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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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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종교교육

Ⅱ. 종교의학

Ⅲ. 종교신학

Ⅳ. 종교개혁

Ⅴ. 종교전쟁

Ⅵ. 종교미술

Ⅶ. 종교그림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학은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문헌기록을 자료로 하기 때문에 문자를 갖지 않는 미개민족의 종교는 사학적으로는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의 실제의 역사는 문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사학적으로는 취급할 수 없는 종교사의 장면을 종교민속학이 미개민족의 종교를 자료로서 취급하려고 하는 것이다.
Ⅶ. 종교그림
장소는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때는 1914년 8월2일. 흥분한 사람들이 성상(聖像)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황제의 궁전에 운집해 있다. 커다란 홀 중앙에 제단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는 아이를 안은 여인의 초상이 서 있다. 이 성상은 “블라디미르의 성모”라고 불린다. 군중은 그것을 러시아에서 가장 거룩한 국보로 여긴다.
실은, 이 성상이 기적을 행한다고들 믿는다. 1812년, 러시아 군대가 나폴레옹을 대항하여 진군할 때는 쿠투조프 장군이 그 성상 앞에서 기도하였다. 이번에는 니콜라이 2세가 국민을 전장에 투입한 후 그 성상 앞에 서 잇다. 그는 오른손을 들고 이렇게 맹세한다. “적군이 단 한 사람도 러시아 땅에 남지 못하게 하여 진정 평화를 이룩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2주 후에 황제는 모스카바를 순례하면서 하느님께서 자국 군대를 축복해 주시기를 구한다. 그는 몸소 승천 성당에서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성상 병풍 - 예수, 마리아, 천사, “성인”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칸막이-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이러한 종교적 행위는 재난을 막지 못했다. 4년도 채 못 되어 러시아 군대는 사상자가 6백만 명이 넘었으며 많은 영토를 잃게 되었다. 더욱이, 황제와 황후 그리고 다섯 자녀도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여러 세기 동안 지속된 군주제가 무너지고, 종교를 반대하는 혁명 정부가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니콜라이 황제가 성상을 의지한 것은 결국 헛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러시아와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성상을 경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그림 앞에서 정성을 나타내는 행위를 어떻게 보시는가? 그리고 종교 그림을 집안의 벽에 걸어 놓는 관습은 어떠한가?
그렇다고 해서 성서 장면을 담고 있는 그림을 단지 소장하는 것이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경우 성서 사건에 관한 그림을 교육용 보조물로 잘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서 사건 장면들을 주택이나 건물의 벽을 장식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참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림을 전시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또는 성서의 가르침을 잘못 전달하는 그림을 벽에 걸지도 않을 것이다. - 로마 14:13.
일반 그리스도교의 성상에는 대부분 예수, 마리아, 천사, “성인”의 머리에 원형의 빛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을 후광(後光)이라고 한다. 후광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후광의 기원은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이교도인 미술가와 조각가들이 여러 신들의 큰 위엄과 능력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가톨릭 백과사전」(The Catholic Encyclopedia, 1987년판)은 시인한다. 더욱이, 밤버 개스코인 저 「그리스도인」(The Christians)이란 책에는 로마의 카피톨리누스 박물관에서 입수한, 후광이 있는 태양신 사진이 실려 있다. 이교도인 로마인들은 이 태양신을 숭배하였다. 후일에 “태양의 후광”을 “그리스도교가 차용”한 것이라고 개스코인은 설명한다. 그렇다. 후광은 이교도의 태양 숭배와 관련이 있다.
성서 사건과 이교 우상 숭배의 상징을 결합시킨 그림을 그리스도인 가정의 벽에 걸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성서는 이렇게 교훈한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그러므로 주[“여호와”, 신세]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 - 고린도 후 6:16,17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교훈을 무시하기 시작하였다. 예수와 사도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배교가 나타났다.(마태 24:24; 사도 20:29,30; 베드로 후 2:1) 기원 4세기 초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러자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교도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일반 관습 한 가지는 황제 형상에 대한 숭배였다. 또한 그들은 자기 조상이나 그 밖의 유명한 사람들의 그림을 걸어 놓곤 하였다. 존 테일러는 저서 「성상 그림」(Icon painting)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황제 숭배의 일환으로 화포(畵布)나 목판에 그려진 황제의 초상을 숭배하였는데, 황제 숭배와 성상 경배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와 같이, 이교도의 그림 숭배가 예수, 마리아, 천사, “성인”에 대한 그림 경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어떤 불자의 말을 들어보면, 흔히들 형상 앞에서 절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이렇다.
“우리가 ‘저 달을 바라봐’ 하고 얘기하면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고 달 있는 곳을 쳐다본다. 따라서 형상은 마치 손가락처럼 단지 우리를 절대자 앞으로 인도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견해는 과연 옳은 것인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내용인 형상 앞에서 “절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하는가? 또한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한 말씀과는 어떠한가?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하느님께 절하기 전에 먼저 형상 앞에서 절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분명히 하느님께 영예가 돌아가기 전에 우선은 형상에게 그것이 돌아가게 된다. - 출애굽 20:4,5; 이사야 42:8
참고문헌
김종서, 종교교육 실태분석―종교교육의 이론적 체계화, 철학 종교사상의 제 문제(VI),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교육부, 미술과 교육과정, 1997
교회와 신학연구소편, 교역과 영성, 한신대학출판부, 1991
이원규, 종교사회학의 이해, 사회비평사, 1995
양금희, 종교개혁과 교육사상,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한국종교교육학회(편), 한국의 종교와 인격교육, 도서출판 아름다운세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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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1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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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6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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