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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르네상스 미술]르네상스 미술의 의의, 르네상스 미술의 기원, 르네상스 미술의 회화, 르네상스 미술의 원근법, 르네상스 미술의 북구지역, 르네상스 미술에 나타난 남자의 몸, 르네상스 미술 관련 제언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르네상스 미술의 의의

Ⅲ. 르네상스 미술의 기원

Ⅳ. 르네상스 미술의 회화

Ⅴ. 르네상스 미술의 원근법

Ⅵ. 르네상스 미술의 북구지역
1. 독일
1) 그뤼네 발트(Matthis Grunnewald)
2) 뒤러(Albrecht Durer : 1471~1528)
3)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 1467~1543)
4)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 : 1480~1538)
2. 네덜란드
3. 프랑스

Ⅶ. 르네상스 미술에 나타난 남자의 몸
1. 르네상스 초기 : 개별화되고 구체화되는 남자의 몸
2. 과학적인 원근법의 발명과 남자의 몸 : 절대적 시선으로 변환된 남자의 몸
3. 자화상의 등장과 남자의 몸

Ⅷ.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11)을 볼라치면 건물은 뒤로 갈수록 소실점에 근접하는 식으로 원근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인물들은 앞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림의 중간에 좌우로 기다랗게 도열시켜 놓고 있다. 인물들이 앞·뒤로 위치하게 되면 상대로 터무니 작고 터무니없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마찬가지다.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좌우로 도열시켜 놓고 있다. 건물이나 공간은 원근법적으로 해서 오히려 공간감과 입체감을 살리는 반면, 그러면서도 인물들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인물들 역시 전체적인 원근법적인 구도 속에 인위적으로 갇혀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컨대 군상으로 개별화되고 구체화되는 남자들의 몸이지만, 일점 원근법의 구도 속에 갇히게 됨으로써 사라진 예수의 절대적인 몸 대신에 이제 그림 이편에 비가시적인 존재로 숨어 있는 화가의 절대적인 시선 하에 포섭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세에 이르기까지 절대화의 과정을 겪던 남자의 몸은 르네상스를 통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추상화된 절대적인 시선 즉 비가시적인 절대적 몸으로 변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몸이 와해되는 듯 하여 나타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남자의 몸들은 절대적 시선으로 변환된 이 비가시적인 절대적인 몸 속으로 다시 포섭되어버린 것이다.
3. 자화상의 등장과 남자의 몸
르네상스 미술에서 보이는 변화에서 또 하나 특기할 것은 처음으로 자화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빈치가 그린 자화상들이다. 현재 3점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흔히 보는 그의 자화상은 피렌체에서 두 번째로 활동할 때의 50대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는 노랑 바탕에 검붉은 연필로 그린 데생 작품이다. 그런데 50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어 보인다. 그가 1519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는 것으로 본다면, 16세기 초엽에 죽기 직전에 그린 것이 아닌가 싶다. 머리는 이마 위에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지고 보이지 않고, 한껏 기른 뒷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휘날리는 눈썹이 어울려 그림 전체가 덥수룩한 인상을 준다. 중요한 것은 입을 꼭 다물고 있고 눈빛이 숨겨져 있는 듯 하지만 불타오르는 듯 강렬하게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러했지만, 특히 다빈치는 철학, 수학, 음악, 과학, 기술, 역사 등 모르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한 그야말로 전인적인 천재였다. 그러한 모든 내적인 힘이 자화상을 통해 강렬하게 뿜어 나온다.
자화상을 그리려면 적어도 오늘날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거울이 있어야 한다. 유리 거울이 발명된 것은 12~13세기이지만, 유리 뒤에 주석박을 붙여 요즈음 수은박을 붙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게 된 것은 15세기 경 르네상스 시기 베네치아에서였다. 다빈치는 회화에 과학성을 부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주석 박막의 유리 거울을 보았을 때 우연히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의미는 대단히 심장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시선으로써 자신의 시선을 바라보는 행위다. 즉 반성의 구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볼 때, 중심에 있는 것은 화가 자신의 눈빛이다. 눈빛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면 굳이 거울을 볼 필요가 없다. 거울이 없이도 자신의 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화상의 중심은 당연히 얼굴이고, 그 중심의 중심은 눈이다. 눈을 쳐다보고 있으면, 얼굴의 다른 부분들은 얼핏 마치 지평처럼 은근히 들어올 뿐이다. 얼굴의 다른 부분들을 볼라치면, 자신의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눈을 보지 않고 얼굴을 본다는 것은 기실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얼굴 전체는 눈의 확장이다. 자화상에는 자신의 시선을 바라보는 시선이 표현되어 있는 셈이다. 반성의 구도에서 보면,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반성하는 자신이 반성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려진 모습은 기실 반성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자화상은 반성하는 자와 반성되는 자가 무한히 교환되면서 통일되는 형상이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원근법에 비교하자면, 자화상은 숨겨져 있는 화가의 중심 시선은 그대로 유지한 채,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대상 풍경의 자리에 바로 자기 자신의 또 하나의 시선 내지는 얼굴을 놓은 것이다. 원근법을 통해 그림에 비가시적인 몸의 형태로 드러나던 절대적 시선은 이제 자화상을 통해 스스로를 형상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셈이다. 그 결과는 절대적인 시선이 자기 의식적인 영역과 결합되면서 현실 세계로부터 차단된 전혀 새로운 형태의 근대적인 남자의 몸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바로크 시대에서 절정을 이루면서 19세기 말까지 이어진다.
Ⅷ. 결론 및 제언
르네상스는 서양 사상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는 운동이며, 르네상스 시대는 세계사상 위대한 전환기의 하나로 침체한 중세기의 종말을 가져오고 생동하는 근대의 동이 거기에서 터왔다고도 볼 수 있다.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으로 옮겨지고 있으나, 그것은 결코 문학이나 미술에만 국한된 문화 운동이 아니고, 정치와 경제와 사상의 인류 생활의 온 영역에 걸친 일대 개조 갱신 운동으로, 무릇 근대사의 흐름치고 거기에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근대 문명의 모든 요소와 요인이 또한 거기에서 싹트지 않은 것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법칙적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합리성에 의해 모든 것을 사고하려는 세계관이 생겨났다. 화가들은 ‘회화적’인 것과 대립되는 개념의 조형성 예술을 입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시기인 것이다.
참고문헌
네이던 노블러 저, 정점식·최기득 공역, 미술의 이해, 서울 : 예경, 1993
로자 마리아 레츠, 르네상스의 미술, 예경산업사, 1991
앨리슨 콜 지음, 남경태 옮김, 명화 이야기 시리즈 - 르네상스, 디자인하우스
임영방, 회화미술에 있어서 조형공간, 중앙신서, 서울, 1978
하인리히 뵐폴린, 안인희, 르네상스의 미술, 휴머니스트, 2001
W.K퍼거슨, 르네상스,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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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3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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