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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옥][한옥의 민가양식][한옥과 음양원리][한옥과 풍수지리설][한옥과 아파트의 비교]한옥의 특성, 한옥의 우수성, 한옥의 구조, 한옥의 민가양식, 한옥과 음양원리, 한옥과 풍수지리설, 한옥과 아파트의 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한옥의 특성

Ⅲ. 한옥의 우수성

Ⅳ. 한옥의 구조
1. 대청
2. 방
3. 사랑
4. 사당
5. 찬방
6. 부엌

Ⅴ. 한옥의 민가양식
1. 一자형식
2. ㄱ자형식
3. 田자형식

Ⅵ. 한옥과 음양원리

Ⅶ. 한옥과 풍수지리설

Ⅷ. 한옥과 아파트의 비교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도 건물의 형태, 건설 시기와 과정, 건축 방법에 이르기까지 주택의 계획과 건축 전반에 걸쳐 적용되었다.
Ⅷ. 한옥과 아파트의 비교
지금 가장 선호되는 아파트와 조선시대( 또는 우리의)의 전통한옥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앞서 밝힌 대로 한옥은 우선 들어갈 때 커다란 문이 있다. 이것은 솟을대문이라고도 칭해지는데 그 집의 신분과 세를 표시하기도 하며 사람과 물건뿐만 아니라 모든 복과 악한 기운이 드나들기에 화를 모면하거나 복을 기리는 측면에서 “처용의 얼굴”이나 “입춘대길”등을 써 붙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의 문은 매우 기능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주거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물론 요즘에는 부의 상징으로 남들과는 차별되는 문을 만들어 달기도 하지만 그다지 큰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된다.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한옥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루이다. 마루는 한옥에 있어서 남방적인 특성으로 주로 여름에 사용되는 공간이 된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지리적 특징과 기후로 인하여 지역 색이 강하여 북방지역에서는 마루라는 공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조선시대 모든 것의 중심인 서울지역의 한옥구조에서는 마루가 존재하였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마루는 구조상 그 집안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에 집안의 모든 일을 처리할 때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옥마을에서 순정효 황후 윤씨 친가의 마루를 보았을 때, 그 당시 양반의 권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방과 연결되어 있는 마루는 문을 위로 매달아 놓으면 그 경계선이 사라지고, 그 차분한 느낌을 주는 넓은 공간에서는 과거에 대단한 무엇이 일어났을 것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아파트에서의 마루는 방과 방을 연결해 주고, 그 구성원들이 만날 수 있게 하는 장소이다. 과거 한옥이 대가족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의 아파트는 핵가족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마루라는 공간은 더욱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다. 가족끼리 TV를 본다거나 함께 그 무엇을 논의할 때 쓸 수 있는 공간이기에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지금의 공간이 훨씬 좋을 수도 있으나, 각자 방에서 생활하고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집안에서보다 많기 때문에 생각했던 것만큼 유용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한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거주하는 공간이 나뉘어져있었다. 그 집안의 주인은 사랑채에서 생활하고, 딸들도 따로 건물을 만들어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가 가부장제를 비롯한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기에 옷차림에서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가옥구조에서도 구분이 되어있는 것 같다. 건물이 나누어져 있기에 집안에서도 각자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주인의 사랑채는 남성으로써의 권위와 강렬함이 느껴졌다. 양반들이 갖추어야 하는 붓, 그림, 먹, 벼루를 비롯하여 나무로 만든 침대( 평상)가 놓여져 있었고 집안을 살펴볼 수 있도록 약간은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대가 양반층 남성에게 요구하는 위치가 집안에서의 사랑채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따로 떨어져 있는 딸들의 방은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고 집안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시대 여성들을 찍은 사진을 보면 외출할 때 장옷을 입는다. 장옷은 중동지방 여성들이 밖에 나올 때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자신의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함이다. 특히 양반가의 여식인 경우에는 더욱 엄격하게 지켜졌을 것이다. 결혼할 때도 상대편 남성과 대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여성 특히 딸 방이 건물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아들의 방은 건물에 있다. 남성위주의 조선사회에서 그 집안이 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보아야 했고, 그 과거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다. 모든 중요한 결정이 남성들의 몫이기에 거주하는 방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파트에서도 각자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수준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올라갔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가족수가 적어지고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사회적 동의나 흐름이 있었기에 더욱 그쪽으로 가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파트에서의 각자의 공간은 조선시대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사회적으로 가부장적 모습을 지양하려 하고, 남녀간 차별을 없애려 하기에 방은 사회적 이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아버지의 위치도 집안을 다스려야한다기보다는 함께 생활해 나아가야 한다는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것 같다.
부엌살림과 화덕이 또한 한옥과 아파트를 구분해 준다.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이기에 그 집안의 구성원은 나름대로의 일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장소도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부엌살림과 불을 때는 화덕이 독립되어 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매우 불편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당시에는 집안 구성원들이 각자 일을 해야 하기에 더 효율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파트에서는 모든 것이 집안에서 해결된다. 난방도 매우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고 부엌도 방 과 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기술의 발전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시간을 아껴야 하는 사회적 요구로 인한 변화가 아닌가 싶다. 한옥에서 독립된 구조는 각 영역마다 책임질 사람이 존재하지만 현대에서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고 사회도 그러한 모습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집안 구성원 모두가 가사 일을 수행할 수 있고 있어야 하기에 살림구조는 조선시대에 비해 개방적이고 집안에서도 중요하고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구조가 단순화되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구조를 강요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 김대벽(2000), 한옥의 고향, 대원사
▷ 김봉렬(1999), 한국건축의 재발견, 이상건축
▷ 송인호(1990), 도시형한옥 유형연구, 서울대 박사논문
▷ 신영훈(2001), 한옥의 조형의식, 대원사
▷ 연제진·최경숙(1987), 서울시 한옥지구내 건축물의 특성 및 보전방향에 관한 연구
▷ 주택문화사(2002), 한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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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10.07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6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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