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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색채(색깔, 색상) 의의, 색채(색깔, 색상) 표색계와 유아동그림, 신인상주의와 색채(색깔, 색상), 한국인의 색채(색깔, 색상)의식, 의식주에 나타난 색채(색깔, 색상)의식, 생활 속에 나타난 색채(색깔,색상)의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색채(색깔, 색상)의 의의

Ⅲ. 색채(색깔, 색상)의 표색계
1. 먼셀 표색계(MUNSELL)
1) 먼셀의 색상환
2) 먼셀 기호의 표기법
2. 오스트발드 표색계(OSTWALD)
1) 등색상 삼각형
2) 오스트발드의 색상환
3) 오스트발드의 기호표시법
4) 편리한 점과 결점

Ⅳ. 색채(색깔, 색상)의 유아동그림

Ⅴ. 신인상주의와 색채(색깔, 색상)

Ⅵ. 한국인의 색채(색깔, 색상)의식

Ⅶ. 의식주에 나타난 색채(색깔, 색상)의식

Ⅷ. 생활 속에 나타난 색채(색깔, 색상)의식

참고문헌

본문내용

오행과 오색을 맞추고, 국도 다섯 가지 건더기를 넣어서 끓여먹는다. 그리고 잔칫상에 올려지는 국수 위에도 장수를 기원하는 오색고명을 얹어 오행에 순응하는 기복의 의미를 더하였다. 상차림에 있어서도 반드시 국을 함께 놓아 음양의 기운을 조화시켰고, 사대부가에서는 어魚와 육肉, 편片과 적炙, 소蔬와 채菜 등 음양과 오색의 배열을 일상화했다.
금기나 주술 양식에는 양의 색인 청색과 적색을 사용하여 사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신앙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정초나 동지날에 팥죽이나 시루떡을 나누어 먹고 대문이나 문설주에 뿌려 상서롭지 못한 것을 쫓아 버리는 습속은 붉은 것을 이용하여 부정한 것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특별히 동지는 일년 중 해가 가장 짧아 귀신이 행동하기 좋은 때이므로 양의 기운인 붉은 색을 사용함으로써 음의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간장을 담글 때에도 반드시 고추를 간장 위에 띄우고 장독 둘레에 고추를 매달았다. 붉은 고추, 대추, 팥 등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백색은 이에 신성함을 곁들여 같이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식생활의 색채관념을 결정짓는 데는 주술신앙의 비중이 매우 컸다.
또한 벽사진경의 가장 강력한 의지표현의 하나인 부적의 색은 모두가 적색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관상감에서 주사로 쓴 부적을 만들어 단오에 대궐 안으로 올리면, 이를 문설주에 붙여 불길한 재액을 막았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대궐뿐만 아니라 일반 민가에도 널리 행하여 집집마다 붉은 부적을 붙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재래신앙으로 남아있다.
신부의 얼굴에 바르는 연지 곤지는 시집가는 여인을 투정하는 음귀에 대한 축출의 의미에서 사용하였고, 청색 홍색의 사주단자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아기를 출산 할 때의 금줄에는 남아의 경우에는 빨간 고추와 숯, 여아의 경우에는 생솔가지와 숯, 종이를 끼워 놓는데 이때의 빨간 고추는 양의 색으로 남근의 상징이며, 청솔 가지는 정절의 상징으로 쓰인다. 또한 숯은 부정한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우리 나라의 생활 속에서 넓게 사용되었다.
주생활에서도 건축재료로 붉은빛이 나는 황토를 즐겨 사용하였다. 서울 종로의 흙이 붉은 빛의 황토였는데 사람들이 종로의 흙을 마구 파 가는 바람에 이를 막는 금토방禁土을 붙여야만 했다고 한다.
이상은 음양오행적 이치에 따른 색의 사용이 일반화된 것이며, 이러한 경향의 일부는 오늘날에도 크게 변화되지 않은 채 고유문화로 내려오고 있다. 한국인은 의미에 매우 민감한 민족이다. 색채나 행동은 물론 물건의 실용적 가치나 조형적인 특징, 시각적 특징보다 상생상극의 의미성을 더 강조하였다. 이러한 의미부여에 의한 행동은 부자연스러움과 감정의 억제를 동반하고 형식주의의 요인으로 대두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활달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는 역시 오색의 유채색이 어울린다. 민요에서 사용된 색의 수치 가운데 봉선화가 가장 많으며, 짙은 적보다는 간색인 홍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반면 청색은 간색인 녹색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상대적으로 음색인 백색과 흑색의 빈도는 매우 낮다고 한다. 또한 숱한 꽃 중에서도 봉선화와 국화꽃을 빈번히 노래한 것은 그 색채에 미적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며, 분홍과 노랑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색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의미적인 해석이 아니더라도 역시 즐겁고 특별하고 희망을 표현하는 행위 및 생활습속에서는 모두 시각적으로 밝고 아름다운 유채색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색으로서의 오방색은 삶을 유지하고 가꾸어 나가는 데 큰 몫을 감당하였다.
생활습속에서 색의 사용을 살펴볼 때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일컬을 만큼 빈번하게 사용해왔던 색은 백색과 청색으로 이어지는 자연색이다. 조선 왕조의 철저한 정색관념에 의해 동방의 색인 청색의 사용이 법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과 양반들의 일상생활에서 흰옷의 사용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각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인격과 형식, 규범 등을 중요시하는 유교적 사고방식의 결과이며, 색이 있는 것은 곧 욕망이고 천하고 품위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색을 숭상했던 의식 속에는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것에서 초월하여 고매한 인격에 이른다는 금욕주의적인 한국인 특유의 인생관이 자리 잡고 있다. 감정표현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질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색채에 감정이입하거나 감정투사하지 않고 어떤 의미부여를 통해서 은근히 표현하는 것이 한국인의 전형적인 심성이 되었으며, 탈채색脫彩色, 금채색禁彩色이 의식화되었다. 백자와 청자에 나타나고 있는 우아함과 신비로움도 이러한 오랜 민족의 정신과 맥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금욕적인 인격완성의 의미 외에, 자연에 동화하고 자연에 귀의하는 심성과도 깊이 관련되어있다. 대궐이나 사찰을 제외한 일반 민가는 기둥, 벽, 마루, 방안의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연 그대로의 색이다. 이것은 자연의 색과 아울러 모나지 않고 툭 튀어나지 않는 평온한 마음의 심리상태를 갖게 하며, 나아가서 가장 보편적인 조화상태의 무색중화無色中和에 이르는 의식구조를 갖게 한다. 따라서 백색은 채색한다는 적극적인 행동의식이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무색개념이며, 백색옷은 있는 그대로의 무색옷이라는 타율적인 의식구조도 없지 않다.
이처럼 각각의 색에 대한 개념과 용도의 사례를 보이는 조선시대의 전통색채는 음양오행설에서 기인된 유채색을 주로 사용했던 지배계급 사회의 엄격한 정색주의 관념과, 색채사용이 엄격히 통제되어 무채색을 생활색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피지배계급사회에서의 무채색 관념으로 나뉠 수 있다. 이들의 상반된 유채색 관념과 무채색 관념의 두 개념은 자연스런 색채 발달의 흐름에 방해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박영순·이연주 지음(1998) - 색채와 디자인
박영수 - 색깔있는 이야기, 새길
오사카상공회의소(1996) - 팔리는 색채, 도서출판 국제
에바(2002) - 헬러색의 유혹, 예담출판사
엘케 뮐러 메에스, 이영희 번(2003) - 컬러 파워, 베텔스만코리아(주)
정종미 저(2001) - 우리그림의 색과 칠, 서울 : 학고재

키워드

색채,   색깔,   색상,   ,   표색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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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2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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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3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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