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역사를 자신의 삶 속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서 역사를 소개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이라 해서 그것이 객관을 무시한, 그것에 근거하지 않는 주관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관적으로 해석을 한다해서 아무런 다른것과 관계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고립된 해석 또한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한다.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은 우리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그러한 마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단지 역사만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회 현상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해석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객관적인 것을 요구하는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나 억압적이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역사는 해석된 역사이다.
국경없는 경제(BORDERLESS ECONOMY)시대에 민족이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만 세계 보편에 대해서 하나의 특수로서 민족의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민족교회라고 하는 것 또한 그런 선상에서 이해 되어야 할 것 같다. 민경배 교수가 머릿말에서 말했듯이 그것이(민족) 다만 선교, 교회의 구속적 기능 수행의 지역적 책임 범위의 실재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세계 교회에 대한 공헌의 적극성을 다짐하는 과정이라면' 그럴 수 있다.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적 독존, 아니면 그 사명의 중심성과 선민성을 의심할 것이 없다면 그의 복음의 전파의 관점을 민족의 관점에서 본다면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민족의 독특한 독자적인 입장에서, 다소 무리가 있지만 토착화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민 경배 교수의 글에서 보면 선교사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역자로 보기 보다 민족교회와 이질적으로 대치되는 것을 부각시킬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
겨례의 운명에서 눈을 돌린 정통이 참일 수 없고 선교사의 보호 아래 항상 종순한 태도가 치리의 정당성을 당장 세워주지는 않는다. 영적인 순결의 교회가 보편성에 강조를 둔다해도 한국에서 토착화 하면 그것 역시 민족교회가 될 수 있다.'
이 표현에서 본다면 민 교수는 다분히 모든 관점의 중심을 이 민족에 두고 있다. 선교의 보편성 또한 이 민족의 특수성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세계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세계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제가 된 다음의 일일 것이다. 이 전제가 된 다음 인간이 처해져 있는 특수한 민족적 내지 지역적 상황 속에서 고백되어지는 하나님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초대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없다. 다른것은몰라도 본인이 너무나 편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반성이 앞선다.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서 그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지켰던 선조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이땅에 그리스도가 어떻게 전파 되었는데 그리고 이땅에 세워진 주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데 나의 모습이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반성이 앞선다.
가을이 가기전에 이땅에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러온 주님의 선교사들의 넋이 묻혀있는 양화진을 다녀와야 겠다. 그들의 피 없이 우리 또한 없기에 겸허한 마음으로 찾아 뵙고자 한다.
우리는 어차피 초대 교회 선조들의 피를 먹고 자란 나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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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2.10.04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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