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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리학(주자학)의 정의, 성리학(주자학)의 인간관, 성리학(주자학) 교육사상, 성리학(주자학) 심성설, 성리학(주자학) 전개, 성리학(주자학) 인물성동이론, 성리학(주자학)과 이기철학, 성리학(주자학) 관련 제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성리학(주자학)의 정의

Ⅲ. 성리학(주자학)의 인간관

Ⅳ. 성리학(주자학)의 교육사상

Ⅴ. 성리학(주자학)의 심성설

Ⅵ. 성리학(주자학)의 전개

Ⅶ. 성리학(주자학)의 인물성동이론

Ⅷ. 성리학(주자학)과 이기철학

Ⅸ.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栗谷 李珥(1536-1584)이다. 율곡은 퇴계의 학문하는 태도를 존숭하기는 하였지만 퇴계의 학설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율곡은 퇴계의 성리설이 주자에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고 또 퇴계의 주자해석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진단한 후 명의 羅整庵과 화담의 성리설이 지닌 독창성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그의 성리설 전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율곡의 성리학이 주자학에 근본하고 있고 또 화담의 선천일기설이나 정암의 이기일물설을 비판하고 이의 기에 대한 선차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퇴계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퇴계의 성리학과 미묘하고도 중대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율곡이 화담과 정암의 영향을 일부 받은 결과일 것이다. 아마 율곡은 나름대로 화담퇴계고봉 등의 조선성리학의 성과와 나정암 등 당시 중국성리학의 새로운 경향을 절충하여 집대성하려 한 게 아닌가 한다. 율곡의 성리설은 퇴계의 입장을 옹호하는 그의 지우 우계 성혼과의 왕복 서간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서 율곡은 정암의 성리설이 이기를 하나로 보는 병통이 있고 화담의 선천일기설은 기를 이로 본 잘못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성리설을 전개하였다. 율곡은 “理란 氣의 主宰요 기는 이의 타는 것이니 이가 아니면 기가 근저할 수 없고 기가 아니면 이가 의착할 수 없는 것이다. 一物이 아닌 까닭에 一而二요 二物이 아닌 까닭에 二而一이다”라고 하여 理氣不相雜의 측면보다 不相離의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율곡에 있어서의 이는 곧 태극으로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지만 철저히 형이상, 무위, 무변으로 규정되고 있어 理發이란 있을 수 없고 형이하, 유위, 유변으로 규정된 기가 운동하는 所以로서만 성립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율곡의 성리설에서는 이 즉 태극의 운동이란 있을 수 없고 “음이 정하고 양이 동하는 것이 기가 스스로 그러한 것일 뿐이다”라는 화담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관계를 율곡은 불교의 영향이 느껴지는 ‘理通氣局’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理는 사물의 보편성을 가능하게 하는 관념적 존재 혹은 원리이고 기는 구체적 사물로 드러나는 질료적 존재로 규정짓는다. 이동을 부정하고 이통기국을 내세우는 율곡의 이기설은 심성론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율곡은 “천지간에 만일 氣化者 理化者가 있다면 내 마음에도 마땅히 理發者氣發者가 있겠지만 천지에 이미 이화, 기화의 구분이 없거늘 내 마음에 어찌 이발 기발의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말하여 퇴계의 호발설이 지닌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고 고봉의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견해에 대해 “논리가 분명 直截하여 대를 쪼개는 것 같다”고 찬사를 보내며 전적인 동감을 표시한다. 율곡은 본연지성, 사단, 도심과 기질지성, 칠정, 인심을 각기 이기에 분속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둘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므로 옳지 않다고 보고 그의 이기론에 따라 본연지성과 사단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본연지성은 기질지성 가운데 理만을 지칭하는 개념일 뿐이고 사단은 칠정 가운데 순수히 선한 감정만을 지칭하는 것이라 하여 본연지성은 기절지성에 포함시키고 칠정은 사단에 포함시켜 버린다. 이렇게 본연지성과 사단의 독자성이 부정됨으로써 심성론에서 理發氣隨는 인정되지 않고 氣發理乘一途만 인정되며 여기서 비로소 心性情意一路가 설명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율곡의 이기설과 심성론은 퇴계의 성리설을 논리적으로 보완한 것으로 이후 율곡학파의 학자들에게 전승되어 퇴계의 성리학과 더불어 조선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된다.
Ⅸ. 결론 및 제언
성리학은 중국에서 북송대에 일군의 학자들이 유교에 바탕하여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탐구하는 과정에 형성-발전하게 되었다. 주렴계, 소강절,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 등은 절충과 종합의 방식으로 기존의 유교에 도교, 불교적 요소를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학문체계로 성리학을 구성-발전시켰다. 이러한 성리학은 기존의 중국문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성격들을 유교를 중심으로 재통합함으로써 정치적 통일, 문화적 결속, 사회적 안정을 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성리학은 남송대에 주자에 의해 집대성되는 것을 계기로 유가의 학문에서 천하의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어 원대에 관학으로 채용됨으로써 학문적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었고, 명대 초에 관학의 교과서로서 사서오경대전과 성리대전서가 간행-반포됨에 따라 더욱 확고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고, 이러한 것은 청조가 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와 함께 성리학은 원대 말에 고려로 전파되어 조선의 개국과 함께 국시로 자리하기 되었고, 동아시아사회에서 성리학적 유교문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유교문화를 낳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의 성리학이 일본으로 전해져 성리학에 대한 연구와 실천을 촉발하게 되어 덕천막부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문화변동의 전체적 관점에서 성리학적 유교문화와 근대화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이해가 기초될 때, 문화의 각 부분에서 성리학적 유교문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근대화를 촉진하거나 저해하는지 따지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것을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성리학적 유교문화가 바탕하고 있는 인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인간관을 통상적으로 \'유교적 인본주의\'로 불러 왔으나 아직도 정확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가능하다면 동아시아문화가 어떠한 인간관에 바탕하여 근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그것의 과정과 결과로서 그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 금종진, 여말 사대부의 성리학수용과 문학의 양상, 고대석사학위 논문, 1981
◈ 신천식, 고려후기 성리학의 수용과 교육사상, 명지대학교 출판부, 1998
◈ 이남영, 쟁점으로 본 한국 성리학의 深層, 한국사상의 深層 연구, 우석, 1986
◈ 이원명, 고려시대 성리학 수용 연구, 국학자료원, 1997
◈ 정인재, 원대의 성리학, 동양문화19, 1979
◈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의 성리학과 농민, 한국사강의, 한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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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2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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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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