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윤리][전통윤리][사회윤리][공존윤리][생명윤리]유교윤리의 정의, 유교윤리의 기능, 유교윤리의 본질, 유교윤리의 구조, 유교윤리와 전통윤리, 유교윤리와 사회윤리, 유교윤리와 공존윤리, 유교윤리와 생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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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윤리][전통윤리][사회윤리][공존윤리][생명윤리]유교윤리의 정의, 유교윤리의 기능, 유교윤리의 본질, 유교윤리의 구조, 유교윤리와 전통윤리, 유교윤리와 사회윤리, 유교윤리와 공존윤리, 유교윤리와 생명윤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유교윤리의 정의

Ⅱ. 유교윤리의 기능
1. 유교 윤리에 있어서의 개인의 위치 : 개인의 평등과 자유
2. 개인과 공동체

Ⅲ. 유교윤리의 본질

Ⅳ. 유교윤리의 구조
1. 도덕성의 내적 기준으로서의 仁
2. 행위의 기준 및 절제의 원리로서의 義
3. 도덕성의 외적 기준으로서의 禮
4. 도덕적 판단의 덕으로서의 智
5. 仁의 윤리

Ⅴ. 유교윤리와 전통윤리

Ⅵ. 유교윤리와 사회윤리

Ⅶ. 유교윤리와 공존윤리

Ⅷ. 유교윤리와 생명윤리

참고문헌

본문내용

자신으로 확립한다. 따라서 개인주의의 고립화가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주체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개인주의가 한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예속을 벗어나는 자유를 제공해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기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고 인간의 개체적 고립에 폐쇄될 위험도 있다. 자신의 주체성을 유지하는 유교적 지조(지조; 직)의 규범은 자유와 준법정신을 존중하는 시민정신으로서 민주주의를 건전하게 지키는데도 매우 유용하게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과 인간사이의 결합원리인 ‘서’와 ‘신’의 규범은 인종과 국가에 의해 분리된 오늘의 세계에서 인간관계의 윤리로 기능할 수 있으며, 내가 남과 더불어 교류하는 ‘례’의 덕목은 한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확보하게 한다. 예를 통한 조화는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입장을 존중하는, 사양하는 마음에서 가능하다. 이러한 예의 덕목은 각자의 주장이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도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는 그 긴장상태가 상호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유교전통의 가족윤리로서 효제자의 규범들은 오늘의 불안정한 가정을 결속하는데 의미 있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또한 크고 작은 단위의 사회나 국가공동체 및 국제관계에서도 공과 균의 유교윤리는 서로의 긴장을 풀고 결속하는 기초적 힘으로 기여할 수 있다.
Ⅷ. 유교윤리와 생명윤리
우리는 요즘 도덕 불감증이라고 한다. 도덕을 알려면 우선 우리는 생명의 고귀함을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의 귀중함을 외면한 어떤 것도 진정한 의미의 자각이 될 수는 없다. 때로는 인간 세상에서, 귀중한 생명보다 더 귀한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도 생명 정신의 승화인 까닭에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정신적 가치나 의미는 설정되지 않는다.
불경중 잡아함경에 맹귀우목 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거북이가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 뭍에 올라오는 것처럼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이토록 사물이 시간과 공간을 같이한다는 것은 어려운데 하물며 이 어려움 속에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우며 다시 여기서 세상의 리치와 인생의 도리를 깨닫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 귀중한 생명이 그리 힘들게 왔는데도 유한해서 다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희귀성과 유한성을 조금 이라도 안다면 누구도 자기의 생명을 저주하거나 확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한번 태어났다가 한번 죽는 것이므로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한계속의 존재 일수 밖에 없다. 바로 인생의 고뇌는 이 생과 사를 의식하는 데서 싹튼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원효는 죽기 괴롭거니 낳지를 말고, 낳기 또한 어렵거니 죽지도 마오(막생혜기사야고, 막사혜기생야난) 라고 말했다. 이는 어쩌면 주어진 삶과 죽음의 유한을 뼈저리게 느낌으로써 더욱더 삶과 죽음의 사이, 즉 삶의 과정을 충실히 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짧은 삶의 과정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도덕이라는 것이 요청되고, 이 도덕의 원천은 아무래도 생사의 한계의식을 극복 한데서 도리어 더욱 강렬해진 삶의 의지에다가 두어야 한다. 즉 도덕은 어떤 경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실을 자각하고 미화하여 유한과 유한을 연결하여 무한으로 이끄는 현세 속의 일이다.
모든 생명체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본능은 생활, 생식, 생존 등의 욕구인데 이것들은 그 자체가 생명 존재의 원동이 되기도 하지만 긴장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인간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성공적으로 본능의 번식과 존속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본능적 충동을 이성적으로 잘 조절하고 도덕적 자각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인데, 이 근본적 자각은 바로 효와 충이었다. 효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라는 실재에서 접속시키는 공능이며, 그것은 또 모든 생명체가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으로서 지속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런 효의 근본 의미는 생명을 보전하는 원천적 감정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효를 후생의 전생에 대한 즉, 자식이 부모에 대한 보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효의 교육은 마음의 심층에서 우러나오는 생에 대한 경건, 내원에 대한 보은의 정을 계발하는데 힘쓸 것이며 외적인 형식에 집착하여 따르기만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효가 종적인 개념에 해당해서 유한을 무한으로 이끈다면 생명체의 공능에 따르는 불구를 보구하고 고독과 무력을 극복하는 슬기가 충이다. 충은 본래 자기의 성실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다른 존재에게 미루어 가는 이타적 의미로 서라고 한다. 결국 유가의 충서이론은 무슨 사변적이거나 심오한 것이 아니라 충이 자기 극복이고 서가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가에서의 도덕 문제는 이론이 문제가 아니라 실천이 문제였다.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바로 실천과 이론의 세계가 따로 떨어져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문자 이론을 통해 도덕 행위를 한다는 말인데 바로 행위를 하면 좋은데 문자 이론에 갇혀 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교육은 말로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도덕이 바로 행위 여야 하며 이를 습관화 시키고 더 나아가 사고방식과 일치 시켜야 한다. 종합해 보면, 효가 미래생을 향해 있는 것이라면 충은 나와 다른 생명체. 그러니 나와 공존하고 있는 타재에게 미루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어느 하나 결여됨이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 교육은 인간 본유의 충동을 강하게 느끼도록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참고문헌
고건호, 유교는 종교인가, 한국종교연구회,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 청년사, 1998
전성우, 막스 베버의 유교론-비판적 재구성, 남명학연구 16, 2003
정재식, 유교윤리와 사회변혁, 동방학지(동방학지), 연세대 국학연구원, 1982
정종복, 유교철학사상개설, 형설출판사, 1975
황준연, 조선시대 유교윤리의 전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인의 윤리관, 성남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Max Weber, 이상률 역, 유교와 도교, 문예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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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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