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성리학(주자학)의 개념, 성리학(주자학)의 역사, 성리학(주자학)의 교육사상, 성리학(주자학)의 관학화, 성리학(주자학)의 수용, 성리학(주자학)과 예학, 성리학(주자학)과 탈성리학적 실용주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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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리학]성리학(주자학)의 개념, 성리학(주자학)의 역사, 성리학(주자학)의 교육사상, 성리학(주자학)의 관학화, 성리학(주자학)의 수용, 성리학(주자학)과 예학, 성리학(주자학)과 탈성리학적 실용주의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성리학(주자학)의 개념

Ⅱ. 성리학(주자학)의 역사

Ⅲ. 성리학(주자학)의 교육사상

Ⅳ. 성리학(주자학)의 관학화

Ⅴ. 성리학(주자학)의 수용

Ⅵ. 성리학(주자학)과 예학

Ⅶ. 성리학(주자학)과 탈성리학적 실용주의

참고문헌

본문내용

29-1703)에 이르러서는 탈성리학적 특징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는 주자학에서 주장한 “성즉리(性卽理)”의 이론을 거부하였다. 성은 보편적 원리로서 이와 일치하거나 이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격인 마음(心)에서 인식되는 것이며 일차적으로 인성에서 파악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 성격도 형이상학적 관념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구체적 실체의 수준에서 이해된다. 그는 또한 유교의 전통적 명분주의도 보편적 원리의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명(名)은 본래 실(實)을 밝히는 도구일 뿐이라고 하였다.
경세치용의 실학자인 이익(李翼)의 학문적 관심도 본래 이황의 경학에 있었고 주리설을 믿고 있었다. 그는 “이는 기의 장수요 기는 이의 병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오관(五官)과 마음으로 하며 뇌가 사유의 기관이라고 하면서 이기의 관념적 인식을 부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경학의 공부를 위하여 성리학적 전통의 교육과정을 따르기를 거부하였다. 성리학적 전통의 독서순서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이다. 이러한 과정은 경학의 공부를 기본적 원리로부터 연역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익은 먼저 맹자를 읽고, 다음에 대학, 논어, 중용의 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맹자가 시기적으로 가깝고 증거가 명백하며 현저한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보다 구체적으로 경험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공부의 방법을 취하는 실학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경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치용”에 그 목적이 있다. 시경을 공부하는 것도 시로써 백성의 숨은 뜻을 살피고 치민에 활용하는 데 그 의미가 있으며, 예(禮)를 배우는 것도 사회생활에서나 외교활동에서 적절히 적용하여 실질적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용후생의 실학자인 홍대용(洪大容)은 주자학에 폐쇄적으로 몰두하고 있던 당시의 경학에 대하여 매우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주자를 신봉하는 것만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경전의 뜻에 의심스럽거나 논의해 볼 만한 것이 있어도 한결같이 모두가 엄호하기에만 열중한다는 것이다. 서학의 자연과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는 인간과 사물을 귀천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사람으로서 사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이 천하지만, 사물로써 사람을 보면 사물이 귀하고 사람은 천하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보면 사람과 사물은 균등한 것이다.” 사람으로서 사물을 볼 것이 아니라 하늘로써 사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성의 지향을 의미한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도 성리학의 논리와 의의에 대한 이해가 있었지만 또한 그것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철저하였다. “성리학이란 도를 알고 자신을 인식하여 그 실천할 도리를 스스로 힘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리학이 추상적 관념의 분석에 따라 분열에 빠져 있는 학풍이라고 평가하고, 특히 끝없는 이기설의 논쟁에만 매달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사물에 대한 인식도 유형한 것에서 무형한 것, 즉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실제로 우리가 사물을 다룰 때도 유형한 것을 가지고 무형한 것을 다룬다고 지적하였다. 경험적 내용을 가지고 관념적 내용을 다루게 하는 학습의 원리를 말한 것이다.
정약용의 학문관은 객관적 사실의 분석적 인식으로서 고증적 혹은 실증적인 태도를 학문의 기초적 방법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증의 방법을 통하여 실용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존재나 사회적 가치를 벗어나는 실증은 그에게서는 맹목일 뿐이다. 따라서 경학의 체제에서도 고증학적 방법을 도입하지만, 실사구시의 방법인 청조 고증학의 한 학풍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질서의 인식을 위한 해명에 관심의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경학은 오히려 그 자신의 시대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인 실용적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전의 해석, 즉 새로 전래된 서학의 과학적 사고나 신앙적 체계에서 받은 실학적 경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가 인간을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라고 파악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물과 다른 것은 형기(形氣)에 있어서 보다 영명(靈明)함을 타고 난다는 데 있다. 인간은 신형(神形)의 묘합으로 이루어진 통일체로서 금수나 사물과 구별된다. 마음은 무형한 정신으로서의 “神”과 유형한 신체로서의 “形”을 묘합시키는 추유(樞紐)이며, 신묘한 기능을 가진 활동적 실체이다. 이러한 마음은 인간 존재의 핵심적 실체로서 관념적이 아니라 현실적인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性은 마음의 본질이 아니라 영명한 마음이 지닌 성질로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 성은 천부적인 것이지만 보편적 동질성이 아니라 개체적 특수성이므로 성을 통하여 인간(인성)과 금수(물성)가 구별된다. 따라서 성은 마음의 기호(嗜好)로서 개체의 선천적 고유성을 지닌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 선악의 원천이 혼재하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선악을 인간의 심성이 추구하는 객관적 규범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욕심도 악의 원인이라고 하여 억제하거나 부정하는 입장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으로 긍정하며, 덕도 본성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실천적 결과로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성은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하여 결단하는 자주권 곧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다. 정약용은 성리학의 심성론을 벗어나서 인간존재를 그 현실성과 개체적 자율성 속에서 파악하는 새로운 인간이해를 통하여 실학파적 철학의 독자적 근거를 정립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김항수, 한국사8 조선전기의 성리학, 한길사
유명종(1991), 조선시대의 성리학파, 석산한종만박사화갑기념논문, 원광대학교출판부
윤사순, 한국의 성리학과 실학
이은순(1996), 여말 선초의 사회 변동과 성리학 사상의 수용, 한국 사회 사상사 논총, 지식산업사
정대환(1992), 조선조 성리학 연구, 강원대학교출판부
한국종교연구회(1998), 2장 I. 6. 성리학의 도입,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 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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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2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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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78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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