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공자의 생애
Ⅲ. 공자의 인간상
Ⅳ.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배경
Ⅴ.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근본
Ⅵ.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내용
1. 인(仁)
2. 덕(德)
1) 수기(修己)로서의 덕
2) 도리(道理)로서의 덕
3) 대승(大乘)으로서의 덕
4) 중화(中和)로서의 덕
3. 효(孝)
1) 친친(親親)
2) 경장(敬長)
3) 보본(報本)
4) 반시(反始)
4. 예(禮)
Ⅶ.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모델
참고문헌
Ⅱ. 공자의 생애
Ⅲ. 공자의 인간상
Ⅳ.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배경
Ⅴ.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근본
Ⅵ.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내용
1. 인(仁)
2. 덕(德)
1) 수기(修己)로서의 덕
2) 도리(道理)로서의 덕
3) 대승(大乘)으로서의 덕
4) 중화(中和)로서의 덕
3. 효(孝)
1) 친친(親親)
2) 경장(敬長)
3) 보본(報本)
4) 반시(反始)
4. 예(禮)
Ⅶ.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모델
참고문헌
본문내용
화(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는 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덕(德)치(治)성(性)까지 나누어 보아야 그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예는 조화된 상태-사리에 맞는 합리적 상태로서의 화(和)의 상태와, 평화적 대화를 가장 중시하는 상태- 비폭력적 수단에 언제나 의존하는 문화주의적 상태로서의 덕(德)의 상태와, 지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상태- 행위의 예측이 가능한 상태로서의 신(信)의 상태와 질서를 유지하는 상태- 정통성(正統性)을 반드시 가지는 상태로서의 치(治)의 상태와, 자연적인 성정(性情)을 중시하는 상태- 본성에 충실한 상태, 그리고 계약적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적 인간 상태로서의 성(性)의 상태까지 모두 종합해 보아야만 예(禮)의 의미에 보다 체계적으로 보다 조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예(禮)의 궁극적 지향은 인(仁)이고, 인으로의 이념적 지향은 인간주의, 합리주의, 실천주의이며 이 이념적 지향들을 구성해 주는 요소는 지금까지 주로 인간회복에 치중해서 설명해온 화(和)이외에 덕(德)치(治)성(性)을 들 수 있다. 예의 덕(德)치(治)성(性)의 측면은 따라서 예(禮) 연구의 또 하나의 주요한 과제가 된다 하겠다.
Ⅶ.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모델
論語를 보면 공자가 春秋時代 이전의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구절이 있다. 여기서 공자가 聖君으로 생각했던 인물들은 堯, 舜, 文王, 武王, 周公, 子産이다. 이중에서 특히 자주 보이는 堯, 舜과 周公 그리고 子産의 정치사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공자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제왕인 요, 순은 개인적으로는 고매한 인격을 갖춘 인물로, 정치에 있어서는 흉포한 자들을 물리쳐 그 횡포를 근절시키고 현량(賢良)한 인재를 등용하여 그들의 능력을 國利民福의 증진을 위해 발휘하도록 하였고, 각 지방의 대표자들을 국정에 참여시켜 그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시켰다. 또한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켜 안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정치의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국민들에게 孝悌忠信의 倫理道德을 가르쳐 사회의 협조 체제를 조성해 나가도록 힘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요, 순의 정치 방법이나 정치 이념은 결국 공자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사상의 이상이 되었던 것이다.
論語 속에는 군데군데 堯舜에 관한 언급이 있다.
자공이 말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어질기만 하겠느냐? 성인의 덕이라고도 할 수 있느니라. 요임금이나 순임금도 그렇게 하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 대저 어질다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가 서려면 동시에 다른 사람도 서게 할 수 있으며, 자기가 통달하려고 하면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일도 통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눈앞의 사실을 예로 택하여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어야 어짊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느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위대하도다, 堯의 임금 됨이여! 오직 하늘이 제일 크거늘 오직 堯임금께서 그것을 본받으시니 (堯의 德은)넓고 넓어서 백성들이 능히 이름 붙일 수가 없도다. 넓고 크도다, 그 공덕을 이루심이여! 빛나도다, 그가 성취한 문물 제도여!
…자기 修養을 해서 백성을 편안히 해주는 것은 堯舜도 오히려 걱정으로 여기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몸소 하는 일없이 천하를 다스린 사람은 舜임금이었을 게다. 그 무엇을 하였겠는가. 자기를 공손히 하고 南面하고 계셨을 따름이니라.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자는 요순의 정치를 어떤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요순의 모습이 공자의 사상에는 어떻게 투영되었을까? 堯舜의 통치 원리는 修己治人에 입각한 德治主義를 표방한 것이며, 사해동포주의적 보편성을 나타내는 세계관과 인간 존중의 민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공자 사상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 사상에 나타나는 인본주의는 堯舜의 통치 원리에서 그 근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인물은 周公이다. 論語에서 공자는 주공을 이상적인 정치가로 생각한다. 주공은 周初에 文王, 武王, 成王을 보좌한 인물로서 文王의 셋째 아들이자 武王의 동생이며 成王의 숙부이다. 周公은 정치적으로 봉건제의 틀을 마련한 인물이며 세역제도와 예악을 정비한 인물이다. 공자가 이상적인 국가 통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禮의 확립을 시킨 인물인 만큼 周公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도 남다르다. 이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예가 다음 구절이다.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한지 너무 오래되었구나.
이러한 공자의 말은 주공의 인격, 정치사상에 대한 흠모에서 나온 것으로 주공의 사상이 공자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구절이다.
공자에게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인물로 동시대에 살았던 새로운 정치가인 子産을 들 수 있다. 子産은 공자보다 약간 앞선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약소 귀족 출신으로 뛰어난 능력과 학식을 바탕으로 재상의 위치에 올라 약소국인 鄭나라를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내고 鄭나라의 경제를 일으킨 인물이다. 子産의 치적 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成文法의 제정인데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였으며 많은 제후국들이 子産의 성문법을 본뜸으로써 새로운 통치 체제가 열리게 되었다. 공자는 이러한 자산을 君子로 평하고 있다.
공자께서 자산을 평하여 말씀하시기를 “그에게 군자의 도가 네 가지가 있으니, 그 몸가짐을 공손히 했고, 윗사람을 섬김에 공경히 했으며, 그 백성을 기르는 데 은혜로이 했으며, 그 백성을 부림이 의로웠다.”
자산은 당시의 시대로 보면 귀족이기는 하지만 문벌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의해 등용되었던 사람이고 뿐만 아니라 도덕성 또한 갖춘 인물이었다. 공자가 바라는 爲政者의 모습에 근접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공자, 김형찬(1999) : 논어, 홍익출판사
김태길 저 : 공자사상과 현대사회
김학주 : 공자의 생애와 사상, 명문당
최병철(1999) :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시아출판
채인후 지음, 천병돈 옮김(2000) : 공자의 철학, 예문서원
陳大齊 저, 안종수 역 : 공자의 학설
예는 조화된 상태-사리에 맞는 합리적 상태로서의 화(和)의 상태와, 평화적 대화를 가장 중시하는 상태- 비폭력적 수단에 언제나 의존하는 문화주의적 상태로서의 덕(德)의 상태와, 지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는 상태- 행위의 예측이 가능한 상태로서의 신(信)의 상태와 질서를 유지하는 상태- 정통성(正統性)을 반드시 가지는 상태로서의 치(治)의 상태와, 자연적인 성정(性情)을 중시하는 상태- 본성에 충실한 상태, 그리고 계약적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적 인간 상태로서의 성(性)의 상태까지 모두 종합해 보아야만 예(禮)의 의미에 보다 체계적으로 보다 조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예(禮)의 궁극적 지향은 인(仁)이고, 인으로의 이념적 지향은 인간주의, 합리주의, 실천주의이며 이 이념적 지향들을 구성해 주는 요소는 지금까지 주로 인간회복에 치중해서 설명해온 화(和)이외에 덕(德)치(治)성(性)을 들 수 있다. 예의 덕(德)치(治)성(性)의 측면은 따라서 예(禮) 연구의 또 하나의 주요한 과제가 된다 하겠다.
Ⅶ. 공자사상(공자의 사상)의 모델
論語를 보면 공자가 春秋時代 이전의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구절이 있다. 여기서 공자가 聖君으로 생각했던 인물들은 堯, 舜, 文王, 武王, 周公, 子産이다. 이중에서 특히 자주 보이는 堯, 舜과 周公 그리고 子産의 정치사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공자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제왕인 요, 순은 개인적으로는 고매한 인격을 갖춘 인물로, 정치에 있어서는 흉포한 자들을 물리쳐 그 횡포를 근절시키고 현량(賢良)한 인재를 등용하여 그들의 능력을 國利民福의 증진을 위해 발휘하도록 하였고, 각 지방의 대표자들을 국정에 참여시켜 그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시켰다. 또한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켜 안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정치의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국민들에게 孝悌忠信의 倫理道德을 가르쳐 사회의 협조 체제를 조성해 나가도록 힘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요, 순의 정치 방법이나 정치 이념은 결국 공자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사상의 이상이 되었던 것이다.
論語 속에는 군데군데 堯舜에 관한 언급이 있다.
자공이 말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어질기만 하겠느냐? 성인의 덕이라고도 할 수 있느니라. 요임금이나 순임금도 그렇게 하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 대저 어질다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가 서려면 동시에 다른 사람도 서게 할 수 있으며, 자기가 통달하려고 하면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일도 통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눈앞의 사실을 예로 택하여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어야 어짊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느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위대하도다, 堯의 임금 됨이여! 오직 하늘이 제일 크거늘 오직 堯임금께서 그것을 본받으시니 (堯의 德은)넓고 넓어서 백성들이 능히 이름 붙일 수가 없도다. 넓고 크도다, 그 공덕을 이루심이여! 빛나도다, 그가 성취한 문물 제도여!
…자기 修養을 해서 백성을 편안히 해주는 것은 堯舜도 오히려 걱정으로 여기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몸소 하는 일없이 천하를 다스린 사람은 舜임금이었을 게다. 그 무엇을 하였겠는가. 자기를 공손히 하고 南面하고 계셨을 따름이니라.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자는 요순의 정치를 어떤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요순의 모습이 공자의 사상에는 어떻게 투영되었을까? 堯舜의 통치 원리는 修己治人에 입각한 德治主義를 표방한 것이며, 사해동포주의적 보편성을 나타내는 세계관과 인간 존중의 민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공자 사상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 사상에 나타나는 인본주의는 堯舜의 통치 원리에서 그 근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인물은 周公이다. 論語에서 공자는 주공을 이상적인 정치가로 생각한다. 주공은 周初에 文王, 武王, 成王을 보좌한 인물로서 文王의 셋째 아들이자 武王의 동생이며 成王의 숙부이다. 周公은 정치적으로 봉건제의 틀을 마련한 인물이며 세역제도와 예악을 정비한 인물이다. 공자가 이상적인 국가 통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禮의 확립을 시킨 인물인 만큼 周公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도 남다르다. 이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예가 다음 구절이다.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주공을 꿈에서 다시 뵙지 못한지 너무 오래되었구나.
이러한 공자의 말은 주공의 인격, 정치사상에 대한 흠모에서 나온 것으로 주공의 사상이 공자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구절이다.
공자에게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인물로 동시대에 살았던 새로운 정치가인 子産을 들 수 있다. 子産은 공자보다 약간 앞선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약소 귀족 출신으로 뛰어난 능력과 학식을 바탕으로 재상의 위치에 올라 약소국인 鄭나라를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내고 鄭나라의 경제를 일으킨 인물이다. 子産의 치적 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成文法의 제정인데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였으며 많은 제후국들이 子産의 성문법을 본뜸으로써 새로운 통치 체제가 열리게 되었다. 공자는 이러한 자산을 君子로 평하고 있다.
공자께서 자산을 평하여 말씀하시기를 “그에게 군자의 도가 네 가지가 있으니, 그 몸가짐을 공손히 했고, 윗사람을 섬김에 공경히 했으며, 그 백성을 기르는 데 은혜로이 했으며, 그 백성을 부림이 의로웠다.”
자산은 당시의 시대로 보면 귀족이기는 하지만 문벌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의해 등용되었던 사람이고 뿐만 아니라 도덕성 또한 갖춘 인물이었다. 공자가 바라는 爲政者의 모습에 근접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공자, 김형찬(1999) : 논어, 홍익출판사
김태길 저 : 공자사상과 현대사회
김학주 : 공자의 생애와 사상, 명문당
최병철(1999) :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시아출판
채인후 지음, 천병돈 옮김(2000) : 공자의 철학, 예문서원
陳大齊 저, 안종수 역 : 공자의 학설
추천자료
- 동양철학 - 중국철학 (상고시대, 선진유학, 도가사상, 제자철학, 성리학)
- 공자와의 토론
- 공자와 여성
- 공자와의 대화
- 공자님과의 대화
- 중국종교와 사상
- 유가사상에 대한 조사자료
- 공맹 사상과 한국 성리학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읽고…
- [인생관][공자][노자][로크][브라암스][브람스][고구려인][금오신화]공자의 인생관, 노자의 ...
- [자연관][서양 자연관][동양 자연관][공자 자연관][장자 자연관][노자 자연관][홍범][이규보]...
- [학문관][정산종사 학문관][남명 조식 학문관][고정옥 학문관][신숙주 학문관][공자 학문관][...
- [군자, 군자와 군자론, 군자와 교육적 인간상, 군자와 인(仁), 군자와 공자, 군자론, 교육적 ...
- 현대 중국사회와 공자(孔子)의 의미 -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과 공자 동상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