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기원과 어원 및 유래, 술의 정의와 역사 및 한국 술의 역사, 우리의 술 문화, 금주령, 술의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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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술의 기원과 어원 및 유래, 술의 정의와 역사 및 한국 술의 역사, 우리의 술 문화, 금주령, 술의 사회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술의 기원

2. 술의 어원 / 유래
1) 어원
2) 유래

3. 술의 정의

4. 술의 역사

5. 한국 술의 역사
1) 고구려의 술과 제민요술
2) 백제의 술
3) 신라와 통일신라의 술
4) 고려시대의 술
5) 조선시대
6) 조선시대의 술
7) 일제하의 술
8) 해방 후의 술

6. 우리의 술 문화

7. 금주령
1) 곡식을 축내는 주범
2) 가난뱅이만 걸려드는 불공평한 법
3) 약주의 어원

8. 술의 사회사
1) 일상 속의 커뮤니케이션과 음주
2) 술의 범람에 관한 이유
3) 술 취한 사회와 폭력

참고문헌

본문내용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소외정책으로 우리의 진정한 전통 술은 거의 명맥이 끊어져 버렸다. 다행히 1980년대 이후부터 불합리한 규제와 제약이 조금씩 해소되어 잊혀진 전통술 50여종이 재현되었으나 대부분 영세하고 전문 양조기술의 부재와 영업력 부재로 우리의 찬란했던 전통가양주 문화가 복원되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뒤늦게 1995년부터 술을 개인이 빚어 마시는 것이 허용되어 90년간의 가양주 문화 단절을 극복하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6. 우리의 술 문화
우리나라는 술의 역사가 오랜 까닭에 옛 기록에서도 술에 대한 인식이나 자세가 잘 가다듬어져 있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기분을 돋우지만 지나치면 자제력을 잃게 한다. 따라서 주요한 제례 때나 술을 마셨고 이성과 체력이 좋은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 선조에게 제사를 드릴 때 술을 올렸고 성인에게는 술을 권했지만 미성년자에게는 허용치 않았다.
술의 예절을 보면 마시되 인심과 풍속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슬기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마실 때 손수 따라 마시는 독작 문화권인 서양과 달리 권커니 자커니 하는 대작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술 마시는 예절이 대인관계에서 매우 중요했다.
우리 조상의 음주 예절은 대개 2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향음주례'로 어른을 공양하고 음식의 예의와 절차를 밟아 마시는 음주 문화며 다른 하나는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군음문화"다. 향음주례에서는 겸양과 미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예절이 처음과 끝이다. 반면에 군음은 형식과 절차 없이 거리낌 없이 즐기는 자유롭고 호탕한 자리였다.
7. 금주령
1) 곡식을 축내는 주범
“술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밥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사회 전체가 농업생산에 목을 매고 있던 조선시대에 곡물의 안정적 확보는 체제안정과 통하는 문제였다. 흉년이 들었을 경우 곡물의 낭비는 곧 죽음을 불러왔다. 그러니 곡물이 술로 낭비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멀리 올라갈 것 없이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쌀로 막걸리를 담을 수 없지 않았는가. 물론 곡식 낭비라는 측면 외에도 드물게 천재지변이나 화재와 같은 재난이나 국상 등의 거창한 상사가 있을 때 근신하는 의미에서 금주령이 발동하기도 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조선은 5백 년 동안 금주령을 기본정책으로 유지했다.
2) 가난뱅이만 걸려드는 불공평한 법
금주령은 강력했지만 실제 단속에 걸려드는 이들은 힘없는 백성들뿐이었다.(<<세종실록>>2년 윤1월 23일) “청주를 마신 자는 걸려들지 않고, 탁주를 마신 자는 걸려들어 처벌을 받는다 ”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양주 마신사람들은 괜찮고 소주마신들은 걸려든 셈이다. 금주령의 예외대상은 “늙고 병든 사람이 약을 먹을 때 마시는 술과, 혼인, 제사, 헌수, 사후나 병술은 금주령의 처벌대상에서 대체로 제외되었다.”(<<성종실록>> 14년 3월 6일)
3) 약주의 어원
우리나라에서 약주를 대접한다는 말은 술상을 차려 내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술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술의 종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뭄이 들어 임금 스스로가 비가 내릴 때 까지는 술을 끊기로 하고 전국에 금주령을 내렸지만 이를 예사로 아는 조선시대 특권층이 “이건 술이 아니라 약이래두” 라며 주장하는데서 비롯된 것이 약주라고 한다. 그로부터 서민들이 마시는 술에도 약주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고 술에 취한 사람보고 “약주가 과하셨군요” 하고 점잖게 핀잔을 주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한때 ‘궁정동 약주‘ 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 말은 박정희 대통령의 최후의 주연상에 오른술을 가리키는 말로써 그때 그 사람들이 모여 주전자에 따라 마시던 술은 다름이 아니라 고급 양주 시바스 리갈 이였다.
8. 술의 사회사
왜 술을 마시냐고 물어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술 마시는 분위기가 좋아서' 라든지, '술 마시며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아서' 라고 대답한다. 물론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술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술은 마신다는 것을 개인적인 습관이나 취향만이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며, 술은 사회구성원간의 교류(communication)의 중요한 매개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만취형, 강압형 술자리가 오히려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는, 그래서 원래 술이 가지고 있는 친목과 낭만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일상 속의 커뮤니케이션과 음주
알코올 중독은 단순히 술 자체에의 병적인 탐닉이라기보다 술을 통한 교류가 남과 공유되지 못한 채 오직 자기 자신과의 자폐적 대화로 퇴각한 커뮤니케이션 상의 굴절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술의 범람에 관한 이유
1. 역사의 분단, 민족 정체성의 훼손, 급격한 도시화, 가치관의 혼란등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종교와 술일 것이다.
2. 과도한 스트레스와 산업화에 적응해야한다는 생존의 욕구는 그들의 두뇌에서 놀이, 여유, 여가 등의 개념을 거세시켰다. 이 때 간간이 주어지는 시간은 어떤 문화적 소양을 개발하는데 사용되기 보다는 격렬한 방식의 음주행위를 통하여 고통을 잊는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다. 술 먹고 노래방 가는 식의 여가는 자아개발까지 지향되지 못하는 반쪽 여가라고 볼 수 있다.
3) 술 취한 사회와 폭력
70-80년대의 군부독재 정권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의 폭력성은 그 자체의 폭력성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폭력성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의 사회적 영향으로 폭력 문화를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의 일상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런 환경은 결국 토론과 설득의 '협상능력' 보다는 제압하고 봉쇄하는 '폭력행사의 일상화'가 이루어 질 수 밖 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술 마시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긴장된 사회 구조를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참고문헌
조선의 뒷골목 풍경 - 강명관지음/푸른역사
술의 역사 - 피에르 푸케/마르틴 드 보르드 지음 / 한길크세주
기호품의 역사 -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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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5.27
  • 저작시기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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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19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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