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의 창제 및 전파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선조들의 애민정신과 근대성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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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1.1 봉건 질서 속에서의 유교 문화가 가지는 의미

1.2 조선시대 유가의 이데올로기적 기능

2. 훈민정음의 창제 주체 인식과 이와 관련된 이분법적 유가적 입장의 인식

2.1 우리 역사에서 국문의 창제가 갖는 의미

2.2 상이한 국문창제주체가 가지고 있던 각각의 유교적 입장

2.2 ‘親制說’ vs ‘命制說’

2.2.1 청백리 관료 ‘최만리’의 상소에 담겨있는 계급적 인식

2.2.2 野史, <용재총화>의 새로운 해석

3. <용비어천가>의 전래와 보급

3.1 <용비어천가>

3.2. ‘칭송가사’ vs ‘규계가사’의 구조에서 알 수 있는 <용비어천가>의 위상

3.3 <용비어천가>의 실제적 전파

4. 결

<참고문헌>

본문내용

채택하여 기록된 그 의의를 분석하는 주제 아래에 있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부분은 차후의 연구에 기대어 보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용비어천가>는 국문 기록의 그 의의를 어떻게 실현했을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용비어천가>는 조선의 ‘규범적 텍스트’로써 그만의 권위와 상징을 가지게 되었고, 사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던 집단에게 유용하게 사용되어 질 수 있었다. 조선 중기 양난을 경험하고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던 조선에서는 <용비어천가>의 재발견을 통하여 이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이 작품 속에 개재되어 있는 조종의 위업과 후왕들에 대한 규계를 새롭게 촉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용비어천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간행과 보급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졌다고 한다. 김승우, ‘용비어천가의 성립과 수용, 변천양상’, 고려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9, p.254
또한 현종 대에는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과거시험에 출제 하면서 관직에 나아갈 이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소양으로써 이 작품을 인식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배층의 인식으로 이 작품의 수용양상이 관료집단으로 한정되어 있던 수준에서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확대가 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龍飛御天歌豊沛館改選約本> 이후, ‘약본’으로 표기
가 광해군대 함경감사였던 ‘한준겸’(韓浚謙)에 의하여 제작이라는 성과를 낳게 된다. 이 ‘약본’은 왜란 이후 피폐해진 민심을 모아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이 되었기 때문에 작품의 긴 형태가 축약이 되고, 자세한 언해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임금에 대한 ‘규계’에 대한 내용이 원문보다 훨씬 강조되고 있으며, <용비어천가>에서 함경도를 왕조의 시원으로 제시한 바를 이용하여 민심을 규합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자신감을 고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 다분히 사대부적 계급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해석이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은 봉건시대라고 하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 또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 측면, 즉 같은 시대적, 역사적 상황을 가지고 있던 여느 나라들과는 달리, 계급 질서 속에서 피지배자를 속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운명체로써 인식하고 그들과 이념을 공유하고, 계도하려는 의지적 측면을 우리는 보아야 하는 것이다.
4. 결
우리는 지금까지 국문의 창제와 전개와 관련된 내용을 논의하면서, 우리의 봉건질서 내에서 존재하고 있는 유가적 ‘왕도정치’ 즉, ‘위민민본(爲民民本)’의 근대적 가치를 확인해 보았다. 물론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의적인 것이 아닌가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이 ‘현재와의 대화’라는 인식에서 보았을 때,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서는 개방적인 사고를 견지하여 지금의 우리에게 보다 나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위조와 왜곡이 아닌 선에서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국문으로 쓰여진 여러 작품들에 대하여, 단지 그들이 우리의 말로 기록되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민본주의의 발로이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시각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위와 같은 사고의 전개는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나름의 논리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김승우, '용비어천가의 성립과 수용, 변천양상‘, 고려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9
박종국,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4
이기문, 훈민정음 창제에 관련된 몇 문제, 국어학 제 2권,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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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14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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