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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학파 경제학 토마스 멜서스의 일생, 고전학파 경제학 토마스 멜서스의 인구론과 경제사상, 토마스 멜서스의 유효노동수요, 고전학파 경제학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고전학파 경제학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고전학파 경제학 토마스 멜서스의 일생

Ⅱ. 고전학파 경제학 토마스 멜서스의 인구론

Ⅲ. 고전학파 경제학 토마스 멜서스의 경제사상

Ⅳ. 고전학파 경제학 토마스 멜서스의 유효노동수요

Ⅴ. 고전학파 경제학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Ⅵ. 고전학파 경제학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참고문헌

본문내용

존 스튜어트 밀(John Stewart Mill) 등에 의해 정교한 형태로 발전되어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으며, 채드윅(Edwin Chadwick)같은 개혁가들에 의해 구체적인 사회 개혁의 형태로 결실을 맺었다. 벤담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여를 강조했던 학자들은 파놉티콘을 한갓 이해하기 힘든 에피소드나 그의 진지한 사고를 방해했던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통념에 대한 비판이 역사학자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에 의해 제기되었다. 벤담은 말년에 “나는 파놉티콘에 대해 쓴 논문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싫다. 그것은 마치 ... 귀신들린 집에 발을 들여놓는 기분이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힘멜파브는 여기서 “귀신들린 집”(haunted house)이라는 구절에 주목해서 「제레미 벤담의 귀신들린 집」이라는 긴 논문을 출판했다. 그녀는 여기서 벤담이 30년 가까이 파놉티콘에 집착했고, 영국 정부와 이에 대한 계약을 체결해서 부자가 될 생각에 골몰했음을 흥미롭게 보여준 뒤에, 파놉티콘이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의 본질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함을 주장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경구로 잘 알려진 벤담의 철학의 근저에는, 사회 다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죄수를 “영원한 고독”의 상태로 24시간 감시하며, 이들에게 감자만 먹인 채로 강제 노동을 시키고 그 결과를 착취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파놉티콘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즉 벤담의 파놉티콘에서 볼 수 있는 개혁은 사회적인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동정에서 비롯되어 이들의 권리를 되찾게 해주는 개혁이 아니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억누르고 희생하는 식이었다는 것이 힘멜파브의 지적이었다. 그녀는 제임스 밀(James Mill)이나 존 스튜어트 밀도 파놉티콘을 지지했음을 보이면서, 결국 이 철학적 급진주의(Philosophical Radicalism)자들 또는 공리주의자들을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선조로 간주하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벤담의 민주주의와 파놉티콘 사이에 훨씬 더 흥미롭고 긍정적인 관련은 셈플에 의해 제시되었다. 국민이 정부를 감시하고 제어하는 목적으로 제안된 벤담의 대의민주주의의 철학적인 근거는 권력을 가진 통치자와 국민의 이해가 갈등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즉 통치자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더 키우기를 꾀하며, 이는 그가 국민의 행복과 복지만을 생각한다고 말할 때에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실이 이렇다면 통치자의 사욕을 막을 방법은 국민이 수시로 대표를 뽑아 의회를 구성해서 이를 견제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벤담의 결론이었다. 셈플은 벤담이 20년 가까이 파놉티콘을 생각하면서 이 원칙을 깨달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자신과 같은 파놉티콘의 계약자는(겉으로는) 파놉티콘을 짓는 것이 죄수와 사회 전체를 위해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실제 속으로는) 계약자인 자신이 돈을 벌고 권력을 가지기 위한 야심을 충족하길 원한다는 것을 자각했다는 것이다. 벤담은 파놉티콘의 주인과 죄수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의 통치 차원에 적용시켰고, 그 논리적 귀결은 통치자의 권력을 제어할 상시적인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감시의 권력은 역감시의 구조에 의해서만 투명성을 보장받는다는 간단한 원칙이었다. 셈플의 해석에 따르면 벤담의 자유민주주의 원칙들은 파놉티콘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가져온 것이었다.
셈플의 해석은 흥미롭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셈플에게 있어서 파놉티콘은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 철학과 뗄 수 없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그녀는 벤담의 동생 새뮤얼 벤담(Samuel Bentham)의 기여를 최소화하고 있다. 셈플은 18세기 감옥 개혁가인 존 하워드(John Howard)가 소개한 로마의 방사형 교도소가 벤담의 파놉티콘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론하지만, 벤담이 러시아 해군에서 배를 건조하던 동생의 작업장을 방문한 뒤에 파놉티콘의 아이디어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벤덤 자신이 파놉티콘은 “동생의 아이디어를 빌려 자신이 치장만 한 것”이라고 강조했음을 보면, 새뮤얼 벤담의 기여는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새뮤얼 벤담에 초점을 맞추면 파놉티콘과 자본주의 공장 시스템의 밀접한 연관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포템킨 왕자(Prince G.A. Potemkin)를 도와 해군의 조선 작업장을 관장하던 새뮤얼 벤덤은 수많은 미숙련 노동자들이 바글거리는 조선소를 소수의 숙련 노동자들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들의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작업장 구조를 설계했고, 제레미 벤담은 동생의 작업장을 방문했다가 효과적인 감시 체계를 목격하고 이를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감옥의 개혁에 적용시켰던 것이다. 새뮤얼 벤담은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서 포츠머쓰(Portsmouth) 조선소를 개혁하는 일을 총괄했는데, 무엇보다 그는 숙련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하던 공정을 분석하고 분류해서 새로운 임금 체제를 도입하고 이 중 핵심적인 노동을 기계로 대체했다. 그는 또 조선소의 회계를 표준화하고 주급제를 도입하는 등 합리적 경영의 기법을 도입했다. 새뮤얼 벤담은 1806년 러시아로 돌아가 알렉산더 1세의 명에 따라 파놉티콘의 구조를 도입한 목재건축물 오크타 기술학교(Okhta School of Arts)를 지었다. 제레미 벤담은 파놉티콘이 감옥뿐만 아니라 학교, 공장, 병원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파놉티콘의 아이디어는 감옥에서 공장으로 확장된 것이 아니라, 사실 그 기원에서 볼 때(새뮤얼 벤담의) 공장에서(제레미 벤담의) 감옥으로 넘어왔던 것이다. 이것이 파놉티콘이 공장형 감옥이었던 한가지 이유였다.
참고문헌
* 김태희(1990), 벤담의 공리주의 사상에 관한 연구, 동아대학교 대학원
* 김광수(1992), 고전학파, 아세아문화사
* 강재윤 저(1990), 서양윤리사상사, 일신사
* 정원규(2003), 벤담 도덕 및 입법의 원리 서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사상 별책 제2권 제8호
* 주명건, 경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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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18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78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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