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선교] “찾아 나섬과 감격함”의 선교 - 사도행전 10장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 - 고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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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서와 선교] “찾아 나섬과 감격함”의 선교 - 사도행전 10장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 - 고넬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선교하는 공동체로서의 기독교
2. 기독교 선교의 문제점으로서의 문화 우월주의
3. 복음과 문화와의 새로운 선교적 관계
4. 베드로의 찾아 나섬과 성령을 통한 감격함의 선교
5. 사도행전 10장 - 고넬료의 선교①, ②

본문내용

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1:2-3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부정한 무할례자들에 대한 유대교적 편견이 이방인을 구원하려는 성령의 뜻을 거스를 수 없고 선교는 우리의 일이기 전에 언제나 하나님의 일이었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적 선교에 순종하여 동참해야 한다.
⑤ 역사 속의 선교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예수님 승천 후 기독교는 유대인들 안에서만 돌며 자생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나 베드로에게 예상치도 않은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이방 선교의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대사도였던 베드로조차도 처음에는 이 환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즉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오고(18절) 성령께서 지시하신 말씀을 들으며(19,20절) 고넬료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서야(25-27절) 환상의 의미를 비로소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28절) 이는 심지어 사도조차도 당시까지는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바른 관계 등에 대하여 명확한 신학적 이해를 갖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의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의식 율법은 그것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 오직 구약의 모든 약속과 예언의 성취로 오신 우리 구주 예수와 그분이 세계 만민을 위하여 주신 새 언약 곧 신약과 연결될 때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도 역시 선민의식과 구약 의식 율법의 테두리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이방인을 부정하다고 여기며 이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으며 기타 율법의 준수를 통하여 먼저 법적인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으로 구약 시대의 이런 외적 절차가 아니라 내적 믿음으로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구속사가 이스라엘 선민 중심에서 세계 만민으로 구성된 교회로 확장되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베드로에게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초대 교회의 중심인물이었던 대사도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거듭된 환상을 보여 주심을 통하여 구약 전통에 얽매여 유대인 선교에만 주력하던 초대 교회로 하여금 이제 세계만방의 이방인에게도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케 하신 것이다.
⑥ 다른 선교적인 모델들과 구별하여 상황적인 특징
이 사건의 지리적 배경이 되는 ‘가이사랴’는 해변도시로 욥바의 북쪽 약
50km 위치에 있다. 이 도시는 가이사 아구스도(눅 2:1)를 기념하여 헤롯 대왕(B.C 37-4통치)이 기워전 25년전부터 약 10년간 지었는데, 로마 통치시 행정상 유대의 수도가 되었다. 이 도시 가이사랴에는 헤롯이 새롭게 건축한
많은 건물이 있었으며 훌륭한 항구도 있었다. 로마의 총독의 주둔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영향력이 유대인의 영향력보다 컸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복음의 역사는 복음의 이방인을 향한 확장에 좋은 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약 천 명에 달하는 ‘이달리야대’ 라고 하는 특별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고넬료는 바로 그 중 100명 정도를 지휘하는 군대 장교인 백부장이었다. 바로 이 고넬료와 그의 가솔들이 복음화 됨으로써 가이사랴는 비유대인 교회가 세워진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넬료는 개인적으로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는데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이방인에게 본격적인 복음 전파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지금은 가이사랴에 있지만 언젠가는 로마로 돌아갈 사람이었다. 아마 고넬료의 회심은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복음이 전파됨에 있어서도 하나의 디딤돌이 되었을 것이다.
⑦ 아프간 선교를 중심으로 비판적 결론
100여 년 전 한국은 피선교국이었지만 지금은 150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할 만큼 선교대국이 되었다. 선교사 파송규모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선교현지의 문화와 관습을 무시한 채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기독교 복음의 전파는 제국주의 시절의 서구문화와 다를 것이 없다. 선교기관 간의 무분별한 경쟁은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이 성서를 뿌리로 두고 있지만 서구기독교와는 대립되는 현실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선교지의 문화를 배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 선교활동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결과 중동언론들은 피랍자들을 ‘한국인 기독교인’, ‘한국인 선교사’로 이해할 만큼 한국인은 기독교 선교사로 인식될 정도로 반감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분당샘물교회의 활동은 기독교 신앙보다 ‘봉사’를 주된 것으로 하였지만 그들의 활동은 ‘선교’와 ‘봉사’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에게 나타난 환상의 명령에 대한 그의 거절은 하나님 앞에서도 철저히 유대인의 입장을 고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은 베드로가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들의 중심적인 세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대인의 사명의식은 철저하게 유대주의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는 한계를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분당샘물교회 봉사그룹 또한 한국교회의 일부로서 봉사를 명분으로 한 비겁한 선교의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진정한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었듯이 하나님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의 자리로 내려와 그 뜻을 인간의 문화 가운데 함께 하시며 보여주시고, 전하시고, 이루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뜻(경험, 체험)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리에서 함께 하며 그들의 문화 가운데 계시적인 요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서적※
『신학과 세계』 2003년 가을 호 p.118-134
『트리니티 성경대전-사도행전 25권』1998 p.272-303
『기독교사상』1980 12월 p.139-147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사도행전』
『신약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콘첼만//린데만
  • 가격1,2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12.06.10
  • 저작시기2012.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53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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