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신라와 발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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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 머 릿 말
나. 新羅와 渤海의 境界와 相互關係
 나-(1) 渤海의 領域擴張과 新羅와의 對峙
 나-(2) 新羅와 渤海의 歷史的 關係와 交涉
다. 新羅人의 渤海認識과 變化
 다-(1) 新羅人의 渤海認識
라. 맺 음 말

본문내용

는 발해 자체가 남긴 역사기록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주로 『삼국사기』와 한국측 자료를 활용하여 발해사를 보충하고, 나아가 신라와의 관계와 역사인식을 살펴보려는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양국간의 관계에 대한 기록은 대립적인 측면을 전하는 것이 더 많다. 이에 본 과제에서는 선학들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신라와 발해를 당시 한반도에서 접경하고 있던 두 세력체로 설정하고 이해하였다.
종합하여 보면 본문에서는 주로 두 가지 내용을 언급하였다. 하나는 신라와 발해의 경계와 상호관계이다. 신라는 삼국항쟁기와 통일전쟁을 앞두고 자국을 자주 침략했던 북방족을 말갈로 보아 이적시하는 경향이 짙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통일전쟁이 끝난후에는 영역의 확장과 더불어 이들 말갈도 통합의 대상이었다. 북방에 대한 관심이 항상 영역확대와 더불어 등장하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라의 이와 같은 북방에 대한 재래로 인식되어 온 이적관이 북방의 옛 고구려 영역에서 발해가 건국된 후에는 高句麗故土라는 의식과 말갈인식이 있었다. 특히 양국이 대립적인 측면이 강할 때에는 말갈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욱 짙었다고 본다.
신라인들의 발해인식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고구려의 남은 무리들의 나라라는 인식과 고구려 故土에서 건국된 나라라는 것이다. 고구려의 남은 무리들과 고구려 故土에는 말갈인들이 살고 있다는 인식이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 훗날 북방영역에 관심이 집중될 때에는 주요한 근거의 하나로 제시되었다고 본다.
이렇게 살펴본 우리의 발해, 발해는 한·중·일·러 4개국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각국 다 그들의 이념과 가치에 따라 발해는 각국의 해석으로 전혀 다른 성격의 국가로 비정되어지고 있으며,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분쟁의 핵심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해국의 각기 다른 성격 규정은 실증적인 연구를 토대로 이끌어낸 결론이 아니라 자신들의 논지에 유리한 증거를 찾는데 골몰함으로써 다른 요소를 간과하거나 홀시하여 발해의 다양성을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 신라와 발해와의 역사인식과 양국의 경쟁적 존재는 상호 작용하여 양국의 관계에 서 대립적인 경향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발해사는 한국의 왕조사에서는 제외당하였으나, 민족통합과정으로 보면 한국사에서 발해사의 위치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살육, 살인을 통한 전쟁을 넘어서 역사분쟁, 전쟁의 발발에서 대한민국의 발해사는 우리가 지켜야할 자산이다. 비록 쉽지 않은 길이라 하여도 우리는 발해를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먼저 잊고, 수수방관한다면 오히려 발해가 우리를 떠나갈 지도 모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기에......’
※참고문헌
발해의 종족구성과 신라의 발해관, 이동휘, 2004, 부산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경계로 보는 신라와 발해의 관계, 이동휘, 2003, 역사와 경계 47
한국사통론, 변태섭, 2007, 삼영사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 上, 한국사연구회, 2008, 지식산업사
발해 사회문화사 연구, 송기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키워드

발해,   신라,   해동성국,   고구려,   역사,   한국사
  • 가격3,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2.01.25
  • 저작시기2011.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6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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