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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도자기의 가치

Ⅲ. 도자기의 제작방법
1. 수비
2. 토련
3. 성형
4. 조각
5. 초벌구이
6. 시유
7. 재벌구이

Ⅳ. 백자의 성립

Ⅴ. 백자의 발달
1. 전기
2. 중기
3. 후기

Ⅵ. 백자의 자연미

Ⅶ. 백자에 나타난 백색

참고문헌

본문내용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수렴(收斂)의 의미로 욕망을 최대한 절제한 것을 의미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바탕으로 한 천리(天理)를 보존하고 인욕(人慾)을 제거하려는 성정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存天理, 去人慾)
이에 조선전기는 궁중, 관아의 특수한 제기가 만들어지고 그 쓰임새도 왕실이나 관청, 지방의 향교 등에서 유교적인 제례가 중시됨에 따라 의식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면 실용적인 백자가 이용된다. 그 기형은 너그럽고 풍만하여 입언저리가 밖으로 벌어져 나온 것이거나 특별한 모양을 낸 것이 아니라 유려하면서 유연한 곡선을 자제하면서 솔직함과 단정함을 잃지 않는다.
중기로 접어들면(1560~1751) 유약에 미량의 철분이 들어있어서 전기 백자보다 더 푸르름이 깃들여 있고 태토도 순백이다. 또한 장식적인 문양이나 투각된 문양이 있는 것이 많아졌다. 이는 단아하고 얌전한 느낌을 넘어서 뚫어진 사이로 맑고 깨끗하며 아주 힘차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시기에 백색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청색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순백과 같은데 이를 설백(雪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시대적인 흐름을 거치면서 독창적인 미의 표현이 점차 많이 구현된 것이다. 또한 이시기의 백자는 표면에 문양이나 장식이 가미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항아리들은 산수화를 보듯이 2/3쯤 남겨진 여백은 문양과 더불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흡사 나머지 부분이 문양아래에서 공간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린부분보다 그리지 않은 부분에 더 비중을 두고 무한적인 의상(意象)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후기로 오면 청화와 철화의 기법을 같이하여 고아하면서도 텅 빈 도자의 면에 소담스런 그림이 빛나게 구성하였다. 이러한 구성은 청화그림에 진사채 무늬가 있는 것으로 세련된 필치와 수묵에 담채가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특히 조선조 백자는 그 국가의 이념이 많은 고난을 겪고 난 후 독특한 특성으로 이루어지고 중기 후반의 백자의 모습은 다종다양하면서도 단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가장 독특하고 독창적인 우리의 모습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즉 초기의 제기와 문방구에서는 때로 소탈하고 근엄하며 간결하고 익살스러우며 더 나아가서 후기로 올수록 단정, 단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형태가 이루어졌다.
더불어서 야나기는 한국미술의 독자성을 선(線)에 감춰진 미(美)이며 무작위(無作爲)의 미(美)임을 역설했다. 선의 미는 일반적으로 그 외형 뿐 아니라 작품 내에서도 보여지는 투각(透刻), 양각, 조각 등을 통해 작품내의 은은한 아름다움이나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추구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중기의 기형은 한국적이고 독특하며 준수한 세련미를 보이게 된다.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새로운 근본이념에 맞는 정책과 제반시책의 필요에 따라 백자 제조 기술의 습득과 백자의 확산은 그 시책에 적합한 것이었다. 따라서 치밀질 백자는 전혀 새로운 것이고 검약을 기본 덕목으로 삼는 유학의 사상에도 그 견고함과 백색이라는 것은 검약정신에 합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조선이 개국하고 나서는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새 국가 이념 위에 새 나라를 세운다는 이념과 실천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세계 도자사의 큰 흐름이 청자(靑磁)에서 백자(白磁)로 이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개국 이전에 치밀질 백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조선조는 유교 이념을 그 국시(國是)로 내세워 조선조 말까지 거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여러 가지 시책의 기본에 그러한 이념이 도사리고 있었던 국가이다. 따라서 검약이라는 유교의 이념에 딱 맞게 백자는 실제 생활에서 검약을 실천하는 데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초기에는 새롭고 실용적이긴 하였으나 초기의 생산비가 분청사기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고가품으로 백자보다 값싼 자기를 이용하고 왕실이외에는 금령을 내리다가 백자가 일반화된 16세기 중엽에 이르면 금령이 없어지나 문양을 넣는 것은 왕실사용의 특수한 목적이외에는 국초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금지령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시책으로 조선백자의 단순화를 초래하였고 조선백자의 조형에 있어서 장식적 요소를 없애고 형태미를 가꾸는 것을 주력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흰 빛깔 도자에 대한 것은 자연 스스로 만들어 낸 듯 하다. 한국적인 색상과 작위성을 피하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저절로 탄생한 것 같은 신비한 감정은 우리가 즐겨 쓰는 색채와 그 색채가 빚어내는 무심하고 지순한 성격에서도 구할 수 있다. 일본인 학자 야나기는 조선 도자의 미려한 백색에 감탄하면서 “조선 도자의 미는 자연이 보호해 주고 있다.”며 조선 백자에는 다른 것으로부터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연에 대한 무한한 신뢰, 마음과 자연과의 미묘한 관계 속에 탄생된 조선 백자야말로 위대한 예술의 법칙이 담겨있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슬픔의 감정이 담겨있고, 이는 도자에서까지 같은 흰빛이라도 명나라의 자기와는 다른 언제나 연한 옥색을 띄거나 분백(粉白)에 사여 있거나 회백색을 띄고 있다면서 안으로 가라앉으려는 마음의 표현이 있다고 조선의 미술을 비애의 미로 나타내고 있다.
더불어서 이것의 쓸쓸함은 감추어진 쓸쓸함이라 칭하면서 의지할 만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벚을 가지지 못한 상태로 내성적이며 말없이 감추어진 미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조선 도자의 미에는 조용한 눈물 많은 마음을 감춰진 미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야나기의 입장과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버나드리치는 조선백자의 옅은 청색을 보고 이러한 색을 낼 수 있다면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김영원 / 조선백자, 서울 : 대원사, 1991
이응상 외 2명 / 도자기, 문교부, 1984
정량모 / 국보-백자, 분청사기, 서울 : 예경산업사, 1984
중앙일보 / 계간미술, 백자, 한국의 미 2, 1980
하희정 / 1970년대 한국미술에 나타난 백색 모노크롬 회화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논문, 1993
호암미술관 / 삼성미술문화재단, 조선백자전Ⅰ, Ⅱ, Ⅲ, 1983, 1985,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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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백자,   도예,   ,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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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2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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